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소서 쓰던 밤들-
나는 묻고, 그들은 답한다.
물음들을 찾기 위해 그들이 쌓아 올린 2년 반의 고등학교 생활들을 들춰본다. 궁금한 것이 한 두 개가 아니지만 처음 던지는 질문은 대개 이렇게 시작한다.
"그래서 넌 뭘 하고 싶니?"
황당한 질문이다. 이 질문을 나에게로 되돌린다면,
"꼭 뭘 하고 싶어야 하나요?, 꼭 뭘 해야만 하는 건가요? 계획대로 사는 건 아니잖아요"
이런 소심한 반격으로 상대에게 내가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좁은 내 책상 옆자리에 앉아서 그들은 내 물음이 뭐 대단한 것 마냥 그 답을 찾기 위해 궁리를 하다 대답을 한다.
"경제학자나 경제정책연구원요"
"그래?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봐. 그걸 해서 궁극적으로 넌 뭘 하고 싶어? "
우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하지도 않고, 있지도 않은 자신을 허구로 꾸며내고 그것을 자신인 양 받아들이게 하는 '자소설'이 그들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내고 나아가 자기혐오를 불러일으킨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거짓과 허위로 가득 찬 '자소설'을 써야만 대학에 갈 수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아니 설령 이 말의 일부분이 현실과 어느 정도 부합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함께 써나가던 그 시간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내가 묻고, 네가 대답하던 그 밤들을 나는 감히 '자신'에게 다가가는 밤들이었다고, 그리하여 가장 고달프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내가 정한 몇 가지 자소서 작성의 원칙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생활기록부와 일기장, 사진을 보면서 고등학교 생활을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그리고 끊임없이 질문한다.
"연극반에서 대본을 썼다" -> "왜 썼지? 어떻게 썼지? 난 그때 뭐가 좋았을까? 뭐가 싫었지? "
2. 나 자신에게 정말 의미 있었던 활동,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뛰는 것이 있으면 3개만 뽑아서 그걸로 쓴다.
3. 미사여구와 관용어구는 쓰지 않는다. 튀어보려고 애쓰지 않는다.
4. 쓰면서 정말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산 적이 있구나 싶어 울컥울컥 할 때까지 쓴다.(그러면 나는 합격한다.)
5. 더는 고칠 수 없다, 나는 충분히 이것으로 만족한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제출하기' 버튼을 누른다.
2020년 새해가 밝았고,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군대와 학부과정을 마치고 바로 대학원 조교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2년 전 그때처럼 낮에 만나서 밥 한 끼 먹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선생님은 '몸과 마음이 덜 부대끼는 한 해 보내시라'는 문자를 남겨놓았다. '몸과 마음이 덜 부대끼는 한 해'라니, 이제 더 이상 '그 아이'가 아니다. 아무 말 없이 독하게, 무섭게 공부만 하던 학생이었던, 그가 수년의 세월을 건너 나에게 이토록 다정한 문자를 남겨놓을지 그때는 정말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미안한 말이지만, 담임이었던 내 눈에 그는 그저 죽어라 공부만 하는, 별 매력 없는 우리 반 1등이었을 뿐이었다. 재밌고 톡톡 튀는 많은 아이들 속에서 그는 두꺼운 안경 뒤에 남아 성실하게, 성실하게 공부만 했다. 밤 12시까지 학교에 남아 자습을 하는 그 마음을 그저 성취욕으로만 똘똘 뭉쳐진 돌덩이 같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다가오지 않고, 다가가지 않는 그 거리에서 우리는 고3 담임과 반 1등의 관계로 서 있었다.
운동장의 활기가 살짝 비껴나간 곳에서, 앵봉산을 등지고 그 아이가 앉아 있었다. 점심을 먹고 교무실로 돌아가는 그 길목에서 푸르른 뒷산으로 고개를 돌리면, 아득하니 그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뛰는 수많은 아이들의 거친 호흡을 뚫고, 내려앉은 그 아이의 외로운 마음이 건너왔다.
늦여름 밤이었다. 자습하는 그 아이를 처음 불러 내렸다. 딱딱한 성적 얘기 대신 그 마음을 에둘러 물었던 것 같다. 술술, 두루마리 화장지가 물에 녹아내리듯, 돌덩이 같을 것 그 마음이 시간을 타고, 그 밤의 공기를 타고 교무실에 흘러내렸다. 짝사랑의 쓸쓸함과 쉽게 꺼내놓을 수 없었던 아픈 상처와 그 상처를 둘러싼 갖은 이야기들을 그 아이가 꺼냈다.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 아이가 성실한 땀으로 새겨놓은 생활기록부의 내용을 하나하나 물었다. 왜 했니? 그래서? 왜? 넌 어땠어? 지겨울 법한 수많은 질문에 그 아이는 어눌하지만 분명하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넘치면 넘치는 대로, 묻고 말하던 밤들이었다. '내가 묻고, 네가 답하던 그 밤'들이 여러 번 지나고, 수능을 보고, 불합격, 불합격, 불합격, 불합격, 불합격, 다섯 번의 불합격을 마주했다.
"선생님, 전 재수는 안 해요. 정시 원서 써서 갈게요. 괜찮아요, 선생님. 전 정말 열심히 했어요. 여기서 더 할 순 없어요. 괜찮아요 선생님"
수시 발표 마지막 날, 그해 서울대 수시 일반전형 합격자 발표가 나던 오후 5시에는 눈이 내렸다. 그 아이는 합격을 했다.
2024년 입시부터는 학종에서 자소서 제출이 폐지된다. 알고 있었지만, 오늘 대입 변화 내용을 표로 정리하면서, 다시 한번 자소서가 폐지된다는 것을 확인하니, 기진맥진할 때까지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던 그 치열했던 순간들을 다시는 맞이할 수 없어 못내 아쉬웠다. 자소서의 폐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자소서를 쓰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 내밀하게 들여다보지도 않은 상황에서 너무 섣불리 폐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선생님이 달아 놓은 메모가 화면에 쫙 펼쳐지면 뭔가 있어 보여 좋아하던 시간들, 생활기록부를 들여다보며, '아, 그래도 열심히 했네' 이런 생각 들어 우쭐해하던 시간들, '추억팔이'하느라 공부는 좀 안 했지만 그래도 '내가 좀 멋진 놈 같이 느꼈지던 '시간들, '뾰족뾰족 가시 위에 서 있는' 불안함과 쾌감이 공존하는 '묘한 경험'을 하는 시간들, 대학생처럼 노트북 켜고 자소서를 쓰면 '왠지 있어 보여' 좋았던 시간들"
이제 사라질 시간들이다. 내가 묻고, 네가 답하던 그 밤들이 있어, 나는 고3 담임으로서 즐겁고,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