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투욘 Sep 17. 2023

쓸모없는 것의 쓸모

나는 오타쿠다. 흔히 오타쿠라 함은 특정 대상에 집착적으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뜻한다. 그럼 나는 무엇의 오타쿠냐 하면 딱히 무어라 말하긴 어렵다. 관심을 갖는 대상이 일정 주기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또 오타쿠가 아니라고 하기엔 때에 따라 오타쿠 기질이 발현되기 때문에 일단은 스스로 오타쿠라 정의 내렸다. 오타쿠보다 더 들어맞는 단어를 발견하면 정정할지 모른다. 때때로 발현되는 기질의 대상은 주로 작고 귀엽고 알록달록하고, 별다른 쓸모는 없는 물건이다. 미니피규어일 때도 있고, 스티커일 때도 있고, 엽서일 때도 있고, 색이 예쁜 종이일 때도 있고, 인형일 때도 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들이 종종 그런 건 어디다 쓰는 거냐, 그런 건 뭐 하러 돈 주고 사냐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그 무용한 것이 존재의 타당성을 의심받을 때마다 속으로 ‘지도 하등 쓸모없는데 잘만 살고 있으면서, 왜 우리 애 기를 죽이고 그래요!’라면서 그 작고 무용한 것의 부모라도 된 양 부들거린다. 물론 나는 사회화된 어른 여성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어디에 쓰진 않아. 그냥 존재하는 걸로 이 녀석의 쓰임은 다 한 거야.”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다. 그 정도로는 그들에게 이 작고 귀여운 녀석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납득시키긴 어렵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고는 해도, 사실 조금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쓸모를 입증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던 날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자꾸만 부정당하는 나의 존재 이유를 납득시키느라 잠 못 들던 날들이 떠오른다. 살아온 나날을 몇 마디 문장으로 축약해서 ‘나 이런 거 해봤고, 이런 거 잘해요. 거기서도 잘할 거예요. 돈 주고 데려갈 만하지 않나요?’라며, 그들이 원하는 쓸모에 억지로 나를 욱여넣던 날들이 떠오른다.


쓸모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을까, 너의 쓸모에 나를 맞춰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존재의 타당성에 의심이 들 때면 생각한다. 어쩌면 나 오타쿠 픽일지도? ‘나 이런 거 해봤고, 이런 거 잘해요, 가성비 괜찮을 거예요.’ 보다 ‘나는 이래요. 나는 이런 걸 좋아해요.’라고 말했을 때 마음이 동하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쓸모보다는 취향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그런 오타쿠들. 세상은 넓고 오타쿠는 많으니, 취향이 독특한 한 오타쿠가 작고 무용한 나를 장바구니에 담아서 그냥 존재하는 걸로 되었다고 말해줄지 모르겠다. 아니다. 그냥 내가 말해주면 되지. 내가 내 취향이니까. 너는 그냥 존재하는 거야. 그걸로 너의 쓰임은 다 한 거야.

작가의 이전글 66 사이즈 검정 치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