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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마음_수원통닭 옛날치킨

양손 가득 집에 오는 길

by 현이


수원 연무대로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행궁과는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인 이곳은 행궁보다 비교적 한산하다. 그러면서도 성벽을 따라 걸을 수 있고, 해질녘에는 해가 서서히 잠기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노을을 보고 우리 커플은 저녁으로 무얼 먹을까 고민했다. 그래도 놀러 온 맛이 나도록 행궁 거리로 향했다. 이십 여분의 걸음 끝에 사람들과 불빛으로 활기를 띄는 행궁 초입부에 도착했다.


행궁 앞에는 기다란 개울이 있다. 그리고 개울가를 따라 가게들이 많이 있다. 수원 통닭이 유명한 만큼 통닭집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그중에 바삐 돌아가는 듯한 수원통닭으로 들어갔다.


옛날 치킨 느낌이다.


오래 자리를 지킨듯한 가게에는 젊은 손님, 중장년층 손님들로 가득했다. 오래된 가게에 채워진 활기 넘치는 분위기가 나는 언제나 좋다. 놀러 온 듯한 분위기를 한층 더 신나게 해 주어서 그럴까.


모래주머니는 서비스, 곧이어 나온 치킨은 옛날 치킨 느낌이 물씬이다. 김치통닭도 유명하지만 이날은 그냥 치킨이 더 끌렸다.


서비스로 모래주머니


통닭까지 먹었겠다 즐겁게 식당 문을 나선다. 다시 개울가를 따라왔던 길을 걸어간다. 흐르는 물소리, 여름이라 천 주변에 빼곡히 자라난 풀들, 돌다리 그리고 저녁하늘을 밝혀주는 조명이 그린 풍경이 보인다. 역시 배를 채우고 난 뒤에는 모든 게 더 예쁘게 보이는 법이다. 선선한 저녁 바람 좋다, 하며 걷고 있을 때 남자친구가 말문을 꺼낸다.


어릴 때 아빠가 통닭을 사다주시곤 했어.


정말? 어디서 사다 주셨는지 기억나?


그건 아빠만 알 거야.


떠올려 보니 내가 어릴 적 우리 아빠도 그랬다. 저녁에 아빠가 귀가하시면 현관 앞까지 뛰어 나가곤 했다. 한 손에는 엄마가 아침마다 싸 주시는 과일이 담겨 있던 쇼핑백, 한 손에는 내가 모르는 봉지를 들고 오실 때가 종종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삼겹살이 담겨 있을 때도, 닭강정이 담겨 있을 때도, 엄마 심부름으로 사 오신 우유가 담겨 있을 때도, 사업하는 지인이 나눔 하신 피자빵이 담겨 있을 때도 있었다. 아빠의 손을 덜어드리고자 짐을 받아 부엌으로 향하던 나는 봉지에서 맛있는 걸 발견하면 늘 신이 났다.


연무대 정자에서 바라보는 해질녘

자취를 하면서 혼자 사는 현관을 드나든 지 6, 7년쯤 된 거 같다. 내 신발뿐인 현관은 고향집에 비하면 훨씬 좁다. 어엿한 어른이 되어서 고향집을 방문할 때면, 와~ 여기 현관이 이렇게 넓었어? 할 때가 있다. 지금은 우리 네 자녀 중에서 세 명이 밖에 나와 살기에 넓은 현관에 신발도 몇 켤레만 나와 있다.


내가 어릴 적의 아빠를 상상해 본다. 출근하고 퇴근하실 때마다 현관을 빼곡히 채운 우리 여섯 식구의 신발을 보셨을 아빠. 아빠는 어떤 기분이셨을까? 때로는 무거우셨을 수도 있는 아빠의 어깨가, 맛난 먹거리가 담긴 봉지를 들고 귀가하실 즈음에는 조금은 가뿐해지셨을까? 내가 봉지를 받아 들고 부엌에 뛰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빠는 늘 행복한 웃음을 띠고 계셨다.


남자친구와 옛날치킨을 먹고 따뜻한 기억을 떠올리며 걷는 길. 옛날치킨 먹었다고 이런 얘기를 하다니 푸훗. 그래도, ‘아마도 그건 사랑이었을 거야-’라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사랑은 시간이 지나도 다시금 발견될 수 있는 거였다. 우리가 걷는 그 시간에, 어릴 적 아빠의 사랑에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연무대에서 행궁으로 걸어가는 길


오늘 버스를 기다리는데, 중년이 지난 듯한 할아버지 승객께서 치킨상자가 담긴 봉지를 들고 계신 걸 보았다. 치킨을 포장해 간다는 건 역시, 자신을 기다리는 다른 누군가와 함께하기 위함이 아닐까? 가족이 반길 모습을 떠올리면서 집으로 가는 길이시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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