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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토마토 Mar 25. 2024

생애 첫 전시 장소가 서리풀 아트 갤러리

작가님들에 대한 존경과 나의 부족함을 절실히 깨달으며

나는 기회가 있으면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지 않고 무조건 한다.

그래서 신기한 기회가 많이 찾아온다.

이를테면 작업물 하나 없고 AI에 대해 아는 것도 없지만 AI를 주제로 한 전시의 작가로 섭외가 되는 것처럼.


이것은 작년 4-5월에 진행되었던 서리풀 청년 아트 갤러리 전시 참여 회고록이다. 



전시 주제는 AI였다.

AI는 적인가, 동료인가, 둘 다인가, 혹은 둘 중 무엇도 아닌 것인가? 

주제를 위해 AI에 대한 나의 입장을 고찰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AI가 Problem Solving을 돕는 도구라는 관점을 잡고 이를 바탕으로 전시를 디벨롭해 가기 시작했다.




Beyond Computing

주판에서 Chat GPT까지.

Compute : [동사] 계산해 답을 구하다.

역사적으로 컴퓨터는 Problem Solving의 도구였다.

주판에서 시작된 컴퓨터는 각도기, 삼각자 등과 달리 계산 과정을 포함하여 

사용자에게 문제에 대한 답을 주는 장치로 기능해 왔다.

오늘날의 컴퓨팅은 Chat GPT처럼 자연어 처리(NLP) 기술을 사용해 

인간의 언어를 이해, 생성, 조작하는 인공 지능(AI)의 영역에서 

사용자에게 문제에 대한 답을 제공하고 있다.

이것이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는 대화의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어 처리의 등장 이후, 고도 지능 컴퓨팅 도구와

좀 더 복합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인간의 언어로 점점 복잡한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는 컴퓨팅 도구가 

어느 날 우리에게 답이 아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자신의 언어로.

지금까지 AI는 인간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부터 

점점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그리고 인간을 이해하는 형태로 진화해 왔다. 

이제는 우리 인간, AI가 겪은 과정과 같은 과정을 겪어야 할 시기이다.

지능과 함께 진화한 인간처럼, 지능과 함께 진화한 컴퓨팅 도구의 역사를 더듬어가며

스스로의 언어를 창조하고 그 언어로 사고하게 될 인공지능과 인간의 

초월적인 교감 관계를 상상해 본다.




이렇게 나의 관점을 성립한 이후에는 표현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컴퓨팅 도구의 진화적 흐름을 고민했기 때문에 역사적 도구를 나열하되, 

그것들이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나타냈으면 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전체의 그림이 인간과 닮은 형태를 나타나도록 설계했다.

그리고 그 형태는 초월적인 존재와의 교감을 상징하기 위해 ET의 손가락으로 설정했다.

다음과 같이 작품을 설계한 이후, 이것이 사용자와 교감하는 인터랙션 포인트를 고민했다.

피지컬 컴퓨팅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몇 주간의 긴 전시기간 동안 전원이 off 되지 않으며 지속적으로 작동하고 리셋되는 피지컬 시스템을 기획 및 구현하는 것은 상당한 도전이었다.

이를 위해 인터랙션 인풋은 위의 그림과 같이 간단한 교감의 행위로 제한하고 빛과 사운드 아웃풋이 인풋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시스템을 설계했다. 인터랙티브 사운드 제작은 혼자 진행하기 어려워 전문 사운드 디자이너를 섭외해 작업 의도를 전달하고, 사운드 디자인을 외주로 맡기는 작업을 진행했다.


설치 진행 중인 모습

전시 설치 또한 쉽지 않았다. 세로 사이즈가 통상적인 한국의 가정집에서 작업 가능한 사이즈를 벗어났기 때문에 현장에서 직접 설치하며 즉흥적 수정 보완이 일어났다. 전업 작가들이 작업실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단순히 집에서 심리적 작업이 어렵기 때문이 아님을 절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설치를 진행하며 이어서 작품의 가시성 확보를 위해 조명을 컨트롤하고 주변 작품과 분리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또한 작업물이 인터랙티브 하기 때문에 고가의 장비가 쉽게 망가질 가능성이 있어 몰입감을 깨긴 하지만 손대지 마시오 등의 안내 레이블을 제작해 붙일 수밖에 없었다.

사운드 및 라이트 인터랙션 테스트 중

소통을 의미하는 사운드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기 때문에 사운드의 구현이 많은 신경을 썼다.

어딜 터치해도 사용자의 전기신호를 감지해 사운드와 빛이 발생하지만 특정 트리거 포인트를 안내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었다.


