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학교 앞 문방구에서 병아리를 팔았다. 손 위의 작은 생명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없었다. 하지만 쏟는 애정이 무색하게 며칠 가지 않아생을 달리한 병아리가 많았다. 박스 안 병아리를고양이가물어가 눈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기억이바래는 동안소중했던 병아리의 추억 역시 서서히 지워졌다.
퇴직 후, 아버지는 고향선산에 집을 짓고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산마루한쪽 모퉁이에 닭장을 짓고 병아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폭 1m 남짓 나무판자에 철망을 덧대구색만 겨우 갖췄다. 병아리들이 뛰놀던 공간은 어느덧 좁고 빽빽해졌다. 닭장을 새로 짓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쉽지 않다. 화분 정리, 밭갈이 등 미뤄둔 일이 산더미라 닭장 리모델링은 항상 뒷전이다. 서열싸움에 밀린닭들은 깃털이 듬성듬성 빠져있고흙먼지를 뒤집어쓴 꼴이 말이 아니다.
새로운 닭장을 짓기 위해 자식들이 한데 모여 팔을 걷어붙였다. 철물점에서 구입한 강관으로 뼈대를 갖춘 뒤 폐패널을 조립하여 벽을 세웠다. 그 위로 지붕을 덮고 빈 곳은 철망으로 막아 숨구멍을 틔었다. 아버지 손을 거치자, 모이통도 산란장도 뚝딱 생겨났다. 좁았던 닭장은 이제 어엿한 사육장으로 거듭났다.집을바꾸니 닭들이 몰라보게 변해간다. 지저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영롱한 푸른 빛을 띠는 듯하다. 전에 봤던 청계가 스스로 목욕재계라도 한 것일까. 옆에서 지켜보던 아버지가 한마디 했다. “지난번에는 닭장 청소가 잘 안돼서 그래." 집이 좀 넓어지는 게 무슨 대수일까. 닭은 원래 지저분하다는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환경을 바꾸니 지저분한 닭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새벽 6시. 익숙한 시계 알람이 울린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거울 앞에 서면 피곤함에 찌든 내 몰골을 마주한다. 피부는 푸석하고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와 있다. 사무실 책상 위로 보이는 어지러운 서류들은 답답한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쳐내 보지만, 빠른 속도로 쌓여가는 공문에 마음이 무겁다. 가끔 회사가 좁은 닭장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매일 아침 어색하게 그 마음을 숨기고 밥 벌어먹는 어른이 되었지만, 오늘은 쌓인 일을 잠시 접어두고 책상 정리를 해본다. 무턱대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게 능사는 아닐 터이다. 정리된 책상을 보니 마음이 한결 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