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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방 May 15. 2024

암튼 다 엄마아빠 때문임 8

정신병원에 다니면 좋은 점

우리 정신병원 선생님은 좋은 분이다


무슨 얘기를 쓰려고 했지?


맞다. 나는 앞에서 다시 내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따돌림을 당해서다. 참 길고 두려운 나날이었다. 나는 죽도록 학교 가기 싫어하는 어린애가 되었지만, 또 순종적인 아이이기도 했기에 학교는 늘 꼬박꼬박 잘 다녔다. 개근상도 탔다. 어느 날은 교실에 들어가기 너무 싫어서 신발주머니를 들고 그냥 집에 온 날이 있었는데 참 마음이 편하고 좋았다. 엄마는 곧 아프기 시작해 집에서 사라지고 아빠는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원래 관심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시기에 잘만 했다면 나는 등교 거부 학생이 될 수도 있었다. 왜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그건 그냥 절묘한 우연이다. 우연이 우리 인생을 만든다. 그것은 나의 선택이기도 했다. 나는 학교에 반드시 가야 한다는 관성에 길들여져 있었고 고통을 피하려 달아나도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묵묵하게 서서 돌을 맞기를 택했다. 내가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괴로워지더라도.


그 시기에 계속 학교에 다녀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게 행운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했지만, 진짜 그랬을까? 알 수 없다. 어쩌면 그때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 내게 더 좋은 길을 열어 주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겪어 보지 않은 인생을 알 수 없다. 시간이 한꺼번에 존재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맛볼 수 있는 것은 접시에 든 한 조각뿐이다.


성장기에 관해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전부다.


어릴 때 얘기를 하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어졌다. 한 달 전의 나에게 있어 얼굴 모르는 타인들에게 내 유년의 아픔을 호소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고작 한 달일 뿐인데 그 사이에,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사람은 이다지도 빠르게 변하는 것일까? 이 글들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매일 밤 울면서 잠들고 공황 발작에 시달리던 여자였다. 지난 달에는 아빠가 엄마한테 맞았던 기억을 떠올리고 추운 밤 정처없이 길을 떠돌며 흐느꼈다. 무덤가의 유령처럼. 울고 또 울었다. 나는 절대로 회복될 수 없을 것 같았고, 약은 끝없이 증량될 것 같았고, 약 없이 잠드는 인생은 불가능할 듯했고, 상담은 숨이 턱에 차도록 힘겨웠다.


이번 정신병원 진료 때 선생님은 두세 번만 더 오면 끝이 날 것 같다고, 나를 떠나보낼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꾸준하게 감약을 했고 지금도 감약 중이다. 약물을 끊는 일을 성취로 보는 건 위험한 관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의미가 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자는 걸 힘겨워하던 어린애였다. 어두워지는 게 무서워서 울면서 이부자리에 들고, 끝없이 생각을 하다가 밤을 지새우고, 새벽에 귀신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깨기도 했다. 평화롭게 잠들 수 있었던 나날은 내 인생에 몇 줌 되지 않는다. 나는 늘 잠과 싸워왔다. 동 트는 하늘을 보며 인생을 저주했다.


그런 내가 두려움 없이 잠들 수 있게 됐다.


이는 물론 한 달간의 마법적인 변화가 아니다. 지난 삶 동안 내가 쌓아온 경험들, 빠져나오려고 했던 노력, 읽었던 책, 매일 썼던 글들, 사귀었던 친구들, 운이 좋게도 적절한 치료자들을 만난 것, 무엇보다 내가 살아남은 덕이다.


불교 경전에서 읽은 글귀였던가? 찾았다고 생각한 것은 원래가진 것, 잃었다고 생각한 것은 원래 없던 것이라는 말. 나는 변했다기보다 그냥 원래의 나를 찾아낸 것 같다.


정신병원에 가면 좋은 점이 있다. 의사가 나의 증상을 아주 진지하게 듣는다는 점이다. 그는 나의 문제점을 알고, 자기가 도울 방법을 찾으려 한다. 상담 센터에 가서 좋은 점도 이와 같다. 상담사는 내 말에 귀기울인다. 그러는 동안 나는 경청될 만한 존재라는 느낌을 받는다. 나의 고통은 부정되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아마 거기에서부터 회복이 시작되는 것 같다. 나의 고통이 인정되는 것. 나의 존재가 경청되는 것. 그러다 보면 나 역시도 나 자신을 경청하게 된다.


난 아주 오랫동안 나 스스로가 수치스러웠다. 더럽고 매맞고 병든 어린애가 스스로를 긍정하기는 쉽지 않다. 엄마는 매일 나를 수치스러워했다. 점점 더 세게, 크레센도로. 요즘에 내가 절실히 느낀 것은, 엄마는 스스로를 수치스러워한 사람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엄마의 그 모든 신경증. 강박증. 불안과 슬픔들. 엄마의 엄마가 채워넣고 엄마가 체득해 남들에게 가르친 것들. 나에게 가르친. 우리의 가훈. 우리의 병.


나 자신을 배우기 위해 나는 그 오랜 시간을 고통 속에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로 안다. 내가 겪은 시간이 결코 의미 없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내 경험의 총체라는 것을. 그러면 나는 이제 무엇을 써야 할까?


어쨌든 이제는 다른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바로 회복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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