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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방 Feb 21. 2024

암튼 다 엄마아빠 때문임 2

엄마 뒷담화


 나도 궁금해요

내 기억상, 나는 이십 대 초반에 집을 나왔고 그 이후로 가족과 연락하지 않았으며 최대한 떠올리지도 않으려고 노력하고 살아 왔는데, 그러면서 부분부분 지워지고 왜곡되었을 내 기억에 따르자면, 엄마는 친할머니와 사이가 안 좋았다. 엄마의 시어머니와 엄마는 전형적인 고부 관계였다.


엄마는 아빠보다 연상이었고, 더 가난했다. 엄마네 집은 일곱 형제다. 여섯이었던가? 솔직히 그 정도로 사람이 많으면 명절마다 모여도 그 사람이 그 사람 같고, 난 숫기가 없어서 늘 사람들을 피해 다녔으니까, 누가 누군지 기억은 안 난다. 엄마네 집 장남은 아파서 죽었댔다. 엄마의 여자 형제들 장남들도 무탈하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말했다시피 우리 오빠는 백혈병으로 죽었다. 저주 받은 집안인가? 아무튼, 난 여자라 살아 남았다. 원래 이런 얘기에서 여자애는 온갖 고통과 시련을 겪은 다음 살아남는다. 내가 읽은 책들은 그랬다. 그렇다기엔 내 언니들은 세포 단계에서 사라졌지만. 그러니까 여자로 살아남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우리 엄마도 어렵게 살아남은 여자애였다. 아마 여자로는 막내였을 거다. 엄마의 고생사를 꽤 들은 것 같은데 솔직히 잊어버렸다. 난 내 고생만으로 벅찼고 엄마와 나 사이의 얘기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았으니까. 엄마도 이해해 주겠지? 근데 난 엄마가 죽은 지 10년도 더 지난 지금에도 왜 엄마의 이해를 바라는 걸까?


이 글은 엄마 뒷담화를 하려고 시작했다. 우리가 엄마가 이랬고 저랬고 하는 얘기는 어디 가서든 즐거운 얘깃거리는 아니지 않은가. 더군다나 장유유서 정신을 배우며 자라나는 유교의 땅에서. 그나마 상담 센터에서 얘기할 수 있는데 매일매일 가서 엄마 얘기만 하고 있으려니까 이건 뭐 엄마 강령회 현장인지, 내 심리 치료인지 헷갈린다. 엄마가 이랬구요, 엄마가 저랬구요. 도대체가 나는 엄마를 왜 이렇게 사랑할까? 좆같은 일이다.


엄마 욕 다시 시작. 난 친할머니한테 별 유감이 없다. (같이 살기 전까지는 그랬다.) 친할머니는 어릴 때 날 돌봐 줬고 그냥 잘해 줬기 때문이다. 통속극 속 시어머니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친할머니도 손녀보다는 손자를 사랑했던 것 같긴 하다. 그러니까 엄마가 선별 낙태를 하고, 오빠를 그렇게나 애지중지했겠지. 친가에 오갈 때마다 엄마는 정말 스트레스 받아 했다. 좀 미친 사람처럼.


내 생각에는 엄마가 미친 여자였던 게 맞는 것 같다.


아무리 엄마 뒷담화라지만 우리 엄마가 미친년이라고 욕하고 싶은 건 아니고, 사실이 그렇다. 내가 미친 여자로 오래 살아 봐서 안다. 정신병자로 거의 평생을 살아 보니 엄마 증상들이 이해가 간다. 중증 우울증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거기에는 우리 아빠가 또 큰 축을 담당하지만, 지금은 엄마 욕 중이기 때문에 아빠 욕까지 같이 할 시간이 없다. 일단 엄마 욕부터.


오빠 병수발을 들 때 엄마는 침울하게 미친 여자였다. 나는 음침하게 미친 여자애였다. 친가, 작은 이모네, 큰집, 또 어디였지? 하여간에 항상 사촌 집에 팽개쳐져서 엄마와 아빠를 기다리면서 손톱에 피가 나도록 물어뜯던 기억이 난다. 사촌 형제들은 나름대로 친절했지만 다들 학교에 가야 했고, 자기보다 한참 어린애를 돌봐 줄 여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난 극도로 내향적이었다. 나는 타인이 무서웠다.


