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린 그림, 나를 그린 그림, 나를 닮은 그림
가을 햇살이 좋고 자전거 탄 사람도, 걸어 다니는 사람도, 움직이는 차량도, 차량 안에 빼꼼 바람을 마주한 강아지들도 많던 주말의 낮.
지팡이를 짚고 머리가 하얗게 센 어르신과 따님이 함께 가게에 들어오셨다. 여기저기 꼼꼼하게 살펴보시길래 혹시라도 보시다가 의자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씀하시라고 했다.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몇 년 전 손녀딸이 두물머리 왔을 때 우리 가게에 왔었고, 내가 엽서 한 장을 선물했다고 한다. 할머니께서 엽서를 보시고 예전에 내 모습 같다며 벅찬 감정을 느끼셨고, 언젠가 한 번 이곳에 오고 싶어 하셨다고 한다. 대구에 살고 계신데 이번에 치료를 받으러 잠시 수도권에 오셨고 일부러 이곳을 찾아오셨다고 했다. 할머님과 따님, 따님의 배우자분과 함께 오셨고, 배우자 분은 커피를 사러 밖으로 나가셨다. 할머니께서 이곳까지 오신 엽서가 무엇일까...
매장 안을 살펴보시다가 엽서 한 장을 꺼내어 이 그림이라고 하셨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내가 그린 내 모습이었다. 할머니께 내가 직접 그렸고, 내 모습이라고 말하자 손을 잡으시며 너무나 행복해하셨다. ‘이렇게 늙었어도 마음은 열여섯이에요’라고 하시면서. 보고 계시던 따님도 어머니에게 같은 색의 옷이 있다고. 예전의 내 모습 같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고 한다.
할머니께서 내가 그린 그림을 보고 예전에 할머니의 모습을 찾았듯이,
나도 순간 할머니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찾았다.
한참을 얘기 나누고, 또 한참을 가게 내 상품들을 보시며 즐거워하셨고 나도 행복해졌다. 가게는 수익 창출이 주목적인데, 내 마음이 이렇게 따뜻해져도 되나. 가게 문을 여는 것에 나 이외에도 여러 사람이 함께 즐겁고 행복하다는 것에 너무 감사했다.
다행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시간에는 들어오지 않아서 할머니와 따님에게 온 마음을 전달할 수 있었다. 마무리로 엽서를 들고 계신 손 사진만 조심스레 요청드렸는데, 할머니도 따님도 그림 속 같은 포즈를 취하며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셨고, 나에게도 기억되어야 할 순간을 담았다.
내가 그린 그림, 나를 그린 그림, 나를 닮은 그림
그 주체가 ‘나’이지만, ‘나’는 단 한 명이 아니라 모두에게 ‘나’일 수도 있는 거니까.
따스한 가을날, 나조차도 밖에 나가서 나들이하고 싶었던 날.
가게 문을 제시간에 열고 닫은 것 밖에 한 게 없는데...
또 한 번 소중한 분들이 와주셔서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