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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이 Jul 28. 2024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2014, 2024)

잊힌 기억을 찾아서


기억은 물고기처럼 물속 깊숙이 숨어있단다.
이게 연못의 수면이라고 치자. 너무 멀어 캄캄하고 평평해서 아무도 안 사는 것 같지?
네가 낚시꾼이라면 기억들이 좋아할 만한 미끼를 던져야지. 그러면 수면 밑에서 뭔가 움직이는 게 보일 거야.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라는 영화를 봤다. 한 남자의 현재와 과거를 잇는 유년시절 기억에 관한 영화다. 소개글을 읽었을 때 심리학 용어이기도 한 프루스트 현상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일 거라 짐작했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화자는 마들렌을 홍차에 적셔 먹던 어느 날, 깊이 잠들어 있던 기억을 불현듯 불러온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홍차에 마들렌을 곁들여 준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한순간에 현재로 몰려온다. 이처럼 화자의 기억을 회상하는 장치가 마들렌과 홍차였다.


스틸컷

 영화를 보기 전부터 호기심이 들었다. 나의 기억들은 어디에 잠잠이 잠들어 있을까 궁금했다. 기억이란 시간이라는 물결에 쓸어내려가는 어쩌면 잃어버린 한 조각이라는 생각을 해 왔다.


 현재에 존재하는 인간은 과거 경험들이 쌓아 올린 형태일 테다. 그런데도 과거 기억 혹은 경험은 그 단어에서 느껴지는 추상성만큼이나 자연적 도태를 겪게 된다. 어떤 순간은 원치 않아도 기억 저편에 잠들어 잊힌다.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준 기억인지와도 무관할 수 있다. 어린 시절 기억이라 수차례 파도에 밀려갔거나 애초에 자기 자신도 그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였을 수 있어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기억 저편 깊숙이 잠들어 있는 나의 조각이 있다. 그 기억들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져 버렸을 수도 있지만 그저 침잠해 있는 것일 수도 있다. 2미터 안 되는 몸일 뿐인데 기억이란 심연보다 더 깊이 자리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어쨌든 잠들어 있는 건 깨워 꺼내오기 전에는 잃어버린 상태와 같다.



 잊힌 기억을 깨우거나 되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발견은 과거를 회상하는 일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영화에서 잊힌 기억을 불러오기 위해 사용하는 장치는 역시 마들렌과 홍차이다. 기억은 의식적으로는 도달할 수 없을 만큼 깊은 곳에 자리해 있다. 마들렌과 홍차는 화자의 현재에서 기억이 자리한 심연으로 희미하게 이어진 끈을 건드려준다.



 영화를 보는 동안 잊힌 기억들을 많이 떠올렸다. 기억에 가 닿는 건 잊혀진 자아를 발견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현재를 바쁘게 살아내다 보면 그 현재가 어떤 의미를 갖기도 전에 과거라는 두 글자가 되어 쓸려 내려가버리고 만다. 그리고 어떤 기억은 무언가를 그토록 말해 주지만 추억이라는 두 글자로 덮어버리고 만다. 문득 예전 사진들을 보다가 마치 남겨진 사진 한 장 이상의 실재성은 없다는 듯 사진첩 앱을 끄는 것처럼. 하지만 영화에서 말하듯 현재를 풀어내는 힌트가 그곳에 있을지 모를 일이다.


 여름날 만난 이 영화가 내게는 화자에게 마들렌과 홍차와 같은 매개체가 되어 주었달까. 영화에서 화자는 마들렌과 홍차라는 미끼를 계속 던진다. 잊힌 기억들이 어떻게 꺼내어지는지 영화를 통해 발견하실 수 있으면 좋겠다.



<다른 대사>

추억을 낚아 올릴 미끼로 뭐가 좋을까?

추억은 음악을 좋아하지.


네가 낚시꾼이라면 기억들이 좋아할 만한 미끼를 던져야지. 그러면 수면 밑에서 뭔가 움직이는 게 보일 거야.


죽음이 그 애를 못 살게 하는 게 아니야.

쳇바퀴 도는 삶이 문제지. 당신 레코드판처럼.


네가 텃밭에 안 오니까 텃밭이 너에게로 가.


나쁜 추억은 행복의 홍수 아래 가라앉게 해,

네게 바라는 건 그게 다야.

수도꼭지를 트는 건 네 몫이란다.


네 엄마는 여기 있어, 네 기억의 뿌연 물속에.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로는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Vis ta vie. 네 인생을 살거라.


Nathalie PROUST. 일시고장.


<영화 정보>

- 2014년 개봉, 10년 만인 2024년 재개봉

- 프랑스

- 코미디, 드라마

- 예술영화관 씨네큐브에서 관람 가능

마들렌&홍차 엽서세트

 영화관 입장할 때 비 오는 날에 맞게 세심히 포장된 포스터와, 영화가 끝난 후 깜짝으로 나눠주시는 마들렌&홍차 엽서세트가 무척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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