맥북과 스피커를 장기대여 하는 것도 생각지 못한 어려움이었다. 왜 전시를 기획할 때 다양한 경로로 작업 지원금을 모색해야 하는지 이 또한 직접 체감하며 깨우칠 수 있었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은 노쇼가 많아 애당초 기획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요지는 Playtronica라는 전시에 사용된 기계의 체험이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형식이 바뀔 수 있어 다행인 부분이었다.



전시를 끝마치고 나니 기획은 창대하였지만 구현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쉬웠다. 내가 의도한 관람 효과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실히 느꼈다. 다음에 기회가 온다면 더 단순하지만 더 임팩트 있는 작업을 위해 표현에 있어서 다소 현학적인 고찰을 덜어내야 함을 깨달았다. 또한 디테일한 마감과 미적 경험에 대한 감도를 높여야만 의미뿐만 아니라 작업물 자체로도 완성도 있는 작업을 진행할 수 있으리라.




이하 전시 정보 전문

전시 제목 : 《Liquid Crystal Friendship》
 ◦ 전시 주제 : A.I 소프트웨어가 만든 창작물에 대한 동시대 작가들의 이해와 리액션을 보여주고, A.I 창작 소프트웨어를 예술 디스토피아적 존재로 보지 안 고, 이들에게서 새로운 창작자 동료 찾기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 키워드: 리액션, A.I 창작물, 새로운 동료 


《Liquid Crystal Friendship》은 A.I 일러스트레이션 소프트웨어와 한국 A.I 프로그램이 발표 한 시집에 대한 리액션에서 촉발되었다. 단순한 키워드를 입력하면 높은 퀄리티의 그래픽 작업물을 산출하는 A.I 일러스트레이션 소프트웨어의 발달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이에 대해 그래픽 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기술에 의한 기술의 종말을 감각하며 절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학 A.I 소프트웨어가 쓴 시집을 본 시인 정다연은 ‘새로운 동료가 생긴 것 같다’라고 표현했다. 본 기획은 ‘새로운 동료’라는 표현이 낯선 인식을 내포하고 있음을 포착한다. 이 인식은 AI의 능력에 대한 맹신 혹은 반지성주의적인 휴머니티 숭배를 떠나 있다. 


이제껏 A.I 기술양상에 대한 반응은 극단적으로 낙관론과 비관론 두 편으로 나뉘었으며, 이 는 예술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두 관점 모두 과도하고 편협했다. 기술맹신의 낙관론 은 생태에 대한 무분별한 폭거를 야기했고, 반대항인 기술비관적 휴머니티 숭배는 전근대에 대한 맹목적 판타지를 양산해 왔다. 《Liquid Crystal Friendship》은 이러한 이분법적 세계를 벗어나, A.I 창작 시대에 요구되는 새로운 인식론을 탐색한다. 그 탐색의 첫 시도로써, A.I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미적 대상물들에 대한 각 분야에 종사하는 작가들의 ‘리액션’을 포착하고자 한다. 본 전시는 작가들이 자기 분야의 A.I 창작물을 보고, 이에 대한 반응을 시청각적 작업으로 포착할 것이다. 따라서 본 프로젝트는 ‘A.I가 인간이 될 수 있는가’ 혹은 ‘A.I가 인간을 대 체할 수 있는가’ 하는 고루하고 연역적일 뿐인 질문들에서 의도적으로 눈을 돌린다. 본 기획은 A.I를 ‘새로운 동료’로 인식하기 위해선 인공지능의 인간성 논의를 차치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진단하고, A.I를 예술 창작 노동의 수행성을 통해 파악한다. 


액정(Liquid Crystal) 화면을 사이에 두고 교류하는 두 존재자들의 유연한 동료애를 기원하며, 본 프로젝트의 이름을 《Liquid Crystal Friendship》으로 짓는다. 이는 A.I 동료와의 관계를 추상적 이론의 망이 아닌, 구체적 사물에 기인해 판단하겠다는 의지 또한 내포한다. 창작 A.I를 동료라고 말할 때, 그것은 기존 인간예술가의 입지에 대한 불안, 작업 퀄리티에 대한 경 탄을 포함하며, 이러한 양가적 감정을 모두 수용하겠다는 태도를 암시한다. 따라서, 본 프로젝 트는 미술, 영화, 문학의 장르에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예술종사자들을 모아, 이들이 A.I의 창 작 작업물을 보고, 그 A.I를 하나의 ‘새로운 동료’로 인식하는 ‘리액션’을 포착하고 전시하고자 한다. 이는 곧 왕성히 활동할 청년 예술가들의 유의미한 시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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