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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건축가 Mar 23. 2023

알아가는 날

독일 초등학교 입학 전


오늘은 율이가 처음으로 초등학교에 일정이 있는 날이다. 독일의 학기는 9월에 시작하는데, 작년 11월부터 올해 입학을 위한 일정은 시작되었다. 11월엔 부모 대상 설명회가 있었고, 12월에는 가등록이 있었다. 가등록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3월엔 ‘알아가는 날’을 가진다.


한 달 전에 일정이 적힌 편지를 받았다. 한 시간 정도 진행되고, 애착인형을 가져와도 된다는 이야기 말고 다른 정보는 없었다. 구글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놀이터에서 만난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들은 정보에 따르면, 3월에 걸쳐서 이번에 등록한 아이들을 나눠 부르고, 같은 시간대의 아이들은 같은 반이 될 확률이 높다는 정도였다.


그렇게 한 달 전부터 기다렸던 날이 오늘이었다. 유치원에서 일찍 하원해서 학교에 데리고 갔다. 정문 앞에는 이미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여럿 있었다. 어림잡아 열서넛은 되는 것 같았다. 시간이 되자 문 너머로 선생님들이 오셔서 아이들 이름을 불렀다. 율이는 첫 번째 선생님이 세 번째로 불렀는데, 율이가 그 그룹의 마지막 아이였다. 자기 이름이 불리자 율이는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선생님을 따라 학교 건물로 들어갔다. 싱숭생숭했던 마음이 머쓱해졌다.


‘선생님 한 분이 아이 셋만 케어한다고?’ 긴장했던 마음이 좀 가라앉자 이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전문가의 한 시간이면 아이들 성향, 성취도, 발달정도는 꿰뚫겠군. 제대로 하네.’


50분 후, 보낸 곳과 똑같은 장소에서 율이를 기다렸다. 율이를 인솔했던 선생님이 율이와 다른 두 아이와 함께 나왔다. 다행히도, 같은 그룹이었던 남자아이와 친분이 있었어서 그렇게 떨리진 않았겠다 싶었다. 선생님은 아주 착한 아이들이었다면서 좋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하율이가 연필을 쥘 때 힘을 너무 많이 줘서 검지 손가락이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러면 나중에 팔이 아플 수 있으니 잘 봐달라고 했다. 오호! 그 짧은 시간에 연필 쥐는 모양까지 파악했다니. 신뢰감 급상승이다.


하율이의 총평은 ‘아쉬웠다’였다. 자기는 학교에서 덧셈, 뺄셈도 하고 운동장에서 놀 줄 알았는데, 유치원에서랑 똑같이 그리기, 색칠하기, 붙이기를 해서 실망이었단다. 같이 들어간 선생님 말고 다른 선생님이 자기들을 가르쳤다고 했다. 한 반에 셋 말고도 아이들 모두가 모였다고 했다. 데리고 들어간 선생님은 뭘 했냐고 하니, 옆에서 자기들을 보고 있었다고 했다. 아,  오늘의 목적은 아이들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거였구나.


독일은 나이 못지않게 아이들 개개인에 맞는 학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1년 유급은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이 학교는 게다가 0학년이 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사이에 있고 싶고, 있어야 하는 아이들을 위한 반이다. 그래서 반편성이 중요하다.


민이를 픽업하러 오늘 오후 다시 유치원에 갔다. 율이 반 선생님들이 나와 율이에게 오늘 어땠는지 물어보셨다. 율이가 유치원과 똑같아서 실망했다고 했더니, 한 선생님이 약 30명의 아이들을 돌봐야 하니 아이들이 그만큼 따라올 수 있을지를 보는 거라고 하셨다. 학교에 오래 앉아있을 수 있는지, 혼자서 할 수 있는지 등. 율이는 아무 문제 없이 잘할 거라는 말과 함께.


독일은 어딜 가나 준비기간을 충분히 준다. 유치원 적응도 한 달은 기본이고, 초등학교 입학도 반년 전부터 시작이다. 아이들이 편한 마음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기를 온 마음으로 응원받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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