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가
명절이다. 사실 난 명절을 막 좋아하지 않는다. 명절은 시댁이라는 단어 하나로 참 이야깃거리가 많다. 나 역시 결혼한 지 10년이 되어가고 엄마 역시 시어머니를 한 지 10년이 되어 간다. 우리 와이프도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된 지 10년이 되어간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우리 집의 명절은 늘 그냥 그랬다.
시댁과 친정을 이야기할 때, 늘 며느리는 불편하고 시어머니는 불편한 존재이다. 사실 우리 집도 늘 그렇다. 늘 비슷하지만 내가 보는 아내, 엄마, 그리고 나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며느리들이 주장하는 시댁이 불편하다는 것에 절대 부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 역시 우리 집이 무언지 모르겠지만 불편하다.(고향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내가 사는 집이 좋구나 한다) 그런데 와이프에게 "우리 집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지내"라고 한다면,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싶다. 어불성설이다.
사실 우리 집은 조금 일반적이진 않다.
우리 집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이혼을 했다. 자랑도 아니지만 욕먹을 일도 아니다. 집안에 대해 물어보고 질문한 사람이 날 불쌍하게 여기거나 질문한 사람이 당황해한다는 것을 느끼고부터 나는 그냥 당당하게 먼저 오픈하고 말한다. 내가 죄지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에게 명절은 양쪽 집안이 모두 대가족이라 명절이 시끄럽고 양쪽 집안 다니는 것이 재미있었던 시절과는 사뭇 다른 명절이 되었다. 수능을 망치고, 그래도 난 서울 근처로 향했다. 그렇게 고향을 떠났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가라. 서울 가서 살면서 서울 여자랑 결혼해야지.' 이게 내가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첫 번째 꿈이었다. 그래 난 꿈을 이룬 사람이다. 고등학교 자습시간에 공부 왜 열심히 하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XX대학교 이러는데, 난 사실 그런 목표 없었다. 그냥 서울 가고 싶었다. 경주도 싫고 그냥 서울이 좋았다. 그래서 난 촌놈이다.
외동아들인데, 홀시어머니를 만났다. 여자들 세계에서 이 결혼 반대한다는 이야기 나오기 딱 좋은 주제이다. 그래도 난 와이프를 잘 속여서 결혼을 했다. 외동아들인데, 홀시어머니의 전제조건이 하나 있다. 그 아들이 효자면 더 골치 아프다.
다행이다. 난 효자가 아니다. 사실 효자에 관심이 없다. 그럼 난 불효자인가?
사실 세상에 미친 효자들이 많다. 늘 부모님께 전화를 하고, 명절에는 당연하고 평상시에도 가족모임이 많다. 부러워서 그런 건 아닌데, 난 저게 싫었다. 꼭 저렇게 자주 만나야 하고 자주 봐야 하는데 명절은 또 왜 그렇게 챙기는 것일까?
나도 이제 자식을 키우고 사랑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잘되길 바라고 공부도 잘하길 바란다. 나도 그냥 보통의 부모들처럼 자식이 없는 재능 있는 재능 다 찾아서 잘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난 언젠가 우리 아들이 좋은 여자 만나 결혼하면, 나와 우리 와이프에게서 떠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1순위는 와이프가 되고, 2순위는 자식이고, 3순위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나는 저 마인드인데, 홀시어머니인 우리 엄마는 아니였다. 결혼 전에 나는 엄마의 아들이자 남자 친구였고, 결혼을 하니 남자 친구를 빼앗아 간 그 망할 X이 우리 마누라가 됐다. 결국 사랑과 전쟁에 나온 이야기가 멀리도 아닌 우리 집에서 일어난 것이다.
쿨한 시어머니라 믿었던 엄마는 식스센스보다 무섭게 아들과 며느리를 당황시켰다. 결혼 전 그렇게 쿨한 엄마가 없었는데, 결혼 후 혼수에 남에게 보여주는 무언가 때문에 갈등이 시작되었다.
나는 이유도 모르고 사과를 했다. 반성문 좀 써보고 편지를 써보면 알겠지만, 분위기 파악 못하고 반성문 쓰면 그건 오히려 독이 된다. 이유도 모르는 사과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아들이 태어나고 엄마가 사는 집을 수리하는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엄마는 나에게 또 서운함이 폭발했다.
아이가 100일무렵 함께 4시간을 넘게 운전해서 데리고 갔는데도 문전박대를 당했다.
나도 한 성깔 좀 하는데, 그날 이후 난 남처럼 연락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1년을 보냈다. 연락을 서로 하지도 않았고, 용서할 마음도 없었다. 사실 그때가 오히려 편한 명절이 되었다.
