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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봉희 May 17. 2020

이런 날.

 이상한 날이 있다. 알 수 없는 날. 도통 이유를 모르겠는 날.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날. 마음이 2박 3일 나들이를 간 걸까. 생각 수도꼭지가 고장이 나버린 걸까. 노트북 앞 멍 때리고 앉아있는 그녀가 넋이 나갔다. 그녀의 시선이 자꾸만 시계로 향한다. 그 말은 자정이 다되어 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녀는 지금 누굴 기다리는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그녀의 표정에서 설렘을 찾아볼 수 없는데. 그렇다면 지금 그녀는 또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했나 보다.


 내 밥을 챙겨주는 그녀는 나랑 가장 많은 시간을 마주 앉아 있는다.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내가 있는 곳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온다. 그리고는 내 몸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그다음엔 눈을 비비며 “으, 눈 아파.”라는 말을 하며 내 앞에 앉아 작고 기다란 병에 담긴 투명한 물을 눈에 넣는다. 그녀의 하루는 요즘 이렇게 시작된다. 눈에 약을 넣은 그녀가 지긋이 눈을 감는다. 그러다 벌떡 일어나 컵 가득 물을 담아 다시 내게 돌아온다. 지금부터 그녀가 연주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시작된다.


 그녀는 네모난 블록을 두드리며 도도도독 소리를 낸다. 가만히 그녀가 블록을 조립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덩    덕쿵덕    쿵   덕쿵 휘몰아친다. 이 소리는 그녀가 아주 호기롭고 재미나게 문장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다 갑자기 덩   덕  쿵덕 더더덕    쿵  덕  쿵덕  더더 덕 어디선가 강강술래가 들려오는 것 같다. 그녀는 지금 어떤 문장도 떠오르지 않는다. 자음과 모음이 머릿속에서 손에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고 있다. 그 어떤 것도 한 몸이 되지 않는다. 


 오늘 그녀는 이런 날이다. 아무것도 하나의 글자를 완성하지 못하는 날. 이런 날 어떡하지? 그녀가 머리를 헝클며 으으으 소리를 낸다. 강강술래가 평소보다 더 길게 늘어지며 들린다. 그녀가 자정이 넘기 전 스스로와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오늘 그녀의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고, 시선은 계속 허공에서 맴돌지만 나는 내 앞에 앉아 꾸준히 해내려 노력하는 그녀가 참 좋다. 내일은 그녀의 눈동자에 힘이 생기길. 그녀가 내일은 신명나는 휘모리장단을 들려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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