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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건축가 Mar 20. 2023

독일어에 기죽지 않는 방법

지금보다 더 독일어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요

세상엔 잘난 사람이 참 많다. 인스타를 다시 시작하고 나서 -인스타의 폐해라고 해야 할지,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알게 된 사실이다.


내 기준에 ‘잘난 사람’이란,

-글을 잘 쓴다. (많지 않은 나이에) 책도 냈다.

-자신의 외모와 일에 자신감이 뚝뚝 흘러넘친다. 예쁘고 잘생겼다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를 잘 돌본다.

-자신이 하는 말과 주장에 책임질 준비가 되어있다. 많은 과정을 통해 생각이 이미 잘 정리되어 있다.

-자기 계발을 꾸준히 한다.


중요! 물론 저 네 가지가 모두 해당하는 객체는 없(을거)다! 알고리즘을 따라 여기저기 흘러 다니다가 내 머릿속에 콕콕 박힌 놀라운 장점들을 열거한 거니까. 이 포인트를 나에게 항상 상기시켜 줘야,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오늘은 자기 계발에 대해, 특별히 언어에 대해 써본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나도 축적된 시간에 의해 어느 정도는 생각이 정리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담아.


내가 본 그 인스타그래머는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하는 사람이었다. 독일에 온 지 8년 차이지만 지금도 하루에 한 시간은 외국어 공부에 시간을 들인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어로 된 건 최대한 보지 않는다고 한다. 예능이건 드라마건. 한국어 미디어를 많이 본 날은 발음이 확연히 차이 난다고 한다.


여기서 질투가 났던 점은, 그리고 그와 동시에 좋은 자극이 되었던 점은, 하루에 한 시간씩 외국어 공부를 한다는 거였다. 작년, 독일어 스터디에 참여해서 하루에 30분은 꼭 읽고 쓰고 해석할 때가 있었다. 애들 재우고 나서 다시 식탁에 앉아 연필을 드는 습관을 만들어 주었던 감사한 스터디였다. 하루에 한 시간씩 외국어 공부를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알고, 얼마나 도움이 많이 되는지도 알기 때문에 질투와 동시에 자극이 되었다. 작심삼일을 일주일마다 반복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나 인지라, 오늘 나도 독일어 공부를 한 시간은 어려워도 30분이라도 해야지, 다짐했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싶어 졌고, 지금 돌아가고 있는 건조기가 끝나면 널고 개야 하고, 아이들 로션과 바디샴푸도 주문해야 하고, 글쓰기 과제도 해야 하고…


아무튼, 그리고 두 번째. 한국어 콘텐츠를 많이 보지 않는 방법은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 2007년, 그러니까 벌써 15년도 더 전에, 나는 어학연수로 뉴욕에 8개월 동안 머물렀다. (부모님의) 큰돈을 들여 간 거라, 진짜 열심히 불태워보리라 다짐하며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 당시 다들 하는 이야기는 ‘한국인들과 같이 놀면 안 된다’였다. 그래서 최소한으로 한국사람들을 만나면서 ‘모든 인풋은 영어로 하고, 생각도 영어로 하자!’라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8개월 후, 나는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나에게는 맞지 않는 방법이었다.


그 후 정확히 10년 뒤, 나는 독일에서 첫째를 임신하고 있었다. 첫 출산도 두려운데, 한국도 아닌 독일에서 낳고 키우는 게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물론 현실은 그 막연한 생각의 이천오백배정도 더 어려웠지만. 그때 주변에 먼저 출산을 경험한 언니가 독일어로 관련 책을 읽는 것을 추천했었다. 그리고 나는 꽤 단호하게 싫다고 얘기했다. ‘지금보다 더 독일어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요.’


나는 지금도 그때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출산, 육아와 관련된 독일어 단어와 지식들을 좀 더 빨리 알 수는 있었겠지만, 그 과정에서 마주칠 ‘독일어를 못하는 나’에 대한 실망감은 잘 다룰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독일어도 못하는데 독일에서 애는 어떻게 낳고 어떻게 키워.’까지 쉽게 확장되었을 것이다.


뉴욕 어학연수 시절 내가 후회하는 것은, 한국어로 된 뉴욕 여행 책자를 챙겨가지 않았다는 거다. 포부는 좋았다. ‘론리플래닛이면 충분하지!’ 충분은 개뿔. 이미지 하나 없이 텍스트만 잔뜩인 론리플래닛은 내 여행의욕과 영어 의지도 가볍게 꺾어버렸다. 영어는 몇 자 더 알 수 있었겠지만, 그때 이후 다시 가보지 못한 뉴욕과 미국을 원하는 만큼 즐기지 못했다는 울적한 기분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생각까지도 영어로만 하겠다는 다짐은, 정말 이보다 바보 같을 수 없다. 혹시나 시도해 보시려거든, ‘영어 실력이 나의 생각의 깊이만큼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 내 영어의 깊이만큼 얕디 얕아졌다’는 선험자의 말을 부디 기억하시길. 이건 내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결론일 뿐 아니라, 많은 연구에서도 증명되었다. 외국어 실력 향상보다 중요한 건 내 언어의 깊이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글로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물론 독일어 책도 읽고. 하지만 공부를 위한 책이 아니라, 나의 지적 허영심과 갈증을 충족시키는 책이다. 언젠가는 독일어로도 글을 쓰는 날이 오기를 바라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독일어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다. 독일어보다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위로하는 게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서 내 독일어가 아직도 요 모양 요 꼴이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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