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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건축가 Apr 10. 2023

어느 누구도 뚫고 지나갈 수 없는 단단한 내가 되어서

친구에게

들어봐. 안 그래도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너에게 이런 말을 하면 한없이 우울하게 들리겠지만. 혹시 알아. ‘너도 별거 없구나’ 하는 생각에 너의 처지에 대해 안도감이 조금 들지 말이야.


나는 종종 이 사회에서 내가 비가시적인 존재라는 느낌이 들어. 정말 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니까. 여기 앉아서 타이핑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야. 마음이 작아지고 쪼그라들다 못해 소멸돼 버린 걸까? 그렇게 느끼는 그 순간은, 이건 참 신기한 기분인데, 독일어 단어들이 모여서 내가 이루어진 것 같아.


단어라는 게 우리가 항상 사용하고, 입을 움직여 소리를 내고, 그게 귀로 들어오고 심지어 형상화할 수도 있지만, 물성은 없잖아. 그 단어가 독일어라서, 내가 알아서 늘이고 줄이고 붙이고 할 수 있는 한국어가 아니라, 타인에게 이해받기 위해 꾸역꾸역 주워섬기는 독일어라서 더더욱 손에 만져지지가 않아. 그런 게 모여서 내가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이야.


오늘 회사에서 한참 도면을 그리고 있을 때였어. 내가 있는 섹션에는 나와 총 네 명의 남정네, 그리고 한 명의 아주머니가 있거든. 왕년에 사장단이었던 할아버지, 현재 실세인 사장단 중 한 명, 걸쭉한 남부 독일어 사투리로만 이야기하는 나와 동갑인 남자애, 시공 디테일로는 회사에서 제일가는 내 전 사수, 한번 회사를 나갔다 다시 돌아온 탕아. 그들이 한 번 수다를 시작했다 하면 내 머리 위로 전장의 총알처럼 독일어가 왔다 갔다 해. 그때 내 한 몸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은 나를 투명하게 만드는 거야.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독일어의 양만큼 내 몸의 한 부분이 흐려지거든.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 우리 집 꼭대기에는 깐깐한 독일 할머니가 사셔. 이 집에 이사 와서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였어. 우리 집 벨을 누가 눌렀길래 나가보니 그 할머니가 서 계셨거든. 할머니의 첫마디는 이거였어. ‘나는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데, 무슨 언어로 이야기해 줄까?’


그 할머니의 애정표현은 불평, 불만인걸 이 집에 산지 만 4년쯤 되니까 알겠더라고. 한참 보이지 않던 저먼할아버지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할 때였어. 참, 저먼할아버지도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인데, 성이 정말 ‘German’이야. 독일식 발음으론 ‘게르만’일 텐데, 남편이랑은 그냥 ‘저먼 할아버지’라고 불러. 저먼할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깐깐할머니 말투는 시종일관 투덜이었는데 내용은 너무 따뜻한 거, 뭔지 알지?


’그 양반은 어디 가려면 간다고 말을 하지. 이렇게 오랫동안 코빼기도 안 비치고. 내가 그 집 집주인 한테도 전화해서 물어봤는데 아는 게 없대. 진짜 불친절해, 그 주인. 아, 그 양반 전 부인이 브라질 출신인가 그렇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쩌면 브라질에 가 있는지도 몰라.’


저먼할아버지는 있잖아, 돌아가셨어. 그 대화를 나누고 얼마 안 있다가 할아버지 아들을 만났거든. 다른 도시에 산다고 들었는데 여기 와서 뭘 하고 있길래 물어봤지. 그랬더니 이사 간다더라고. 뭐 도와줄 것 없냐고 인사치레로 물어보니까, 이삿짐센터가 올 거라 도와줄 건 없을 거래. 그러면서 ‘그동안 우리 아빠 장 본 거 올려주고 도와줘서 고마워. 아빠가 종종 이야기했어. 아빠 돌아가셨거든. 그래서 아빠 짐 빼러 온 거야.’라는 거야. 저먼할아버지랑 몇 번 대화 나눠보지도 못했는데. 이 이야기를 쓰려니 지금도 마음이 아파.


저먼할아버지 소식을 듣고 나니 깐깐할머니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다고 뭘 엄청 해드릴 건 없고, 왔다 갔다 할 때 인사 잘하고, 불평 들어드리고 그러는 거지 뭐. 그런데 이렇게 다짐한 후에도, 현관에 킥보드를 주차해 놓는 이웃 하소연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시려는 할머니 눈을 피해 집으로 들어온 적이 있어. 여기에 킥보드 대신에 우리 유아차를 주차하면 훨씬 편하지 않겠냐고도 얘기하셨는데 말이야. 그날은 도저히 할머니의 독일어를 받아칠 수 없겠더라고. 그래서 마치 내가 점점 페이드아웃 되는 양, 애매하게 말 끝을 늘이며 발을 떼던 기억이 나.


그런데 그거 알아? 오늘의 내가 대접한 독일어, 딱 그 위상만큼만 내가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그때 율이와 민이를 보면, 순간 나는 이 땅에 두 발 딱 붙이고 사는 사람으로 돌아와. 금요일 저녁 여덟 시, 내 품에서 까무룩 잠들어버린 아이를 안고 트램 한 정거장 거리의 수영장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것. 배가 고프다며 칭얼거리는 아이를 위해, 마감하느라 바쁜 점원의 틈을 비집고 지금 살 수 있는 빵이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 이건 100프로 실존하는 형태가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잖아. 어느 누구도 뚫고 지나갈 수 없는 단단한 내가 되어서.


깐깐할머니도 귀여움 앞에선 어쩔 수 없나 봐. 민이가 한 살쯤 됐을까. 민이는 유모차에 앉아서, 율이는 내 손을 잡고 집에 들어가는 길이었어. 현관문을 여는 순간 안에서 깐깐할머니가 밖으로 나오시더라고. 안녕하세요 인사하기가 무섭게 민이 볼을 꼬집는 제스처를 하시면서 ‘아유, 이렇게 귀여운데 내가 지금 빨리 가봐야 돼서.’라며 한 마디 남기고는 쌩하니 지나가시더라니까. 그날 저녁 남편한테 이 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웃었어.


그래. 뭣이 중헌디. 토요일에 만나서 찜트슈네케나 먹자. 나도 아직 매장에선 못 먹어봤어. 따끈하고 쫀득한 슈네케에 카푸치노 한 잔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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