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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mind Aug 10. 2022

반짝이는 박수 소리

 사람은 대화를 통해 소통한다. 세대 간이든 젠더 간이든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말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일까. 조금만 둘러보면 그 말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말이다.     


  세상에는 듣기 싫은 말조차 듣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대화가 어렵다는 것은 당연히 힘든 일이다. 침묵의 세계와 소리 세계는 경계가 분명하고, 누군가에게는 서로 다른 존재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생각이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려주신 분이 있다. 바로 10여 년 전 수어통역센터에서 만났던 농통역사 K 간사님이다.      

행사가 있는 날이면 수어통역센터는 늘 바빴다. 간사님은 언제나 간결하고 분주한 손짓으로 나에게 이것저것 지시했다. 가끔 내가 수어를 이해 못하고 멀뚱한 눈으로 가만히 서 있을 때면 “아우우” 하시며 이마를 짚으시곤 했다. “바보, 수어 열심히 빨리 안 배울래!” 워낙에 털털하고 터프한 성격의 간사님에게 수어가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이런저런 놀림과 구박의 대상이었다. 돌이켜 보면 농아문화에 쉽게 적응하고 수어도 빠르게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분의 구박 덕이었다고 생각하니 지금은 고마울 뿐이다.     


소리가 없는 세계, 그 속의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건청인들보다 더 활기가 넘친다. 이곳에는 항상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사랑해”라는 말을 아무에게나 남발하는 호성(가명)이라는 악동이 있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듯, 사랑한다는 말은 아무리 많이 해도 밉지 않았다.  


오후가 되면 학교를 파한 호성이를 항상 마중 나가야 했다. 엄마 손을 뿌리치고 곧잘 도망갔기 때문이다. 무임승차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아이가 청각장애라는 사실이었다. 호성이를 센터로 무사히 데려오면, 다음 단계는 공부를 시켜야했다. 어려워하면서도 손가락을 이용해 셈을 하고, 한글 단어들을 공책에 받아쓰는 모습을 보면 기특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난기 심한 나이인 만큼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장난을 쳤다.      


언젠가 호성이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나를 가리키며 수어를 한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서야 그 뜻이 “바보, 돼지, 이상하다” 등의 짓궂은 말임을 알았을 땐 황당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나의 설명을 들으며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마도 함께하는 동안 꽤 깊은 정이 든 까닭일 것이다.

    

아이에게 도망을 가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대답은 의외로 싱거웠다. “그냥 심심해서”라고 했다. 심심해서, 심심하다는 말은 단순한 열두 살배기 아이의 장난스러운 대답이 아니었다. 들리지 않는 전화기, 자막이 없는 한국영화. 실제로 농아인이 일상에서 부딪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사회의 무관심이다.

     

많은 사람은 농아인을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과 같이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평범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마도 이런 편견들이 어린아이를 심심하게 했을 것이다. 수어가 익숙하지 않았던 상태에서 처음 호성이를 보았을 때 어색하게 "안녕"이라고 인사했었다. 그때 나의 작은 손짓이 호성이에게 큰 기쁨이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농아인에 대한 작은 관심은 그들에게 큰 힘이 되고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호성이의 부모는 아들이 일반학교에 진학하여 건청인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며 장애를 극복하길 바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호성이는 선생님이나 친구들과도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 없어서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역시 구화 중심 교육을 하는 나라다.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도 훈련을 통해 구화를 배우면 건청인처럼 말하고 듣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입술을 읽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외국인의 말소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 않고 외국어를 소리 내어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이 어떤 발음으로 말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정확한 발음을 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변 말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에게 통합교육이나 구화를 강요하는 건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청각장애인 가족을 둔 누군가의 말이 기억난다. “내 어린 시절의 꿈은, 커서 청각장애인이 되어 멋지게 수어를 나누는 것이다.” 그 말이 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나무라는 죽비 소리로 들린다.

     

들리지 않는 장애를 안고 삶 속으로 뛰어들기란 호성이에게 무척이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이런 호성이를 평범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리는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들리지 않는 자신보다 소리를 듣는 사람이 더 이상하지 않았을까. 호성이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언제나처럼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길 바랐다.     

언젠가 역에서 호성이를 마주친 적이 있다. 반가운 마음에 분주한 손짓으로 말을 했다. KTX를 타고 외할머니 댁에 가니 신난다고 했다.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흐뭇했다. 이제 도망 안 가냐고 물으니 친구가 생겼고, 병원에서 일도 한다고 했다. 손가락으로 숫자 셈을 하던 꼬마가 잘 자란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말할 수 없고 들리지도 않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밝고 행복하게 사는 이들이 있다. 반짝이는 손동작으로 다정한 속삭임을 전하는 사람들. 이들 속에서 나의 어둔 가슴은 반짝이며 조금씩 소리 내어 빛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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