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을 위해 죽다》읽고
이 글은 《아이폰을 위해 죽다》가 중요하게 다루는 몇 가지 사실들을 정리하면서 감상을 덧붙인 글이다. 이 책은 아이폰을 만드는 폭스콘 노동자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노동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을 경유하여 더 많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이 책이 폭스콘 노동자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들을 몇 가지로 나누어 꼽아보았다. 우선, 책 소개를 간략하게 한 후, 책의 저자들이 다루고자 하는 문제들 가운데 나의 흥미를 끌었던 내용들을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과 산업화의 의미, 노동자들의 자살에 대한 분석, 중국의 노동운동 정도로 나누어 정리해보았다.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하며,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중국을 인식하는 새로운 방법에 관하여 간략하게 이야기해 보았다.
이 책은 아이폰 제조 산업을 통해서 본 글로벌 가치사슬과 초국적 착취체계, 그리고 중국 시진핑 체제의 자본 대변적 성격과 대조되는 노동자들의 저항운동을 다룬 연구다. 이미 아이폰의 제조과정에서 디자인 정도의 핵심역량 사업을 제외한 모든 사업들이 외주화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중 중국에 거점을 두고 생산활동을 벌이고 있는 폭스콘은 가장 중요한 협력업체이며, 폭스콘의 이윤은 애플사의 아이폰을 비롯한 상품들의 제조에서 발생한다. 이미 상당수의 연구들이 외주화가 가치사슬의 말단에 있는 노동자들을 어떻게 착취하는지,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이 거대한 초국적 가치사슬에 어떤 위치에서 자리매김 하는지를 폭로해왔다. 일부에는 포스트 식민주의적 관점에서 재구축된 세계질서로 이해하는 관점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이들은 2013년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빌딩의 붕괴사고와 함께 위험과 불안정이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초국적 자본에서 저임금 노동자에게로 떠맡겨지는 구조에 분노하며 반자본을 외치기도 한다. 이 책 역시 그러한 초국적 가치사슬 구조와 그 구조 속 가장 아래에 위치하는 중국 노동자들을 조명한다. 이 책의 가장 독창적인 지점이라면, 초국적 가치사슬 구조 속에서 국가(State)의 역할과 행위를 분석하고 강조한 것일 테다. 중국 국가의 성격을 두고 볼 때,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 오히려 국가 자본주의(State Capitalism)로 변모하였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개혁개방 이후 농민공들은 도시의 노동자 기층을 형성하고 있으며, 발전, 경제성장, 개발주의를 택한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를 기조로 하여 남동부에 집중되어 있던 공업지구를 서부와 북부로 확장하고자 한다. 그리고 폭스콘은 일대일로의 혜택을 초과이윤으로 챙기고 있는 가장 큰 수혜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초국적 생산의 가치사슬 구조 속에 놓여있는 세계의 공장, 중국이라는 공간 속에서의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제니 챈(Jenny Chan), 마크 셀던 (Mark Seldon), 푼 응아이(Pun Ngai)는 2010년 폭스콘의 노동자 연쇄자살 사건을 계기로 연구를 기획하였으며, 이들은 2010년부터 꾸준히 중국 본토 내 폭스콘 노동자들의 상황과 중국 내 자본-노동-국가의 역학관계를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이들 연구자들이 특별히 흥미로운 이유는 정확하고 온전한 이해와 분석을 위해 현장에 잠입하여 연구를 수행하는 등 열정적인 연구과정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수집하고 연구에 활용한 자료들을 블로그에 모아 정리해두었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음악 에세이, 그리고 제작에 참여한 다큐멘터리 등을 전시하고 있다. 웹 검색 등으로 구하기 어려운 자료들을 공개하기 위하여 웹으로된 부록을 만든 셈이다. 이 책을 읽을 계획이 있다면, 여기에 공개된 비디오, 에세이와 음악을 들어보길 바란다.
