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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mind Jan 23. 2022

스타일

변하는 것들

 어린 시절 나는 인사성이 밝은 아이였다. 부모님이 어른을 보면 항상 공손하게 인사를 하라고 가르친 덕분이다. 마을 어르신의 칭찬도 한몫했던 것 같다. 몇 달 전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했다. 아파트로 이사를 온 나에게도 이웃이 생겼다. 하지만 서로 인사를 주고받지 않는다. 언제부터였을까. 가벼운 인사조차 고민하게 된 날이. 무수한 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피로감을 느낀다. 한때는 툭 건네고 돌아오는 인사가 하루를 기분 좋게 만들 때도 있었다. 무엇이 변한 것일까.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말했다. 인간의 본질을 결정하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개인은 스스로 존재 방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인간의 본질이 결정되어 있다면 개인은 그 결정에 따라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본질이 결정되어 있지 않다면, 한 사람의 자각적인 생활방식이 실로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는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무거운 짐이다.     


 사르트르가 말한 ‘자유’를 사회에도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사회를 규정하는 본질이 결정되지 않았다면, 그 사회가 선택한 생활양식에 따라 삶도 바뀔지 모른다. 이러한 예의 하나가 ‘주거 스타일’ 변화에 따라 달라진 삶의 모습이다. 1960~70년대 산업화가 시작될 때의 주거 스타일과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과거의 주거 스타일이 단칸방과 골목으로 대변되었다면, 지금은 대체로 아파트 문화가 주거 스타일로 자리를 잡았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가 원해서 선택한 것이지만 과연 우리에게 긍정적이기만 한 것일까.    

 

 ‘김기찬’ 사진작가의 ‘골목 안 풍경’ 사진집을 본 적이 있다. 작가는 1968년부터 2001년까지 근 35년 동안 서울의 골목 안 풍경을 찍는 데 인생을 바쳤다. 여기 담긴 사람들과 삶의 현장은 왠지 모르게 사람 냄새가 난다. 비록 그 시대는 물질적으로 가난했지만, 사람들이 나누던 마음은 넉넉했다. 한데 모여 음식을 나눠 먹고, 골목에서 마주한 이웃과 정답게 이야기하는 모습 또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다. 이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집이 좁고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단칸방에 온 식구가 모여 살기도 했기에 개인적 공간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집 밖을 나와 골목으로 가야만 했다. 골목은 자연스레 마을의 광장이요, 놀이터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다르다. 아파트 주거 문화가 보편화 되었다. 주거 스타일의 변화가 삶의 편리·안전을 위한 쪽으로 가다 보니 더는 문밖을 나갈 필요가 없어졌다. 집의 편안함과 아늑함, 여기에 덧붙여 인터넷의 보급은 사람들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을 늘리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물질적 풍요와 주거의 편리함 덕분에 이웃 간의 교류는 예전만 못하게 되었다. 현관 손잡이에 상추 한줌 걸려있기도 하고, 전 굽는 날이면 ‘이웃집 갖다드려라’ 는 어머니 말에 부리나케 달려가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돌아올 때가 있었다. 친구들과 좁은 골목길을 자전거로 내달리면, 어김없이 마을 어르신의 호통소리가 따라왔다. 누구든 위험한 행동을 하면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을 내곤 하셨다. 내심 걱정스러운 마음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던 ‘어르신’이 흔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어르신’의 호통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교복을 입은 학생이 백주대낮에 담배를 피우고 있어도, 어둑한 골목길에서 누군가 약한 친구를 괴롭혀도 누구 하나 선뜻 그들을 막지 않는다. 뿔난 ‘어르신들’이 사라진 이 시대의 골목길에는 CCTV만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물질적 부족에 시달렸던 골목 안 사람들에게 그 시대는 기억하기 싫은 과거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너도나도 집 담을 높이고 이웃 간의 경계심 또한 높아진 사회를 먼 훗날 기억하고 싶어 할까. 예전보다 배고픔은 덜 하지만 우울증과 자살률이 증가하는 현상은 새로운 주거 스타일 변화에 따른 부산물일 수도 있다. 인간이 주체적으로 살아갈 자유의지를 가진 대신에 끝없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것처럼 한 사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스타일이 규정하는 실존적 문제는 스타일은 변할 수 있기에 영원히 계속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는 신화 속 시시포스처럼 떨어질 것을 알면서 평생 다시 꼭대기까지 바위를 날라야 하는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사진출처 : 김기찬 (1938~2005) 골목안풍경 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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