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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방 Feb 23. 2024

암튼 다 엄마아빠 때문임 4

죽어제발죽어

어쨌든 상처 받을수록 나는 더 많이 웃는 편이야


동반 자살 얘기는 엄마의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


엄마의 주장은 이랬다. 이제 엄마는 살아갈수가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워서 꼭 죽어야겠는데, 세상은 너무 험난하고 나는 어리니 차마 남겨 두고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갈 때 나도 같이 죽어야만 안심이 되겠다고. 엄마는 역시 자나깨나 내 걱정뿐이다. 날 걱정해 주는 건 엄마밖에 없다.


처음에는 너무 무서운 나머지 울었다. 죽고 싶지 않았다. 한 너댓 번이 되면서부터는 받아들였다. 엄마가 죽자면 죽어야지, 나한테 달리 무슨 선택권이 있겠는가. 죽자, 죽어. 죽으면 그만이지. 열댓 번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졸렸던 것 같다. 엄마는 미용실 일을 하느라 바빠서 늦게 퇴근했고 나와 내 남동생하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자기 전의 밤뿐이었다. 남동생은 나보다 어려서 잠을 자야 했다. (이 자살 호소 시간에 동생은 빠질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그건 차차 얘기하겠다.) 나는 엄마 얘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딸이므로 자다가 깨서 엄마의 창대한 동반 자살 계획을 들어야만 했다. 대답도 해야 했다. 우리 엄마는 자기 말에 대답 안 하는 걸 진짜 정말 아주 몹시 싫어한다.


아……. 잠 와……. 근데 왜 우리 셋만 죽고 아빠는 안 죽지? 아빠는 어른이라 그런가 보다……. 뭐 죽으면 죽어야지. 그런데 일단 따뜻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잠을 마저 자고 싶다. 혹시 이인증이라는 증상을 아는지?


<이인화/현실감 상실 장애는 자신의 삶을 외부에서 관찰하는 사람처럼 자신의 신체나 정신적인 과정으로부터 분리된 느낌(이인화) 및/또는 자신의 환경으로부터 분리된 느낌(현실감 상실)이 지속되거나 반복되는 것입니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비슷한 설명이 나온다. 그때 내가 겪었던 게 아마 이인증 같다. 설명하자면 이렇다. 갑자기 몸에서 영혼이 분리되는 것처럼 붕 뜨는 느낌과 함께, 화면 속의 캐릭터를 지켜보듯 나를 지켜보게 된다. 그러고 나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둔하고 졸린 느낌뿐이다. 엄마가 나한테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내든, 듣고 있는 거냐고 다그치든, 엉엉 울면서 호소해도…….


엄마는 그런 순간의 나를 증오했다. 자기를 무시한다고 느낀 것이다. 자기 말에 꼬박꼬박 대답하는 데 집착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형편이 조금 나아지자 우리는 미용실 근처에 있는 근방의 제일 낡은 아파트에 세를 얻었는데(뭘 생각하든 그것보다 낡았다) 전화하다 내가 대답을 안 하고 끊었다고 집으로 뛰어와 때린 적도 있다. 난 내가 대답을 했다고 기억한다. 화가 나서 갑자기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엄마를 보고 기절할 듯 놀랐던 기억도 있다. 분명 대답을 했다고 싹싹 빌었지만 엄마는 거짓말하지 말라고 더 화를 냈다. 이제는 헷갈린다. 대답을 안 했었나? 그럴수도. 전화 문제로 안 들렸나? 그랬을 수도. 아니면 엄마의 편집증이 발휘된 것일지도. 진실이 뭐든 중요하지 않다. 내가 아는 건 그 순간 내가 죽을 만큼 무서웠다는 것뿐이다.


이러한 공포는 살아 있는 내내 나를 지배해 왔다.


엄마가 죽고, 아빠와 동생을 떠나고, 혼자서 밥벌이를 하게 되고, 다른 가족을 찾은 지금까지도.


그래서, 초등학교때 내 학교 생활에 실망한 엄마를 보고 나는 목숨의 위기를 느꼈다.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나에 대한 염려를 들은 엄마의 표정은 딱딱했고 나는 오줌을 지릴 만큼 무서웠다. 난 죽었다. 난 죽었다. 난 죽었다. 진짜로, 난 죽었다.


하지만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엄마는 딸을 포기하지 않는 법이다. 엄마는 내게 영어 비디오 테이프를 사 주고, 친구에게 문제집을 얻어 오고, 뭐든 가르치려고 했다. 나? 나는 시험에서 컨닝을 했다. 문제집을 풀었다. 영어 비디오를 봤다. 책을 읽었다. 옥편을 외웠다. 죽도록 타기 싫은 스쿨 버스에 앉아서 학교로 실려 다녔다.


그런 것 말고는 초등학교 때 기억이 잘 안난다. 엄마가 아플 정도로 내 머리를 당겨서 묶어 주던 것, 내가 애들과 잘 어울리지는 못했던 것, 운동회에 엄마가 왔던 것, 학교 앞에 오디 나무가 있어서 거기서 입이 벌게지도록 오디를 따 먹은 기억. 사소하고 작은 파편들 외에는 드문드문하다. 나는 결국 3학년 즈음 전학을 갔다. 애당초 우리 집 수준으로 보내기에는 무리한 학교였다. 거기 애들은 방학마다 여행을 다녔는데, 난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전학은 힘겨웠다. 나 같은 애에게 갑자기 새로운 환경으로 가서 생활하라는 건 형벌이었다. 엄마가 나를 포기했다는 뜻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계속 수학 문제집을 풀고 단어를 외우고 영어 테이프를 보고 자기 직전까지 책을 읽었지만 엄마의 기대치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엄마는 내게 모든 것이 되기를 요구했고 동시에 아무것도 되지 말라고 주문했다.


엄마는 내가 똑똑한 딸이기만을 바랐던 게 아니다. 이 땅의 딸들은 알 것이다. 엄마는 딸이 살찌지 않기를, 그러나 잘 먹기를, 인기가 있기를, 그러나 나대지는 않기를, 발랄하고 활발하기를, 동시에 현숙하기를, 키가 적당히 크고 얼굴이 작고 팔다리가 늘씬하고 치아가 고르고 젓가락질을 잘하고 옷을 잘 입기를 바란다. 엄마는 끊임없이 내 모든 요소를 지적했다. 내가 나로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었다. 양쪽으로 잡아늘려지다 그만 찢어질 것 같다. 실제로 그때 나는 찢어졌다. 아직도 존재가 찢긴 틈에서 배어나오는 고통을 느낀다.


하지만 엄마들은 우울한 딸을 싫어한다.


엄마가 울면 같이 울어 줘야 하지만 엄마가 침울할 때는 웃으며 엄마를 달래 주어야만 한다. 앞장서서 아빠 욕을 하고 엄마 앞에서 재롱을 떨어야 한다. 나는 엄마를 기쁘게 하는 법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왕의 광대가 되어 참수형을 당하지 않기 위해 그를 즐겁게 해야 했다. 더불어, 엄마가 웃으면 나도 기분이 좋았다.


아파트 계단을 올라다니면서 나는 거기서 떨어져 죽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잠깐이면 될 것이다. 몸을 쑥 내밀어서 다리를 박차기만 하면 목이 부러지고 머리가 산산 조각 난다. 나는 없어진다. 마침내, 내가 없어진다.


그러면 엄마는 얼마나 화를 낼까.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귀신이 있다는 상상을 하고 떨면서 계단을 올랐다. 한 층을 오를 때마다 자살 충동을 느꼈다.


나는 책의 세계로 더욱 몰입했다. 도망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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