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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Jin Jan 13. 2021

미안, 후회, 쓸쓸함, 그리고 고마움

- 눈 오는 졸업식날에

오늘은 졸업식.  강제로 조촐하고 소박하게 치러진 졸업식이었지만, 고마움과 미안함 뒤에 남은 쓸쓸함은 이전과 다를 것이 없었는지, 오후 늦게 눈이 내렸다.  '소박한 졸업식'으로는 미처 다 풀어내지 못한 쓸쓸함이 남은 선생님들은 소복소복, 걸어온 길을 지우듯 내리는 눈을 보며 카톡, 페이스북, 여기저에다 마음의 흔적을 남겼다. 떠남과 보냄, 우리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약간의 죄인'이 되어 닳아간다. 보내고 나면 미안함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의 미숙함이, 나의 실수가, 나의 무능이, 나의 게으름이 돌덩이처럼 마음에 가라앉는 날이 바로, 졸업식 식 날이다.


화장실에서 새로 3학년 담임 배정을 받은 선생님과 마주쳤다. 부담과 걱정뿐이라는 그녀에게 '어찌 보면 3학년이 가장 편할 수 있다. 해야 할 일이 분명하고, 매뉴얼에 따라 그 일을 하기만 하면 된다'는 조언 나부랭이를 했는데, 이런 말을 하면서도 나는 그녀가 내 말대로 하지 않을, 하지 못할 선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건넨 조언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과 책임감, 그리고 자신의 무능에 대한 자탄, 아이들의 합불 소식 하나하나에 심장이 내려앉을 것 같은 그 긴장의 시간들을 감내하려면 힘을 빼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첫 해, 나는 그러지 못해 많은 실수를 했으니, 당신은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적당한 거리에서 서서, 날아오르기 위해 웅크린 새들을 바라보면 좋겠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수능 원서를 쓰기 위해서는 수능 원서접수 시스템 접근 권한을 가진 담임이 그 사이트에 들어가 주소, 주민등록번호, 수능 응시 교과를 하나하나 입력해야 한다. 그렇게 작성된 원서를 출력해서 다시 아이들 확인을 받는데도 불구하고, 선택 교과를 잘못 입력했을까 봐 수능 전날까지 잠을 설친다. 수시 원서 6장은 제대로 입력했는지, 자기소개서는 제때 입력했는지, 놓친 추천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든 것에 과민해진다. 더욱이 꼼꼼하지 못한 성격으로 인해 크고 작은 곤란을 겪은 터라, 내가 더욱 과민하게 군 탓도 있지만, 과도한 책임감과 애정으로 스스로를 괴롭힌 탓도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시간이 흐르긴 흘러서 어느덧, 3학년 담임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스스로 움켜쥘 수 있다고 생각이 들 무렵, 이상하게 '내 일'과 '내 책임'이 아니라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가 생겼고, 내가 수긍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어도 인정하는 '척'하며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수업시간에 산책하러 나가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아이에게도, 학교가 너무 싫다는 아이에게도 큰 숨 한 번 쉬고선 마주 보고 앉을 자리를 내어줄 수 있게 되었다. 아침마다 아이가 싸온 음식을 뺏아 먹고는 '선생님이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래, 이해해줘'라며 있지도 않은 넉살을 부려보기도 했다. 아침마다 내게 음식을 갈취당하던 아이가 하필이면, 쓸쓸하기 그지없는 오늘 저녁 문자를 보내왔다.


 엄마한테 보내달라고 한건데 아무튼 선생님 맛있게 드셨으면 합니다. (중략)
저는요 집에서도 그렇고 제 친구들이 제가 주는 먹을걸 안 먹어서 서운했는데 쌤은 항상 맛있게 드셔서 너무 좋았습니다. 진짜루요!


졸업한 지 1년이 넘었으니 거절하지 않고 맛있게 받아먹겠다고 답했다.  

아침마다 그 아이의 책상에는 자그마한 먹을거리들이 놓여 있었고, 배가 고팠던 나는 아침마다 그 아이의 음식을 집어 먹었다. 초콜릿, 초코바, 음료수, 빵, 샌드위치, 김밥들을 갈취하듯 집어 먹으면서 꼭두새벽에 일어나 그 음식들을 장만했을 어머니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체면불고 학생 음식을 집어 먹을 수밖에 없는 내 육신의 허기를 더욱 긍휼히 여겼다. 때론 먹을 것 좀 내보라고 되려 부탁하기도 했다.   

이 아이에게 해준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수시, 정시 원서를 모두 쓰지 않고, 일찍 재수학원 등록을 해버린 터라 머리 쥐어짜며 자기소개서를 함께 쓰지도 않았고, 합격자 발표의 긴장된 순간을 같이 지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선생인 내 입장에서는 공을 많이 들인 학생은 아니니 이 아이가 내 이름 석 자 기억하지 못해도 서운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 아이는 도리어 나에게 고마웠다고 했다. 이번 입시 때 써준 추천서도 아니고, 나름 알뜰살뜰 적은 생기부도 아니고, 내 육신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음식을 뺏어먹은, 그 시시하고 구질구질한 일에 말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를 '수험생'으로만 보지 않는 여유일지 모른다. '수험생'이 이루어야 할 목표를 함께 만들어가는 조력자이기 전에 그 아이의 한 시절을 함께 나는 사람일 뿐이라는 당연한 생각을, 그 생각을 과도한 책임감 앞에 놓아버리지 않는 것, 그리하여 스스로 '조금 덜 죄인'이 되도록 하는 일. 화장실에서 다시 마주친다면 내가 한 말의 속뜻은 이러한 것이었다고 말해줘야 하는데, 이제 긴 방학이 시작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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