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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감 가는 접객, 오전오시

한 사람을 응시하는 것

by 현이


치과수술을 받았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당분간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여전히 식빵을 먹을 수 있다. 우유에 적셔서 작은 조각으로 크루통처럼 먹으면 되기 때문이다. 보기에는 특이하지만 상상되는 맛있는 맛이다.


오늘 간 곳은 공덕에 일 년 전쯤 문을 열었지만 가보지 않은 공원 빵집이다. 왠지 인스타그램 감성이 있는 테이크아웃 전문 베이커리. 다른 빵집들을 자주 가던 탓인지 그 빵집에는 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일요일에 문도 열었겠다, 왠지 궁금한 마음이 들어 이참에 그 빵집에 가 보기로 한다. 식빵 나오는 시간이 오픈 시간은 아닌 거 같으니 천천히 집안일을 하고 산책 겸 공원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가게 밖 매대를 슬쩍 보니 식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곧 나왔으면 좋겠다- 하면서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식빵은 언제 나와요?"

흔한 이 한마디로 점원과의 대면이 시작되었다. 금발머리를 하고 안경을 낀 수수한 점원이 나를 돌아보고는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탕종식빵 말씀하시는 거죠? 잠시만요 확인해 드릴게요. 사장님~ 탕종식빵은 언제 나와요?"


그녀는 주방에서 대답을 듣고는 탕종식빵이 방금 막 나왔다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러면서 뜨겁기 때문에 컷팅은 조금 어려울 거 같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치과수술로 인해 마스크를 끼고 발음도 불분명한 상태로 말했다. "아아 그래요? 그러면 한 바퀴 돌고 올게요." 아마 그녀에게 내 목소리가 조금 이상하게 들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선한 눈빛과 맑은 목소리를 띄고 알겠다고 했다.


음, 그녀는 정말 귀여웠다. 인스타그램 감성의 카페나 베이커리에서 일하는 직원분들의 세련된 모습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탈색한 금발 머리지만, 화장기 없는 얼굴과 동그란 안경 그리고 왠지 어릴 적 좋아했을 듯한 캐릭터가 그려진 캐주얼한 티셔츠 덕분일까. 뭐랄까 소탈해 보였다. 세련된 멋짐도 좋지만, 그렇게 소박한 인상이 좋은 사람도 참 매력 있다.



공덕의 작고 알찬 빵집, [오전오시]


짧은 접객의 순간이 끝나고,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문을 나섰다. 왠지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나는 어쩌면 손님이 처음 간 매장에서 좋은 인상을 받는 게 '한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공원을 가볍게 돌고 다시 빵집으로 향했다. 식빵과 남자친구에게 줄 소금빵, 휘낭시에를 샀다. 그녀는 다시 한번 식빵은 아직 식지 않아 통으로 담아 드리겠다는 안내와 함께 빵을 예쁘게도 담아 주었다. 군더더기 없는 구매 과정이었다. 하지만 곧 다시 빵집에 가게 되는데, 손잡이 없는 봉투에 식빵과 소금빵 모두를 들고 가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손잡이 봉투를 사려고 다시 빵집에 들어갔다.


"앗, 들고 가기 어려우셨나 보군요!" 봉투를 구매하겠다고 하는 내게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는 다시 예쁘게 빵을 손잡이 봉투에 담아 주었다. 그리고 아까처럼 사람 따뜻한 웃음을 소박하게 지으며 배웅인사를 건넸다.



겉으로 보이는 대화만으로는 '딱히 뭐가 친절하다는 건지' 모르겠는 접객이었다. 다만 기류를 읽는 ENFJ로서 말하자면 뭐랄까, 그녀는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자신만의 진정성이 있었다. 꾸며진 친절함이나 사회생활용 능청스러움이 아니라 그런 사람 자체인 것 같았다. 사람 한 명 한 명을 응시하고 대할 줄 아는 사람.


나만해도 사회생활을 4년째 하다 보니 능청스럽게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만렙이 된 걸 스스로도 느낄 때가 많다. 이를테면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그냥 누구에게든 "아~ 네네". "그러니까요~“, ”정말요?" 이런 멘트를 시원시원하게 할 때 랄까. 그리고 누구와도 어렵지 않게 친분을 형성할 수 있게 된 건 강점이기도 하지만 그냥 겉으로 보이는 사회성이 높아진 덕도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제대로 응시하는 사람을 볼 때면, 그게 기술 아닌 멋진 기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는 인간관계나 대화법을 다룬 책에서 접했던 내용이 아니었다.


접객에 있어서는 준비된 접객 멘트보다, 대화에 있어서는 준비된 응답보다 더 멋진 태도가 있는 것 같다. 바로 그때그때 상대방과 소통에서 호흡을 맞추는 것. 상대방의 비언어적 몸짓, 목소리, 이런 것들과 실시간으로 호흡하는 태도. 그건 우린 모두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일률적으로 준비된 무언가 보다는 사람 한 명 한 명을 응시할 때 더 효과적인 소통이 시작되는 것 같다.


가끔 이런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을 일상생활에서 만나게 되는데, 특히 접객하는 분들에게서 종종 경험하는 것 같다. 사람을 잘 대한다는 건, 준비된 멘트보다는 상대방과의 호흡에서 나온다는 걸 오늘도 한번 더 느낀다.


역시나 빵도 맛있었다. 탕종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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