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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Jin May 15. 2020

우산 아래에서 군대 얘기를

-스승의 날을 맞은 사제의 만남

스타벅스 커피에서부터 생크림 케이크 쿠폰, 텀블러 교환권까지, 선물이 가장 많이 날아오는 날, 스승의 날이다. 스승의 날이 축하받을 날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 스승의 날 축하드려요!"라는 문자가 날아오는 것이 기분 나쁘지 않다. 내가 나의 선생님들에게 문자 한 통 보내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이제 아무 상관없는 나를 위해 글자를 쳐 넣고, 선물을 고르고 용돈을 쪼개 금액을 지불하고, 전송하기 버튼을  누르는 수고로움을 감내해 준 것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짓궂게 비 오는 날 덜덜 떨면서 아아 후루루 잘 마시겠다고 답장을 보내거나, 잘 지내니? 군대는 언제 가니? 복학하니 어떠니? 등의 몇 번 질문을 주고받으며 잠시 우리 서로, 서로를 생각해본다. 남자 선생님들은 졸업생들과 술도 마시는 것 같던데, 나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한다. 말 잘하는 것(?)에 비하면 낯가림과 내성적인 성향이 강해 '우리 사제지간 아니가, 하하, 호호' 할 만큼 호탕하지가 못하다. 오랜만에 만나면 나도 수줍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군대, 복학', 그들의 세계를 알지 못한다. 


아이들이 나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경우는 1) 합격자 발표가 났을 때와 2) 군대 가기 직전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합격자 발표가 났을 때에는 선생님과 함께 자소서를 고치던 그 시간들이 주마등같이 스친다거나, 정말 정말 감사하다거나(합격하면 지나가던 똥개도 고마운 법) 하는 벅찬 감동과 감사의 말이 길게 늘어진다. 반면 군대 가기 직전에는 뜬금없이 '선생님, 한 번 뵙고 싶다', '몸 건강히 계십시오'라는 아주 짤막하지만 뭔가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닌 글이 날아온다. 어제도 그랬다. 


군대 생각이 머리에 1도 없을 때 보내는 카톡


선생님. 내일 찾아가고 싶은데 학교에 계실까요? 


언제부터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진중했던가. 디씨갤에 온갖 음담패설을 늘어놓던 아이들은 어디로 다 사라졌는가(저 문자를 보낸 애가 그렇다는 말이 아님), 어제 문자를 보낸 아이는 '3학년 때 선생님께서 담임을 하셨던 000입니다'(담임했던 애들은 기억한단다ㅠㅠ)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직감했다. '군대 가는구나' 문자를 보낸 졸업생에게 코로나 19로 인해 외부인 출입이 금지되어서 아쉽다고 했더니, 퇴근하는 길에 학교 언덕 밑에서 잠깐 보잔다. '내가 열여덟 순이도 아닌데 뭘 이렇게까지? 아, 정말 군대 가는구나' 


내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오늘 퇴근길, 좁은 골목 한 귀퉁이에 차를 세우고 건너편 마을 버스정류장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우산이 건너편 차 트렁크에 들어 있다. 우산을 가지러 가기는 귀찮고, 맞고 서 있으려니 안경에 빗방울은 자꾸 떨어지고, 뭔가 너무 애매한 상황인데, 그 아이가 자기 우산을 씌워줬다. 그러나 아이의 남색 우산이 가려준 공간은 키 180센티의 그 아이 얼굴을 올려다볼 각도를 만들 만큼 여유가 있지 않았다. 비 맞는 선생님을 향해 우산을 펼친 그 아이의 배려가 민망할까 한쪽 어깨만 우산 안에 놓아두었다. 몇 차례 마을버스가 서고 지나가기를 반복했다. 

  그동안 비는 오고, 그 아이는 역시나 군대 가는 이야기를 했다. 근처 카페에라도 들어갈까 생각했지만, 딸아이 돌봄 하원 시간이 촉박해서 카페를 찾아 들어가기도 애매한 상황이어서 그 아이와 남색 우산을 나눠 쓰고 군대 가는 이야기와 홍대 칵테일바 아르바이트 얘기를 했다. 군대는 왜 이리 복잡한 걸까. 독도 수비대, 공군, 카츄사, 해병대, 소방 뭐, 나라에서 남의 집 귀한 아들 데려가면서 가고 싶을 때 제때제때 데려가지, 왜 그것도 맘대로 못하게 하는가, 징병인데 시험은 왜 보게 하는가, 코로나 19로 아르바이트 시장이 위축되면 아이들은 용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는가? 자녀 돌봄 지원금은 7세까지만 나오는데. 


남자 친구 군대 보내는 아련한 로맨스 따위를 가져 본 적이 없어, '군대, 휴가, 복학'이 주된 관심사인 옛 학생들을 만나면 "아, 그렇구나, 힘들겠다, 어머, 다행이야"라며 맞장구를 치는 일밖에 할 수가 없다. 그들이 나의 세상을 잘 알지 못하는 것처럼 나 역시 그들의 세상을 잘 알지 못한다. 연애를 하고, 군대를 가고, 제대를 하고,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는 나의 옛 학생들에게 오래전 내가 경험한 손톱만큼의 세계를 들먹이는 순간, 마마호환보다 더 무섭다는 꼰대로 점 찍히고 말겠지만, 정말이지 그냥 아는 것이 없어서 또다시 내가 가진 세계를 말하게 된다. 


"너도 이태원 클럽 가니?  내가 다닌 클럽은 말이야, 노래를 했어, 난 그곳에서 럼블피쉬도 봤고, 뷰렛도 봤고, 피터팬 콤플렉스도 봤어. 너네 혹시 아니?" 


며칠 전, 비타 500을 사들고 찾아온 아이들에게는 대뜸 클럽 다니지 말라는 잔소리를 하고 말았다. 꼰대다. 



오늘은 나의 날, 좋은 날이니 이쯤에서 멈추련다. 졸업한 학생과 어떤 관계가 되는 것이 좋을지 잠깐 고민하다가 다시 남고의 여교사인 내가 느끼는 너무나 복잡한 감정들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희롱과 추행이 교실에 만연하지만, 교사와 제자라는 또 다른 권력관계에 엮여 있어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되는 모순에 비하면, 군대 가는 제자에게 적절한 말을 건네지 못하는 처지는 오히려 귀엽기만 하다. 

A 선생님이 새로 오신 여선생님께 나를 소개하며 "우리 학교에서 여교사 넘버 2에요."라고 했다. 나는 우리 학교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여선생이다. 가장 나이가 많으신 분은 아들이 삼십 대다. 내 아들은 열 살인데. 이 간극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가? 수능 교과와 3학년 담임을 맡는 애 딸린 여선생도 나밖에 없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자기 아들한테 누나처럼 대해 달라는 학부모에게는 라고 해야 할까? 내가 왜 누나니? 내 동생은 애아빠다. 할 말은 너무 많지만, 오늘은 나의 날, 좋은 날. 이쯤에서 멈추고, 훗날을 기약하련다. 


여하튼, 군대, 휴가, 복학, 

아직은 잘 모르는 세계지만, 너희들이 자꾸자꾸 알려주면 좋겠다. 

엉뚱한 담벼락에 대고 소리 질러 본다, 기억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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