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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mind Mar 08. 2023

두릅나무

 겨울이 지나고 꽃구경하기 좋은 봄날이 찾아왔다. 하나둘 봄꽃이 고개를 내밀고 싱그러운 내음이 코를 간지럽힌다. 여유를 만끽하기 좋은 계절이지만 시골은 지금이 바쁜 시기다. 부모님으로부터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큰일이 아니고서야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분들인데 의외였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빈 땅에 두릅나무를 심을 거라고 하셨다. 국가에서 두릅나무 구매비용의 절반을 지원해 준다는 말에 600주나 덜컥 구매하신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그 많은 두릅을 어디에 다 심으려고요."


 두릅은 두릅나무에 달리는 새순으로, 독특한 향이 나는 산나물이다. 종류는 땅두릅과 나무두릅으로 나뉜다. 지난봄에는 집 앞 산마루에 막자란 땅두릅이 많아 어머니가 요리를 많이 해주셨다. 살짝 데거나 튀겨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그 맛이 기가 막힌다. 그래서인지 두릅이라는 이름이 꽤 반가웠다. 하지만 군데군데 알아서 자라는 두릅을 채취해서 먹는 게 아니라 직접 심는다니. 잘 자라기는 할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노동의 현장에 도착했다. 오랫동안 관리를 안 한 땅덩어리는 말 그대로 '돌 지옥'이다. 의욕 넘치게 팔을 걷어붙여 보지만 땅에 널브러져 있는 돌들이 도무지 줄어들 생각을 안 한다. "그냥 굴삭기 하루 부르지." 하고 투덜대는 나에게 어머니가 한마디 하신다. "에이, 우리끼리 조금씩 하면 되지." 나이 드신 몸으로 군말 없이 돌을 옮기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새삼스레 나는 참 곱게 자랐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정도 돌들이 정리되어 갈 무렵, 다리가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만약 자식들이 바빠서 오지 못했으면 두 분이 어떻게 작업을 하셨을까 싶다. 돌을 치운 자리에는 줄을 엮은 팩을 박아 간격을 맞추고 두릅나무를 나란히 심어 나갔다. 괭이를 사용하여 일정한 간격으로 구덩이를 파는 일 또한 보통 일이 아니다. 땅속에 박혀있는 돌덩이가 턱턱 걸리기 일쑤고, 계속 구부린 자세 탓에 허리도 아프다. 구덩이를 판 곳에 두릅나무를 던져둔다. 댕강 잘린 가지와 뿌리 흔적만 남은 나뭇조각인데 과연 잘 자랄까 하는 의문이 먼저 든다. "뿌리만 있으면 자란다"는 말과 함께 빠른 속도로 뒤쫓아 오는 어머니에 뒤질세라 다시 괭이를 높이 쳐든다.


 나무를 곧게 세우고 흙을 골라 덮어 준 뒤 땅바닥을 꾹꾹 눌러 마무리해 준다. 그리고 검은 비닐을 덮는다. 전문용어로 멀칭이라고 한다. 땅의 온도를 높여 작물의 생장을 촉진하고 잡초가 자라는 것을 막아준다. 이날따라 바람이 왜 이리도 부는지 바람에 흩날리는 비닐을 붙잡으며 덮느라 한바탕 난리를 쳤다. 온종일 허리를 숙이고 일했더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몸이 뻐근하다. 내일 아침 몰려올 격통이 미리 무섭다.

   

 씨를 뿌리고, 기르고, 수확한 것을 먹는다. 간단한 말이지만 현대사회에서 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 해 집 앞 텃밭에서 자란 각종 채소가 밥상 위로 올라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심는 게 다가 아니다. 물도 줘야 하고, 궂은 날씨도 잘 견뎌야 할 터이다. 마냥 잘 자랄 것 같이 보이던 작물들이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지 미처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은 매일 밭에 계셨다.


 오늘 심은 두릅나무가 비바람을 견디고 잘 자랐으면 한다. 식탁 위에 놓인 겨울초와 배춧잎이 오늘따라 더 푸르다. 땀 흘리고 허기져서 그런가. 입안에 베어 문 배춧잎이 더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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