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방 Mar 10. 2024

암튼 다 엄마아빠 때문임 5

무신론자의 창조주

예술은 당신이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어린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이다. 생존과 직결되는 상대고, 교육은 물론 유전자 포함 의식의 토대를 만드는 이들이다.


한마디로, 부모는 신이다.


내게 엄마는 신이었다.


하나님은 자애롭고 모두를 용서하신다. 이게 대외적으로 알고 있는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구약성경의 하나님은 아무런 죄도 없던 욥을 지독한 고통으로 몰고가며 시험하고, 질투와 미움으로 인간들에게 불을 내린다. 나에게 엄마 역시 그랬다.


엄마에게 용서를 받아내는 조건은 몹시 까다로웠다. 나는 언제나 엄마의 기분을 맞추려 안달이 난 아이였으나 한 사람의 기분대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날씨를 맞추기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다. 어린 나는 엄마의 세상에서 유일한 예언자이자 선지자였으되, 속수무책으로 그의 기분에 휩쓸리는 백성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또래보다 잘한다는 것은 훈장이다. 엄마가 나에게 자랑스러워하는 얼마 안 되는 면이기도 했다.


내가 독서와 작문에 몰입하게 된 것은 타고난 기질 덕도 있으나 반은 엄마의 영향이다. 엄마에게 칭찬받기 위해 뭐든 하던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고통을 잠재우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책에 몰입하는 것뿐이었던 어린애가 자라 내가 되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었다. 해외 아이들에게는 많이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국내 아동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상상친구'도 그 일환이었다. 어린 시절 도끼를 들고 다니는 친구가 나를 지켜 준다고 믿었다. 당시에 읽은 동화나 디즈니 만화 동산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안다. 나는 나를 지켜 줄 무언가가 간절했던 것이다.


오빠에 대한 기억은 정말로 아주 조그만 것들뿐인데, 대개 좋지 않다. 오빠는 나를 괴롭혔다. 남매끼리 어릴 때 투닥거리는 수준인지, 심각한 폭행이었는지까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지금도 내게는 오빠가 남긴 흉터가 남아 있다. 엄마는 그 흉터를 만지면서 애틋하게 눈물 짓곤 했다. 그래도 오빠가 너한테 추억할 거리를 남겨 줘서 정말 다행이다. 엄마가 웃을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이게 왜 추억거리지? 이건 상처야.


그것은 지금도 그저 흉터다.


오빠가 백혈병을 앓다 어린 나이에 죽은 불쌍한 형제라는 것과 상관없이, 나는 오빠에게 아무런 사랑도 느끼지 않는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제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에 죄책감을 부여하며 살지 않기로 했다. 내가 오빠를 싫어한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를 괴롭히는 오빠에게 '도끼 친구가 오빠를 혼내 줄 거야'라고 소리 지르자, 오빠는 날 비웃었다. '그런 건 없어. 널 지켜 줄 친구는 없어'하고 말했다. 엄마와 아빠는 '도끼 친구 같은 건 없어'라고 귀엽다는 듯 나를 비웃었다. 그후로도 나의 '도끼 친구'는 가족들의 즐거운 이야깃감이었다.


내게는 즐거운 이야기가 아니다. 슬픈 이야기다. 두렵고 비극적인 이야기다. 나만은 당시의 내가 어떤 심정으로 그 친구와 놀았는지 알고 있다.


도끼 친구는 오빠가 죽으면서 사라졌다.


나는 혼자 남았다.


엄마에게 대적할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고로 내 상상 친구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빠는 집에서 사라졌다. 말 그대로, 아빠는 집에 없었다. 혹은 있을 때도 없었다. 엄마가 나에게 하는 짓을 보면서도 아빠는 자기가 할 것만을 했다. 그래서 나는 혼자였다. 우리 집에서는 셋, 혹은 넷이 살았고, 나는 언제나, 뼛속까지 혼자였다.


나는 인간이 아니라 걸어다니고 말하는 고기와 뼈와 피였다. 가장 말짱한 시체 부위를 조각조각 기워 만들어낸 괴물이었다. 나의 생각은 존중되지 않았고 내 입으로 말할 수 없었다. 의지를 가져서는 안 됐지만 재치 있어야 했다. 영리하고 눈치가 재빠르지만 하나하나 가르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야 했다.


하지만 책 속에서 나는 자유로웠다. 가상의 세상 속에서 나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나를 아프게 하지 않았다. 설령 아프다 해도, 그건 상상 속의 것이었다. 실제로 다치는 게 아니다. 가상의 슬픔은 현실의 슬픔보다 훨씬 달콤하고 아름답다. 더불어 면역력을 길러 준다.


어릴 때는 숙제로 일기를 써야 했다. 내 일기에 자신이 없었던 나는 그럴싸한 글들을 베껴 적었다. 우리 엄마는 내 일기장을 모두 읽었다. 내 앞에서 읽기도 했다. 담임 선생님이 내가 베낀 글을 칭찬해 줬다. 그때부터 나는 온갖 책에서 좋아 보이는 문구들을 베껴다 적었다, 내가 쓴 척하면서. 날마다.


그게 필사의 일종이었음을 지금은 안다. 그렇게 나는 글이라는 게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익히게 되었다. 글머리는 어떻게 시작해 끝은 마침표로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온갖 상상이 내 머릿속에 흘러넘치고 있었고 내 뇌속에는 개미떼들이 매분매초 기어다녔다. 털어놓을 곳이 필요했다. 그게 엄마가 억지로 다니게 한 성당의 고해소는 아니었다. 엄마를 사랑하고 아끼는 하나님의 품은 절대 아니다. 나를 받아 줄 곳이 있다면 내가 창조한 세상뿐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 나의 세계. 나의 이야기. 나의 딸.

작가의 이전글 암튼 다 엄마아빠 때문임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