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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Jin Jul 08. 2020

공부하고와도되

초등학교 3학년, 10살 된 아들이 있다.  오후 12시 33분, "E학습터다들었어. 공부하고 와도되. 그리고 나숙제다했는데 TV봐도 되" 문자가 왔다.


아들이 '공부하고와도되'라고 해서 2주일 만에 독서실에 들렀다. 그 사이,  옆자리 공시생은 떠나고, 고3 여학생이 자이스토리를 잔뜩 쌓아놓고 앉았다. 교사, 엄마, 그리고 읽고 쓰는 자, 이렇게 세 개의 정체성을 다 안고 가리라, 나 홀로 다짐하고, 다짐하며, 버텨온 몇 년의 세월이 나에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돈 버는 일이라면 모를까  돈도 안 되는 너의 취미 생활로 인해 곁에 있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얘기에서부터  양손에 커피잔을 다 들고 있으면 어느 순간 두 개 모두 놓친다는 사려깊은 조언까지, 많은 이야기들이 내 주위를 떠돌았지만, 그냥 그냥 그 말들 속에서 교사로서, 엄마로서, 그리고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 몇 년을 버텼다. 전략적 선택을 해야한다는 말이 매섭게 뇌리에 박히기도 했지만 어느 것 하나 나에게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나는 어느 것 하나 쉽사리 내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것 하나도 만족스럽게 해내지 못했다.



다만, 이렇게  만족스럽지 않게 세 개를 부퉁 켜 안고 가는 것이 내가 사막을 건너는 법일뿐.



아들의 담임 선생님이 아이가 극도로 우울하며 만사에 무기력하여 집안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부끄러웠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아이에 대한 걱정 때문이 아니었다. 겨우겨우 봉합시키며 안고 있었던 나의 한 부분, 그러니까 엄마로서의 내 역할이 형편없다고 객관적인 진단을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해나가고 있다'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판명하는 것 같아, 그래서 아이를 위해 나의 한 부분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작 일주일에 반나절 만나는 선생님으로부터 저러한 평가를 받는 무기력한 학생과 일주일에 반나절 만나는 학생에 대해 저러한 평가를 내리는 무신경한 교사의 조합이 나를 극도로 긴장시켰다.


2주일 간, 퇴근 후 독서실 대신 집으로 곧장 갔다. 아이의 주간 학습계획표를 뽑아 형광펜을 들고 아이가 해야 할 일을 체크했다. E학습터를 같이 들으며 옆에서 함께 과제를 했다. 백지도에 마을을 그려 색칠을 하고,  이야기 만들기를 같이 하고, 비발디의 사계를 함께 들으며 그림을 그렸다. 음계를 설명하고 국어사전 찾는 법을 직접 가르쳤다. 좋은 시간이었지만, 학교에서 해야 할 일을 엄마가 대신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과제물들을 모두 클리어 파일에 차곡차곡 챙겨 학교에 보냈다. 아이가 아니라 내가 평가받는 느낌이었지만, 현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속을 달랬다. 담임교사는 친절해졌고, 아이는 밝아졌다.


그리고 어젯밤, 아이와 산책을 했다. 딸아이는 아빠와 함께 을 자고, 아들과 나는 동네를  바퀴 걸었다. 편의점 파라솔 아래에서 음료수도 마셨다. 산에서 내려오는 여름밤 공기가 시원했다. 조잘조잘 아이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직접 가서 자전거 딱지를 받아서 우리  자전거 3대에  딱지를 붙였다는 얘기에서부터  친구들과 함께 캠핑을 가고 싶다는 얘기까지. 그리고 아들이 물었다.



"엄마, 엄마는 몇 시간 자?"


"음, 엄마 4-5시간?


"왜?"


"왜라니 , 생각해봐. 집에 와서 너 E학습터 같이 듣고, 유림이 목욕시키고 재우고, 그리고 너랑 좀 놀고 엄마 씻고, 엄마 수업 녹화도 하고, 그러면 새벽 1시야. 근데  엄마 7시에 집에서 나가야 해. 그런데 엄마 요즘은 공부하러도 못 가. 너무 바빠서." 신이 나서 코로나 19 자가검사 확인 당번인 날은 6시 30분에 나간다고  자랑하듯 말을 하는데, 아이가 또 물었다.


"엄마, 그런데 엄마는 공부가 좋아?"


"어. 근데 엄마는 그냥 혼자 앉아 있는 게 좋아서 공부하는 거야.  공부가 좋은 건 아니야. 그냥 앉아 있는 거야."

 

알쏭달쏭, 10살 내 아들은 알아듣지 못했을 말들. 홀로 앉아 있는 이 순간의 지극한 즐거움을 알지 못할  열 살 내 아들.  

 

그런데 알아들었나 보다. '공부하고와도되'  


공부할 거리도 없는데, 독서실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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