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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나이퍼두 Dec 11. 2021

내 직업은 다이어리 만드는 남자다.

다이어리 제작자 된 이야기

작년 가을부터 내 직업의 하나는 다이어리 만드는 남자가 되었다.


작년 가을 따뜻한 월급 생활을 청산하고 춥고 배고픈 전쟁터로 나왔다. 퇴사라는 결정을 하는 것에 큰 도움을 준 아이기도 하고 이제 나의 평생 직업 중 하나가 '다이어리' 제작이다. 나는 다이어리 제작자이다. 다이어리 제작자가 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내가 퇴사를 할 때, 나가서 뭐 할거니? 라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는데, '다이어리' 만들겠다고 표현을 하면 다들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다이어리를... 이라며 하던 말을 멈추곤 했다. 그냥 더 깊게 대화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맞다. 우리 잡스형이 큰 업적을 남기고 떠나시며 세상은 더 많이 변했다. 스마트폰 세상이다.이런 시대에 뒤쳐지는 놈이라고 할 것 같은데, 나는 앱개발도 플랫폼 제작도 아닌 다이어리 제작을 선택하게 되었다.



벌써 25년이 넘었다. 나에게 오랫동안 꾸준히 해온 것이 있다. 바로 종이에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첨에는 별거 아닌 일에서 시작이 되었지만 군대와 대학때는 이미 다이어리 쓰는 것에 좀 익숙해져 있었고, 언젠간 내가 성공하면 다이어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사실 다른 다이어리를 오랫동안 쓰며 가졌던 불만과 생각도 있고 나도 나름 나만의 양식을 만들수 있다는 생각에서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 다꾸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지금 불렛저널이란 단어가 나오기 전부터 모눈종이와 유선노트에 '자'를 활용하여 계획표를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는 행위를 오래전부터 해왔다. 나도 나름 프로계획러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보니 다이어리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조금 더 깊이 있게 했던 것 같다. 새벽마다 나를 괴롭히고 성장에 목마른 아이는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좋아하는가? 혼자서 적을 때마다 등장하는 것 중에 하나는 '다이어리'라는 사실에 나 역시 많이 놀라고 놀랐다. 그래서 해보겠다는 생각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나는 전문 디자이너가 아니다. 심지어 기계공학과 엔지니어 출신에 남자다. 엔지니어가 꼭 자동차랑 비행기를 만들고 정비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다이어리를 만들어 보자는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되었다. 인쇄, 출판, 판매 모든 경험이 부족했다.


업계 시장의 상황을 보았다. 스마트폰 시대라 이제 인기가 없을 것으라는 생각과 달랐다. 예전보다는 인기가 없지만, 아직 다이어리 시장에서 경쟁은 참 치열했다. 경쟁이 치열한 이유도 다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재능이 넘치는 친구들은 1인 미디어 시대를 활용해 다이어리 콘텐츠를 생산하고 공유하고 이제 판매를 하는 친구들 까지 있었다. 그리고 몇 년뒤에 그 친구들은 사라진다. 오랫동안 터줏대감처럼 다이어리 하면 생각나는 업체들도 정말 많다. 거기에 별다방 커피에서 매년 다이어리를 출시하고 있었다. 조금 영향력이 있고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XX플래너'를 출시를 하며, 이렇게 플래너를 쓰면 저처럼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을 하는 것이 이 다이어리 시장이다. 진입장벽이 높으면서도 아주 낮은 것 같았다.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솔직히 정말 많이 했다.




회사를 다니며 테스트 차원에서 다이어리를 디자인하고 제작을 했다. '채우다'라는 브랜드명을 만들고 로고도 만들었다. 나는 아들을 팔았다. 우리 아들이름이 '채우'이다. 나는 자식에게 무엇이라도 의미 있는 것을 주고 싶은데 그가 원한다면, 이름의 주인공에게 주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그만큼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했다.


짧은 준비기간이지만, 어떻게든 2020년 다이어리를 출시했다. 그리고 어느날부터 판매가 되었다. 신기했다. 리뷰도 달아준다. 갑자기 인생 플래너라고 해주시는 분들도 있다. 처음이 분명 어설펐지만, 시작이 나에겐 분명 용기를 주었다.


2020년 다이어리 채우다플래너


그리고 몇개월이 지났다. 3년을 죽어라 회사를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뭐라도 해보겠다고 참 많은 노력을 했는데, 결론이 대상포진이다. 그냥 마음이 답답했다. 결국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사직서를 내고 나니 한달이라는 시간을 줄테니 생각을 해보라고 한다. 난 한달동안 2021년 다이어리를 만들며 확신이 들었다.


내가 다이어리를 만들어서 밥을 먹고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제 떠날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퇴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준비하여 출시한 다이어리가 2021년 다이어리 채우다플래너이다. 노하우도 부족했고 경험도 부족했음에도 온라인 시장에 작은 성장이 이어지며 작은 포션에 자리를 조금씩 잡혀갔다.

21년 다이어리 채우다플래너


다이어리 제작을 본격적으로 한 지 1년이 지났다. 이번 여름과 가을 22년 다이어리를 제작하기 위해 참 많은 맘 고생을 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편리하고 도움이 되는 것일까? 외면 받지는 않을까? 새로운 시도가 거부감이 들지 않을까? ... 참 많은 생각을 하며 고치고 고치고 고쳤다.


그렇게 지난 11월에 처음으로 22년 다이어리가 출시되었다. 난 사실 첫 날 혼자서 많이 울었다. 기뻐서도 슬퍼서도 아닌데 그냥 울었다.


만들고 나면 늘 아쉽다. 몰랐던 것도 많았고 그냥 아쉽다. 알았던 것도 문제가 되고 판매라는 단계는 나에게 어려움을 제시한다. 지금 다이어리 시즌에 열심히 다이어리를 판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2년 다이어리 채우다플래너


 내 다이어리를 구매해주신 분들 그리고 앞으로 구매 예정인 분들에게 약속을 드릴 수 있는 것이 하나가 있다. 지금 선보인 제품보다 다음에 선 보일 제품은 반드시 더 좋게 만들겠다고 약속하고 싶다.


이제 내 직업이 된 것 같다.

늘 생각한다.


다이어리를 더 잘 만들고 싶다. 

더 좋은 제품과 퀄리티를 제작해보고 싶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다이어리가 되게 하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플래너를 만들고 싶다.


나도 알고 있다. 모든 사람을 만족하는 무언가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나는 늘 기도한다. 

내 직업은 다이어리 만드는 남자다. 그렇게 난 이제 매년 가을이 찾아오면, 다음 해 다이어리를 출시하는 특별한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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