이 책의 또 다른 작가들인 번역자들 역시 메시지의 전달을 위해 세심한 작업을 한 것이 티가 난다. 번역자들이 중국의 노동과 사회운동에 관해 활발하게 연구를 전개하고 있는 이들이라 역주를 통해 독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자료들을 친절하고 상세하게 안내해주고 있다*. 이 책에서만큼은 번역자들이 진정한 길잡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이들의 기여는 이 책 곳곳에 소개된 시와 노래 등을 번역한 작업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작가들이 중국어에서 영어로 옮겨 소개한 작품들의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중국어 원문의 메시지를 살리기 위한 노력도 살펴볼 수 있다. 연구자와 번역가의 윤리의식을 다시금 성찰해볼 수 있는 긍정적인 선례라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빛나는 혁신의 아이콘, 아이폰의 생산과정은 디자인과 소프트웨어의 관리 등의 소수의 ‘핵심역량’ 사업을 제외하고는 모두 외주화된다. 애플은 공장을 소유하거나 노동자를 고용하는 대신 수많은 공급업체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비용을 절감한다. 공급업체 네트워크를 통해 절감할 수 있는 비용은 다양하지만, 초국적 네트워크 구조에서 절감하는 가장 큰 것은 단연 임금이다. 민족국가의 경계에 따라 사회적으로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의 질과 가짓수가 다르고, 그것이 표현하는 가격이 다르기 때문에, 선진국의 자본은 높아진 자국의 노동력 가격과 달리 여전히 노동계급의 힘이 강력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생활에 필요한 재화 및 서비스가 적게 형성되어 있는 지역으로 생산을 이전한다. 물론 노동도 국가 경계를 넘어 이동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자본의 이동보다 제약이 크다. 외국인 노동자의 이주는 양적으로도 충분하지 않으며, 새로운 민족주의의 부상과 인종차별이라는 위험이 언제나 발현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은 현지 노동자들 사이에서 형성되어 있는 생활기준의 수준보다 약간 낮지만, 만일 자본이 이주노동자들이 건너온 땅으로 넘어간다면, 훨씬 낮은 가격으로 임금을 지급할 수 있다. 그래서 자본은 저렴한 노동력을 찾아 동유럽으로, 중국으로, 인도로 넘어가는 것이다.
중국은 이러한 자본이동을 개혁개방과 함께 맞이했다. 개혁개방 직후, 그간 외국 자본은 남동부의 연해안에 집중 형성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중국은 원대한 계획을 준비하는데, 바로 아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유럽으로 통하는 일종의 경제벨트를 구축하는 것이다. 일대일로의 구축과 함께 남동부 연해안의 자본은 점차 서쪽과 북쪽으로 산업을 확장하고 있다. 일대일로의 구축과정에서 자본은 더욱 저렴한 임금으로 노동자를 착취하고, 각종 인프라를 지방정부에 의해 제공받는 등의 호사를 누린다. 2021년 기준 남동부의 산업도시들의 최저임금은 2,000위안(한국 원화 38만 원 가량)이 훨씬 넘는데, 일대일로와 함께 개발된 내륙의 중심 도시인 청두의 최저임금은 여전히 1,800위안(한국 원화 34만 원 가량)에 미치지 못한다. 지방정부들은 폭스콘 등의 산업시설들을 ‘모셔오기’위해 갖가지 노력을 한다. 공업용수 공급을 용이하게 해주거나 노동자 기숙사를 지어주는 등의 공물을 받치기도 하지만, 가장 압권은 청소년 노동자들의 강제노동에 가까운 인턴십 프로그램이다.
거대한 세계의 공장 중국의 노동자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주변 농촌에서 이주한 농민공들이다. 그러나 이촌향도 완화를 위해 도입하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호구제는 이들 농민공을 도시의 노동자로 활용하지만, 도시의 시민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농민공들은 노동력이 필요한 도시로 언제든지 불려오고,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는 언제든 농촌으로 되돌려보내질 처지에 놓여있다. 호구제는 이들 농민공을 불안정 노동자로 만드는 족쇄로 기능 하고 있다. 조금 전, 이야기했던 중국의 학생인턴 프로그램 역시 자본이 중국 노동력의 비용을 절감하는데에 유용하게 활용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중국의 직업학교 학생들은 기술을 배우고 현장 분위기를 익히기 위해 현장실습 기간을 갖는데, 지역정부는 이 제도를 악용하여 저렴한 노동력을 폭스콘에 공급해주고 있는 것이다. 든든한 산업예비군 공급처를 얻은 폭스콘은 이들 학생 노동자들에게 기준 이하의 임금을 주고(일반 임금의 80% 수준), 각종 사회보장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뿐더러 이들 노동자를 관리하는 데에도 저렴한 비용으로 교사를 활용하면서 이득을 보고 있다. 그리고 폭스콘이 학생노동자를 활용하는 비중은 2011년 기준 10% 정도였는데,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145쪽; 290쪽).