옷이 가득 걸린 옷걸이 아래. 이불이 든 장롱 안. 괴담에서 귀신이 나오는 좁고 어두운 곳에 끼어 있는 게 그나마 내 낙이었다. 이상한 점은, 그러면서도 내가 겁이 정말 많았다는 사실이다. 자려고 불을 끄면 너무 너무 무서워서 이 끔찍한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랄 정도로, 잠들기 직전까지 겁에 질려 글썽거릴 정도로 나는 지나치게 무서움이 많았다. 엄마랑 아빠한테는 기르기 참 피곤한 애였다.


그래서 엄마는 나한테 질려 버렸다.


오빠가 죽기 전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아프기 전에는 안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절은 기억이 아주 적다. 그때 우리는 엄마가 사장인 미용실을 차렸고 안에 열대어가 가득한 수조도 놨다. 내가 구피 새끼를 보고 신기해하던 게 기억난다. 수조 물을 갈아 주느라 열대어를 옮기다 바닥에 열대어가 뛰어내리는 바람에 비명을 질렀다. 엄마가 괜찮다고 해 줬다. 이게 대체 언제 기억이지. 전생인가.


자식이 죽은 후에 부모는, 자식과 함께 영원히 자신의 한 부분을 잃어 버린다는 글귀를 어느 소설에서 읽었다. 그래서 손위 형제가 죽기 전의 부모와 자기는 영원한 이별을 겪었다고 화자가 말했다. 그 부분을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아, 그래서 엄마가 그랬나 보다.


모르겠다. 오빠가 죽기 전의 엄마는 나한테 친절했었나? 전생에는 우리가 좋은 인연이었던가?


나는 어린 시절 엄마가 나를 미워하고 싫어했다고 기억한다. 오빠 대신 내가 죽기를 바랐다고. 우리 엄마는 독실한 카톨릭이라 나도 유아 세례를 받았는데, 성당에 가서 기도하던 기억도 난다. 제가 오빠 대신 죽고 오빠가 돌아오게 해 주세요. 저를 죽여 주세요.


당시에 난 신을 믿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내가 태어나서 한 첫 기도는 그거다. 저를 거두어 가시옵소서. 엄마한테도 말한 적 없는 기도다. 왠지 혼날 것 같아서. 들으면 엄마는 날 갸륵하게 여겨 줄까? 근데 죽은 지 10년도 더 된 여자가 갸륵해해 주든 말든 무슨 상관이지? 난 사후세계도 안 믿는다. 인간은 전기 신호다. 죽으면 소멸이다. 끝.


엄마는 소멸했다. 엄마는 이제 없다. 엄마의 기분은 내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죽었으니까. 엄마가 날 싫어해도 상관없다. 정말 상관없다. 아니다. 엄마가 날 좋아했으면 좋겠다. 엄마가 날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같이 차에 타고 강물에라도 뛰어들겠다. 엄마가 늘 하던 협박처럼. 엄마는 날 죽여도 된다. 왜냐면 엄마는 엄마니까. 고생해서 날 낳고 길렀으니까. 오빠 때문에 슬펐으니까. 아빠가 엄마를 아프게 했으니까. 난 엄마의 것이니까.


어릴 때 엄마는 날 때렸다.


같이 죽을 계획을 들려 주기도 했다. 말하자면 나를 어떻게 죽일지에 대한 얘기들이었다. 자동차, 투신, 가스. 방법은 간혹 바뀌었다. 나는 자다 깨서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경청했다.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나한테 화를 내고 죄책감이 들면 잘해 줬다. 자기한테 봉사하도록 했다. 난 엄마의 주치의였다. 엄마가 기르는 애완견이기도 했다. 엄마의 소유물, 엄마의 자랑거리, 엄마의 쓰레기통, 엄마의 화풀잇감, 엄마의 인형, 엄마의 투자물.


하지만 자식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얘기를 들으면 엄마는 아니라고 하겠지? 때린 적도 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분명 그런 기억이 없다고, 넌 왜 그렇게 예민하고 과장되게 생각하냐고 말할 것이다. 다 상상할 수 있다. 아, 엄마는 정말이지 내 안에 살아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내가 엄마 욕을 하는 거다. 원래 관심이 없으면 욕도 안 한다. 죽을 정도로 아꼈어야 죽도록 미워할 수도 있는 거다. 난 엄마를 너무 사랑한다. 좋아하지는 않는다. 엄마가 미워 죽겠다.


엄마 욕을 계속해야겠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아직 반의반의반도 안 했다. 엄마 뒷담을 하자면 끝도 없다. 정말로,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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