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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방 Mar 10. 2024

암튼 다 엄마아빠 때문임 6

죽어서 떳떳하게 없어지기 위하여

나도 돌이 되고 싶어.


인생에 스포일러라는 게 존재한다면 참 편하겠지. 물리학에 의하면 사실 시간은 선형이 아니다. 우리가 느끼는 것과 달리 시간은 연속되지 않는다. 모든 시간의 우리는 한꺼번에 존재한다. (이 얘기를 담은 대표적인 단편 소설로 테드 창의 '우리 인생의 이야기', 동명의 영화가 있다. 추천한다.)


내 존재를 모두 지워 없애고 싶다는 강박에 빠져 있던 시절의 나에게 이 생각은 많은 슬픔과 위안을 가져다 주었다. 과거와 미래는 함께 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언제나 존재해 왔고 또 존재한다. 삶은 하나의 긴 선이 아닌, 둥근 원이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이웨어 올 앳 원스'처럼. 이 무수한 우주의 내가 모두 나다. 내가 만든 이야기가 전부 다 나다. 결국에 우리는 삭제될 수 없는 운명이다. 비극인지 희극인지 둘 다인지 모르겠지만 별수없이 그렇다.


생명은 원처럼 이어진다. 환생 이론이 바로 이거다. 이 얘기는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잘 알 것이다. 업과 덕을 쌓고, 인간으로, 혹은 벌레나 짐승으로, 나중에는 모든 굴레를 끊고 열반에 도달하는 이야기.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죽어서도 사후 세계에 가고 싶지 않다. 천국에도 지옥에도 가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위안을 얻기 위해 만들어낸 상벌의 세계에는 결코 발 들이지 않겠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또 살고 있으리라는 상상도 하기 싫다. 특히나 엄마는 더.


이전의 글쓰기 이야기에 이어서, 스포일러를 하자면 나는 작가가 되었다. 먹고 살 만큼 꽤 잘 번다. 나름의 인기도 누리고 있다. 해피엔딩일까?


이야기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광막한 우주가 주는 고독 속에서 내가 창조한 세계만은 늘 나를 위로했다. 어딘가 모자라고 모나 보이는 내 딸들을 나는 마음껏 미워하고 박대하고 끌어안았다. 또 다시 스포일러. 나는 나를 구했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나의 가장 어두운 시절과 마주하는 이야기를. 언제나 시도했지만 끝끝내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던, 아마 끝까지 성공하지 못할지도 모를 얘기들을.


글은 언제나 나의 것이니까. 엄마조차 내 글쓰기를 막을 수 없었다. 나는 수십 장의 유서를 썼다. 자살은 성공하지 못했다. 아직 쓸 이야기가 남아 있었던 탓인지도 모른다. 아니 에르노가 썼듯이, 내가 그 일을 겪었다는 것은 곧 그 일에 대해 쓸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난 엄마에 대해 쓸 수 있다. 엄마가 결코 내 방문을 닫지 못하게 하고, 엄마가 좋아하지 않는 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똑바로 세운 채 그 책들을 소리 내 읽게 했다고, 읽지 못하자 한 장씩 내 손으로 찢게 했다고, 내가 유일하게 책에만 애착과 소유욕을 갖는 걸 알기에 그런 짓을 한 거라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다. 이건 나의 뼈 속에 갇혀 있던 진실이다. 무덤에서 울릴 비명이었다.


고통이 한이 되면 저승으로 가지 못한다. 또 다시 환생하게 된다. 이는 우리나라 무속신앙과 불교의 가르침이다. 어느 쪽도 되고 싶지 않다. 귀신이 되어 이승을 떠돌지도 않을 것이고 다시 세상에 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려면 말해야 한다. 혈관에 흐르는 피를 짜내야만 한다. 엄마 아빠와 같은 피를 지녔다는 사실이 저주스러워 몸부림치며 깨어난 날이 있었다고 해야만 한다.


나는 내 가족들을 용서하지 못한다.


언젠가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심리 상담을 받으며, 과거의 유물 같은 기억들을 마주하면서, 난 내가 부모를 적당한 거리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에야 비로소 알겠다. 나는 그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엄마의 고통과 아빠의 부침을 아는 지금에도 용서할 수 없다. 내 오빠와 내 동생도 사랑하지 않는다. 동생이 겪고 있는 고통과 별개로 그 애를 혈육으로서 다시 돌보고 싶지 않다. 그 시간은 나에게 고통이었다. 다만, 동생이 내게 했던 사소한 잘못들을 모두 용서한다. 그 애를 미워했던 시간을 반성하고, 상처 주었던 일이 있다면 용서를 빈다. 그 애가 치료되어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


나는 초등학교때 따돌림을 당했다. 엄마는 사립 초등학교에서 전학한 이후로 나를 방치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나는 자주 씻지 못했고, 머리카락에 이가 생겼다. 더럽고 냄새가 나고 성격이 이상했다. 애들이 기피할 만도 했다. 다시 거기로 돌아가자.


내가 겪은 일들을 누군가에게는 다 들려 주어야 하니까.


죽어서 떳떳하게 없어지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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