그 사건 이후 우리는 거의 2년 만에 다시 만났다. 마치 그 일이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마음속에 그 일은 있다. 꼭 이 방법을 추천하지는 않지만, 결혼을 하고 새 가족을 만들면,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 서로가 이해하고 협의하여 그러면 제일 좋지만, 그런 집안이 있을까?
나는 엄마가 기대하는 아들이 되고 싶지 않았고, 효자 될 마음도 없다. 그런데 부모도 그래야 한다. 내가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생각하면 세상 젤 억울한 게 부모이다. 당연히 부모가 자식을 키우고 고생하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식의 인생이 있다. 그걸 인정해주고 놓아주어야 한다.
조금 멀어지기도 해야 하고 보고 싶으면 전화하면 된다. 서로 불편한 일을 안 만들기 위해서는 각자의 라이프가 잘 형성되어야 한다. 아들에 대한 마음이 이러니, 며느리가 딸이 된다는 것은 소수의 일이다.
아직도 엄마는 늘 서운해하며, 본인 자식이 세상에서 젤 잘난 아들이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서울에 아파트 20억짜리 사주면 자본주의 특성상 돈의 노예가 되어 잘하겠습니다. 잠시 이럴 수도 있는데, 나는 뭐 그런 것도 없다. 꼭 돈이 문제가 아니다. 이건 그냥 내 인생이다. 걱정을 해준다고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없고, 크게 바뀌는 것도 없다. 자식 역시 잘 키워준 것에 감사하면 된다.
그냥 남은 인생은 엄마를 위해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한다. 지금 70대인데, 70대 남자라도 하나 꼬셔서 만났으면 하기도 하고 맨날 TV나 보지 말고 나가서 사람들도 만나고 유연해졌으면 한다. 부모도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 자식에게 기대는 것을 버리고 각자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엄마가 기분 좋을 때를 보면, 게스트하우스에 손님 많을 때다. 돈을 벌어서도 좋고 사람이 많이 와서도 좋다. 맞다. 저거다. 자식이 가서 주는 기쁨은 잠시이고, 평상시에 바쁘게 지내는 것이 최선이다.
우리 마누라는 이런 면에서 결혼을 잘했다. 난 불효자다. 그런데 와이프는 늘 걱정한다. 아들이 엄마한테 하는 행동을 결국 와이프한테도 한다고... 그래서 달콤한 거짓말을 한다. 평생 같이 할 사람한테는 안 그런다고.. 너나 아들에게 기대지 말라고 조언한다.
부모의 마음, 엄마의 마음, 엄마가 서운한 이유를 아들인 나는 절대 100% 모른다.
자식은 부모 마음을 알 수가 없다. 그 자식이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면 그 마음을 아는가? 그게 아니다. 그냥 좀 이해하려고 하고 걱정하는 것뿐이다. 설 명절 세배를 하고 떡국을 먹고 차 막히는 게 싫다며 빨리 올라간다. 분명 또 서운해하겠지. 그런데 이것 저것 다 생각하고 살면 나 병날 것 같다.
그래 난 이기적인 놈이다. 그게 편하다. 서로 기대를 안 하면 될 것을 난 그렇게 내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엄마한테 잘 보이고 싶지도 않고 세상에도 잘 보이고 싶지도 않다. 그런 착한 사람으로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우리 마누라에게도 아내 역할, 며느리 역할, 엄마 역할 한다고 얼마나 바쁘고 힘들겠는가? 그런데 젤 중요한 건 본인의 인생에서 자신을 찾고 본인 스스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위대한 어머님들이여, 자식을 키우는건 어렵고 힘든 과정이란 걸 안다. 시간이 지나 자식이 손주를 보여주면 효도 하구나 하고, 보고 싶으면 가끔 전화하면 된다. 모든 걸 부모와 자식이 함께 할 수 없다. 어느 시기가 지나면 놓아주라. 그래야 엄마도 엄마 인생을 더 빨리 찾고 살 수 있지 않을까?
가끔 고향을 왔다가 집을 떠날 때, 바쁘게 서울로 향하는 차를 뒤에서 바라보는 엄마가 따라온다. 눈미러로 예전에 눈물 흘리는 것을 봤다. 그런 날은 이유도 모르고 나도 가끔 차에서 눈물을 흘린다. 생각해보면 왜 울까? 보고 싶어서? 떠나는 게 아쉬워서 아니다. 너무 많은 걸 자식을 위해 살았다고 생각하니 더 그런 것이다. 당연히 이 말이 정답도 아니겠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관계에 정답은 없다. 그런데 조금 쿨해지면 좋은 것들은 분명하게 있다. 시댁 며느리와 엄마의 문제가 아니다. 잘 보면 아들과 엄마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그 다음도 해결된다. 너무 가까이도 너무 기대지도 않고 각자의 인생을 존중할 수 있게 바뀌어야 한다. 자식도 부모의 마음을 모르고, 부모도 자식의 마음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