이 책이 그려내는 글로벌 자본과 중국의 농민공들, 그리고 개발주의를 채택한 중국국가의 모습을 보며, 떠오르는 것은 우리 사회가 매체를 통해 접하는 어떤 소식들과 구도들이 과연 적합한 관점인가 하는 것이다. 중국의 경제가 급격하게 성장하고, 세계 경제에 대하여 지대한 영향력을 갖게 되면서 국제 정치 관계에서 ‘신냉전’이라 불릴만한 구도가 전개되고 있다. 미국은 최근 중국을 경계하기 위해 중국 공산당에 의해 자행되는 위구르 및 티베트 지역에서의 인권유린 상황을 강조하고 규탄한다. 그리고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을 규합하여 ‘민주주의 진영’을 재구축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이폰의 초국적 생산구조를 보며 드는 생각은 과연 이러한 정치적 대결구도의 목적이 진정 티베트와 위구르 지역의 인권수호, 그리고 민주주의 수호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은 결코 중국 내에서 벌어지는 민중에 대한 억압에의 책임에서 절대 자유롭지 않다. 중국의 권위주의적인 노동자 통제로 인해 막대한 이윤을 누리는 것은 저임금·장시간으로 생산을 굴릴 수 있는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자본가들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중국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만들어진 상품을 소비하는 것도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소비자들이다. 글로벌 자본이 누리는 이윤과 선진국 소비자들이 누리는 제국적 생활양식은 중국의 권위주의적인 통제로 수혜를 보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의 폐단을 막고, 노동자와 소수민족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중국 국가의 성격을 ‘사회주의’가 아닌 다른 것으로 재규정하고, 다른 연대 방법이 고안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든다.
연구의 기획의도, 그리고 이 책의 말머리의 공통적인 관심은 2010년 폭스콘 노동자들의 연쇄 자살사건이었다. 2010년 폭스콘 공장에서 18명의 노동자가 자살을 시도했고, 14명은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일련의 연쇄 자살사건을 어떻게 규정해야하는가, 이것이 연구자들의 고민의 시작이었다. 애플과 폭스콘은 이 자살사건들을 개인적인 행위로, 개인의 심리상태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축소시키면서 어물쩡 넘어가려 했지만, 이 책이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폭스콘 공장에서의 일련의 자살은 사실은 사회적 타살이었다. 작업장 내 엄격한 노동통제의 분위기, 생산과정에서 소모되는 부품처럼 느껴지는 노동과정, 도시에서의 삶을 전혀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저임금과 육체적인 노동력의 재생산도 불가능할 정도의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들에게 이 지옥을 벗어나기 위해 어떤 선택을 강제하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1층에는 매점, 2층~5층에는 생산시설, 6층부터는 빽빽한 노동자 기숙사로 이루어진 선전의 폭스콘 생산기지의 모습은 노동통제가 생산시간 내에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이들의 재생산과 삶의 모양까지 기업이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생산성을 높이고, 많은 물량을 적기에 맞추어 출하하기 위해 요구되는 높은 노동강도와 장시간의 노동뿐만 아니라 사적영역이 전무한 공간에서의 생활 역시 이들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회의적으로 느끼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애플사는 수많은 중국 노동자들을 초과 착취하면서 막대한 이윤을 가져가지만, 막대한 잉여가치는 중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생활을 개선하기 위하여 쓰이지 않는다. 생산된 아이폰 한 대의 가치가 분배되는 과정에서 중국 노동자들이 가져가는 임금의 몫은 2010년 기준, 1.8%에 불과하다. 반면, 애플은 58.5%의 수익을 가져간다**. 중국 내에서의 분배 역시 마찬가지다. 농민공들은 젊음과 육체를 바쳐 아이폰을 만들어내지만, 노동자들이 한 몸 누일 집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인 셈이다. 농민공들은 산업도시의 발전을 이끌었지만, 계속해서 도심의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중국 내의 불평등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심각한 수준의 주거 불평등이다. 닭장 아파트가 즐비하게 늘어선 중국의 도시의 풍경, 한국 사회의 부동산 가격 못지 않은 비싼 중국 도시의 주택가격이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조건에서 빈곤을 겪는 농민공들은 결국 재생산의 위기에도 처한다. 농민공 가족의 해체 문제와 유수아동 및 유동아동 인구의 증가는 이들 농민공들이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현실의 조건들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노동자들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가사가 특징적인 노래는 여기에서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어려운 현실을 감내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자본의 엄격한 규율통제와 국가의 권위주의적인 통제에도 불구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들이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전략적 태업, 불량품 내기, 파업과 폭동 등의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자주 찾을 수 있는 방법들도 수행되었지만,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노동자들의 집단 자살 위협이었다. 이 연구의 시작과 이 책의 말머리를 열었던 폭스콘 노동자들의 연쇄 자살 사건과 달리 이 자살은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행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연쇄 자살이 일어났던 2010년으로부터 2년 후, 후베이성 우한시의 폭스콘 노동자들 150명이 이직과 임금분쟁을 두고 관리자들과 대립한 상황에서 상황을 타결하기 위해 자신들의 생명을 수단으로 삼은 것이었다. 연쇄자살로 인해 타격을 입었던 폭스콘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셈이었다. 즉, 전자의 자살은 일종의 사회적 타살이라면, 후자의 자살은 계급의 공동의 운명을 개선하기 위한 수단으로 채택된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개입하면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여기에서 잠깐, 한국의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부분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우리는 지난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과 이후의 열사들의 투쟁을 기억한다. 한국의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역사에서 많은 열사들이 노동계급과 사회의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제물로 바친 사례들을 봐왔다. 이 책의 저자들도 이런 자살의 이중적 의미와 성격, 즉 극도로 사적이면서도 사회적인 투쟁을 수반하는 능력에 관해 인식하고 있다(294쪽). 2010년 폭스콘의 노동자들의 자살을 후자의 의미로 재의미화하는 시도들도 나타났는데,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샤오샤오의 「폭스콘 노동 열사들을 애도하며」가 대표적이다. 샤오샤오는 도(跳)를 사용하면서 아래로의 하강 운동과 위로의 상승 운동이 하나의 발걸음에서 시작되었음을 표현하고 있는데, 매우 흥미롭다. 이는 폭스콘 노동자들의 자살이 단순한 개인적인 행위가 아니라 중국 노동계급이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뜀박질로 재의미화하고 있기 때문이다(시의 내용은 297~298쪽을 참조).
