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수술이 대동맥 수술?!
사촌누나는 조카들 등교를 준비해야 했기에 매형이 함께 수술을 할 이대서울병원까지 동행했다.
매형은 이전에 말한 것처럼 연차를 내고 새벽부터 달려와 내 손을 꽉 잡아주었다.
아직도 전원을 위한 구급차를 탈 때,
누나가 큰 일 없을 거니깐 힘내라는 말과 함께 손을 꼭 잡아준 게 생각난다.
이윽고 건대병원 응급실의 인턴 선생님과 매형, 이렇게 서울병원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 타 본 구급차는 생각보다 좁았고 덜컹거렸다.
덜컹거리는 도로 위에서 매형과 선생님이 번갈아가며 손을 잡아주었다.
얼마나 갔을까.
원래였다면 긴 시간이 걸렸을 거리지만
새벽이라는 시간과 구급 상황이 겹쳐 이삼십 분만에 이대서울병원에 도착했다.
건대에서 마곡까지 사실상 끝에서 끝임을 감안하면 정말 급하게 달렸다.
그 후로 나는 길에 구급차가 지나가면 성호를 그으며 별 탈이 없기를 기도하곤 한다.
이대서울병원에 도착한 이후, 접수 및 기타 수술을 위한 검사를 하였다.
그 와중에 건대병원에서 잡은 동맥혈 검사를 위한 주사 부위가 옷에 가려져있어 이대 서울병원에서 그 아픈 동맥혈 주사를 다시 찔렀다.
나중에서야 응급실 간호사 선생님들이 이를 발견하고 아팠을 텐데 미안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다만 동맥이 박리된, 말 그대로 찢어진 상태였기에 동맥혈 주사의 아픔은 별로 느껴지진 않았다.
수술방 시간이 잡히고 새벽 5시쯤, 관련된 안내를 받았다.
그때쯤 회사 동료들에게 카톡을 남긴 후, 수술을 받으러 덜컹덜컹 내 침대가 움직였다.
통증을 없애기 위한 진통제를 맞고 수술방에 들어갔다.
몸에 칼을 대는 수술은 삼십 년 동안 처음이었다.
너스레를 떨며 수술을 하기 위해 들어오시는 교수님들께
'칼 대는 수술이 처음이라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헛소리를 했다.
죽기 직전의 상황에서도 끝내 성질은 못버린 나였다.
다만 교수님들은 내 상태를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저런 장난을 받아주실 여유가 없으셨다.
막연히 개복을 하겠지,라는 생각에
두 번째 마디로 '개복은 처음이라.. 잘 부탁드려요.'라고 하니
한 교수님께서 '개복 안 합니다, 가슴 열거예요.'라고 말씀하셨다.
가슴을 연다라.
가슴을 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내 심장이 공기와 마주하는 순간이 어떤 의미인지를 곱씹을 즈음, 의식이 흐려졌다.
긴 잠 속으로 나는 빠져들었다.
벌써 날이 지나,
2022년 11월 24일 새벽 5시 40분 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