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사랑해”라는 말을 아무에게나 남발하는 호성(가명)이란 이름의 밝은 악동이 있다. 호성이가 학교를 마치고 오는 시간에는 누군가 호성이를 데리러 항상 마중 나가야 하는데 그 이유인즉슨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곧잘 도망가기 때문이다. 무임승차에 마산, 대전 등 시 외 지역을 제 집 드나들 듯 하는 호성이도 문제지만 더욱이 큰 문제는 호성이가 들리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청각장애아동이라는 사실이다. 호성이를 무사히 센터로 데리고 오면 국어와 수학 공부를 시킨다.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어가며 셈을 하고 한글 단어들을 공책에 받아쓰는 호성이의 모습을 보면 가끔 기특하게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장난기 심한 나이인 만큼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눈치를 보며 장난치기 바쁘다. 언젠가 호성이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수화를 한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서야 그 뜻이 “바보”, “돼지”, “이상하다” 등의 짓궂은 말임을 알았을 때 황당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도 호성이에게 무엇을 설명해 주었을 때 “알아들었다”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아마 모르는 사이에 꽤 깊은 정이 든 까닭일 것이다. 언젠가 호성이에게 도망을 가는 이유를 물었던 적이 있다. 이러한 물음을 던지면 언제나 같은 대답이 나온다. “심심해서”
"심심해서" 이 말은 단순한 12살 꼬마의 장난스러운 대답이 아니라 농아인의 삶이 어떠한지를 알려준다. 실제로 청각 장애인들이 일상에서 부딪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한 사람과의 단절이다. 대부분 사람은 농아인을 의사소통이 어려운 외국인과 같이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평범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마도 이런 편견들이 어린 호성이를 심심하게 하나 보다. 수화가 익숙하지 않았던 상태에서 처음 호성이를 보았을 때 어색하게 "안녕"이라고 인사를 했던 적이 있다. 그때 나의 작은 손짓과 관심이 호성이에게 큰 기쁨이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이처럼 농아인에 대한 작은 관심과 배려는 그들에게 큰 힘이 되고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들리지 않는다는 장애를 안고 앞으로의 삶 속으로 뛰어들기란 호성이에게 있어 무척이나 용기가 필요한 일일 것이다. 이러한 호성이를 평범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누구인가. 아직은 들리지 않는 자기보다 들리는 내가 더 이상한 호성이. 호성이가 사람들의 작은 관심과 배려로 언제나처럼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길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