이 책의 읽기 전, 그리고 읽고 난 후 중국에 대한 인식이 재구축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 책을 통해서 본 중국의 모습은 결코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사회와 닮아 있었다. 한국의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역사 역시 국제 분업으로 구조화된 상품의 생산구조 속에서 하청기지의 역할로 태동했고, 한국의 수출경제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저렴한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말미암아 글로벌 시장에서 저변을 확대할 수 있었다. 1987년 이전까지 국가는 자본이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초과착취하여 이윤을 축적할 수 있도록 앞장서서 노동자를 훈육하고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닮은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권위주의 국가와 수출 중심의 자본의 유착관계라는 유사한 토양에서 형성된 노동운동 역시 닮았다. 두 가지 정도를 꼽아볼 수 있는데, 하나는 노동조합에 대응하는 공회의 태도이다. 우리의 역사에서 한국노총이 노동계급의 요구와 필요를 반영하지 않고 국가가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된 역사가 있다. 중국의 총공회 역시 노동자들의 요구로 의제를 설정하고, 노동자를 위해 사측과 협상하기보다는, 국가가 노동운동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활용되는 어용노조의 성격을 보인다. 두 번째 닮은 점은 노학연대의 존재이다. 비록 중국 노동운동은 지금 형성단계에 있고, 노학연대의 시작을 알린 제이식 투쟁사건은 관련 학생활동가들이 구금되면서 위기를 맞았지만, 결코 끝난 것은 아니다(제이식 투쟁사건과 노학연대의 출현에 관해서는 여기 참조). 제이식 투쟁과정과 그 과정에서 국가가 보여준 강압적이고 폭력적이며, 노골적으로 자본을 옹호하는 태도를 보며 중국 내 많은 이들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노는 2019년 격화된 홍콩의 민주주의 시위로 이어졌으며, 큰 파란을 일으켰다.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연계성과 과정은 한국 사회와 중국 사회의 공통분모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니 우리는 더 이상 중국을 사회주의 정권으로 규정해서도, 홍콩의 시위를 자유민주주의 수호로 일면적으로 해석해서도 안된다. 마찬가지로 미국을 선두로 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티베트와 위구르 지역의 인권유린에 대해 중국 정부를 비난하며 자신들의 책임을 지워버리는 행위도 순진무구하게 받아들일 수도 없다. 자본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드나들며 착취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데, 노동자들은 민족국가의 경계에 갇혀 서로에 대한 혐오의 정동만 쏟아내고 있는 오늘날이다. 어떻게 하면 김치·한복 논쟁, 그리고 《조선 구마사》 폐지로 높이 솟아오른 민족감정의 장벽을 넘어 국제적 연대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책장을 덮었다. 이 고민은 번역자 중 한 명인 홍명교의 신간 《사라진 나의 중국친구에게》를 읽으며 이어가고자 한다. 자연스레 다음 서평은 정해진 셈이다.
주)
* 책을 읽고 서평격으로 쓴 이 글에도 저자와 번역자들이 소개한 자료나 작품을 링크로 남겨두었음을 알린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 노래를 듣고 자료를 참고하길 바란다.
**Kraemer, K. L., Linden, G., & Dedrick, J. (2011). Capturing value in global networks: Apple’s iPad and iPhone. Research supported by grants from the Alfred P. Sloan Foundation and the US National Science Foundation (CISE/IIS). 이 책의 81쪽 그림 3.2에 재인용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