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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이 Aug 11. 2024

퍼펙트 데이즈(2024, 2023)

Perfect Days는 어떤 모습인가요


 주인공 히라야마는 'The Tokyo Toilet'이라는 문구가 등에 새겨진 근무복을 입고 등장한다. 도쿄 시내 공공화장실을 돌아다니며 청소와 유지보수를 하는 청소부 히라야마. 영화는 이 한 남자의 일상에 밀착해있다. 우리는 매일 많은 사람들을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간다. 서로 아무개인 사람들. 히라야마 역시 우리에게 그런 사람이면서 히라야마와 같은 아무개 자체일 테다. 그만큼 히라야마는 평범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그런 사람이다.


시내 공공화장실을 청소하는 히라야마 출처. 네이버 무비

 일상에 밀착해 있다는 건 뭐랄까, 주인공 곁에 바짝 달라붙어 집중조명하는 기분이다. 길에서 마주쳐도 아무개 이상의 관심을 받을 일이 없는 흔한(?) 남자의 24시간이 어떻게 살아지는지이다. 한 남자의 일상이란 뭘까. 영화에서 일상을 그린다면 어떤 모습일까. 장면들은 히라야마의 하루를 경계로 이루어진다. 큰 반전 없이, 성인이 된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일 그리고 개인적인 생활모습이 히라야마의 하루를 채우는 대부분이다. "오늘 뭐 했어?"라는 질문에 히라야마의 대답은 단 한 줄로 끝날 수도 있다. "일 다녀와서 쉬는 중이야" 정도로. 히라야마는 대화하는 상대에 따라 자신의 하루를 무심한 듯 한 줄 정리할 수도, 특유의 잔잔한 웃음을 띄우며 안부 인사에 그저 화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카세트 테이프로 듣는 올드팝, 저자에 대한 코멘트를 덧붙이는 서점 출처. 네이버 무비

 그런데 영화를 곰곰이 음미해 보니 히라야마의 일상이 꽤나 촘촘하다. 하루, 또 다른 하루에 일종의 구조를 부여하는 일과 생활이라는 큰 맥락에서 히라야마는 자신만의 틈새를 가지고 있다. 매일 출근 전 옆방에서 키우는 식물들에게 물을 주고, 문을 나서면 바로 앞에 있는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는다. 청소 차량을 타고 이동하면서 좋아하는 카세트 테이프를 듣는다(ost들이 정말 좋다). 점심이 되면 도심에 있는 공원에서 나무를 보며 샌드위치를 먹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카메라에 담는 것 역시 일상 속에서 지닌 틈새이다.


 퇴근해서는 단골 식당에 들른다. 도쿄 지하철에서 쉽게 발견할 듯한 역사 내 식당이다. 주인장은 히라야마가 오면 바삐 일하는 와중에도 "오늘도 수고했어!"라며 밝게 인사한다. 휴일에는 자전거를 타고 사우나와 근무복 빨래를 하러 간다. 평일 틈틈이 찍은 사진을 인화해 월별로 모아두는 작업도 한다.


 평일 휴일 상관없이 다다미방에 누워(때로는 엎드려) 책을 읽다 잠드는 장면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인공이 일상적인 사람이다. 늘 어딘가 간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나 역시 일상에서 늘 어떤 곳을 찾아 잠시 머물고 집에 오는 것처럼. 히라야마도 우리도 삶을 지속해 가는 데 있어 어느 정도의 시간을 머무를 공간이 늘 필요한 존재이지 않을까 싶다.



일상 사이사이 웃음짓는 히라야마 출처. 네이버 무비

 히라야마의 일상에 밀착한 만큼 장면마다 그의 감정선이 세심하게 표현되었다. 틈새를 즐길 때의 행복감뿐만 아니라, 시내 공공화장실 청소부라는 직업으로 인해 히라야마가 종종 경험할 법한 감정들도 그려진다. 공원에서 길을 잃은 아이를 도왔다가 아이 엄마가 아이 손을 닦는 모습을 볼 때, 여동생이 "정말 화장실 청소일 해?"라고 안타까운 목소리로 물을 때. 그때마다 히라야마의 눈에 맺히는 슬픔까지 숨길 수는 없다. 그럼에도 히라야마가 자기 삶에서 뿌리를 깊이 내린 강인한 사람일 수 이유는 그가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 같다. 틈새들은 일상의 그물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고 모여서는 그의 하루를 단정하게 만들어 준다. 남자친구는 자신만의 세계라고 표현했는데 공감이 되었다. 자신의 세계를 잘 구축한 사람은 어딘가 모르게 강인하니까.


하루를 마무리하는 휴식처 출처. 네이버 무비

 이렇게 일과 생활이라는 큰 틀에서 히라야마가 가진 틈새들을 발견하는 게 즐거웠다. 그의 일상에는 자신만의 구조가 있고 매일 변함없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스펙터클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한 남자의 일상을 가까이해 보는 것 뿐인데 나의 일상도 조금 단단해진 기분이랄까. 나라는 아무개에게 히라야마라는 아무개의 하루하루가 꽤나 아름답다고 느껴져셔일까, 내게 일상에서 가진 틈새들을 조명해 보는 기회가 되어서일까.


 사람마다 Perfect Day의 정의는 다를 테다. 이 남자의 하루하루에 대해 Perfect Days라고 이름을 붙인다면 잔잔히 고개를 끄덕이고 싶다. 그리고 대단해 보이지 않아도 나와 네가 가진 틈새들을 더 잘 돌보아 주어야겠다는 따뜻한 마음이 든다.



<대사>

곤도 와 곤도, 이마 와 이마

(나중은 나중, 지금은 지금)


이 세상엔 수많은 세상이 있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연결되지 않은 세상이 있지



<영화 정보>

- 2023년 개봉, 2024년 재개봉 / 2023년 칸영화제 남자연기상 수상

- 일본 / 주연. 야쿠쇼 코지

- 드라마

- 예술영화관, 주요 영화관 상영 중(2024.08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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