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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그릇, 새로운 마음

부모님의 물건을 삶에 들이다. 그리고 이어가다.

by 현이


설 연휴를 맞아 부모님 댁에 다녀왔다. 고향 집에는 역시 맛있는 음식, 그리고 집을 채운 부모님의 온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에서 자취를 한 지 7년째. 혼자 사는 시간 동안 생활양식에 대한 나름의 모양새도 갖추었다. 그 과정에는 많은 시행착오와 재정의 작업이 있었다. 현재 내가 사는 공간에서 가장 우선하는 가치는 ‘미니멀리즘’이다. 풀어서 표현하면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기 정도. 그 이유는 스스로 둘러보니 이미 필요한 것을 다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누군가 말했듯이 꼭 필요한 만큼은 언제든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물건을 구입하는 데 신중하다. 구입하기 전에는 대체하여 사용 가능한 물건이 있을지 떠올려보고, 꼭 필요한 건지 자문한다. 혼자서 살림을 하다 보면 음식이든 물건이든 꼭 남아서 버리게 되는 게 있었고 막상 들여와서 활용을 충분히 하지 않을 때도 잦았기 때문이다.


또한 가지고 있는 물건을 굳이 더 멋진 제품이 눈에 띈다는 이유로 교체하지 않는다. 대신에 가진 물건을 소중히 다루며 오랜 시간 함께하고자 한다. 그러는 이유는 간단하다. 새로 물건이 들어올 때 해야 하는 일들 이를테면 포장 뜯기, 놓을 자리 만들기, 추가적인 분리수거와 같은 일들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물건이나 옷을 오랜 시간 애용했을 때 문득 느껴지는 애착의 흔적이 좋다. 물건과 사람도 일종의 관계성을 맺고 있다고 생각한다. 잘 쓰면 잘 쓸수록 자기 몫을 해내는 물건으로 만들어주고 싶다.


최근에 마트 식기 매대 앞에서 그릇을 살지 말지 고민했다. 이전에 집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안 쓰던 식기들을 정리했는데, 혼자 사는 집에서 만큼은 ‘언젠가 쓰겠지‘라는 생각을 잘하지 않게 되어서다. 당시 집이 매우 홀가분해진 나머지 손님이 오면 마땅히 사용할 식기가 부족했다. 하지만 새로 그릇을 사자니 망설여졌다. 어쨌든 혼자 사용하는 날이 더 많은데 굳이 구입할 필요까지 있을까 싶어서. 마트 식기 매대 앞에서 몇 번은 발걸음을 돌린 것 같다.



그러다 설 연휴가 왔다. 고향 집에 갈 생각에 즐겁던 중 좋은 생각이 났다. 집에서 남는 식기를 찾아보는 거다! 여섯 식구가 살던 우리 집에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식기가 꽤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명절이면 형부들과 조카들까지 합해 열 명이 모여도 잘 정리되어 있던 수저세트와 식기들을 꺼내면 충분하다. 예전에는 그릇이나 식탁용 물건들 선물도 종종 오갔기 때문인 것 같다. 어머니는 버릴 것은 버리고 사용할 것은 그때그때 꺼내 사용하셨다.


집에서 사용하시던 찬기, 종지. 자취방 식탁에 활기가 생긴다.

이번에 가서 마음에 드는 찬기, 종지, 티스푼을 몇 개 골라 가져왔다. 어머니가 쓰시던 걸 사용할 수 있다니 왠지 감회가 새로웠다. 식기류는 사기로 만들어졌다 보니 오래된 것도 여전히 새것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돌아온 오늘 저녁 반찬은 새로 들여온 그릇에 담아 보았다. 예쁜 그릇에 음식을 담으니 더 정갈한 한 끼 식사처럼 보인다.


프로방스 느낌의 종지에 새우튀김과 아보카도를 담았다. 너무 귀엽다.



올해 다짐 중에 가진 걸 더 잘 사용해 보자- 가 있다. 부모님 댁에서 그릇을 가져오면서 이걸 실천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꽤 뿌듯한 기분이 든다. 어릴 적 영혼 없이(?) 읊어댔던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를 여러 방면에서 실천하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렇게 선순환하는 해로 만들고 싶다.


집에서 가져온 귀여운 종지그릇으로 티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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