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군지 나르시시스트 엄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경기 남부의 신도시.
이곳은 신혼부부에게 선망받는 신혼집 거주지이자 초저까지 자연과 함께 넉넉한 녹지공간으로 아이키우기 가장 좋은 곳으로 꼽히는 곳이었다.
처음 유치원생을 끌고 그곳으로 이사했을 때, 나는 '아이키우는 엄마'로서 이렇게 좋은 동네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깨끗하고 교육잘받고 부유함이 느껴지는 사람들, 강남의 엄마들과 다르게 너무 공부에 목매지 않고 삶과 일의 밸런스를 유지해가며, 좋은 환경을 선택한 부모들의 집단. 아이들도 학원보다는 해외여행이나 캠핑, 다양한 예체능 경험을 중시하며 입시보다는 다수가 해외 유학이나 국제학교의 진학을 고려하는 주거집단들.
그곳이 나에게는 맞는다고 생각했다. 엄마들은 극성맞지 않고, 부동산 욕망에 불타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재산이나 집안을 자랑한다거나, 남편의 학력이나 직업을 은근히 내세우지도 않았다. 성품이 조용하면서도, 다 공유할 수 있는 교양있는 엄마들 집단, 바로 그런 것이 실현된다면 여기에서일 것이다.
사건은 머지않아 일어났다. 엄마들 끼리 거리를 두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서로 존댓말을 나누던 속에서 유독 자녀교육에 열성이면서 사람들과의 친목 모임도 만들고, 팀을 만들어 체험시키는 것을 주도하던 외동 아들의 젊은 엄마였다. 그녀는 이 동네 엄마들 답지 않게 붙임성 있고, 전화로 안부를 묻고, 때때로 자신의 모임에 나를 불러주었다. 나는 은근히 거리를 두면서도 동네의 아는 엄마 하나, 둘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만남을 유지했다.
아이도 당연히 집에서 엄마와 있는 것보다 친구가 있는 모임이 좋았나보다. 같이 모이던 친구 중에 나만 빠지면 안되니 결국 아이를 핑계로 거부할 수 없게 된 만남이 되었다.
"나만 중심을 잘 잡으면 상관없겠지? "
크나큰 착각이었다.
애초에 거리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나와 비슷한 것처럼 보였던 엄마들이 사실은 이렇게 만남을 주선하고 팀을 꾸리는 '극성맞은' 엄마를 새삼 바라고 있었던 모양이다. 엄마들끼리 체험학습을 하며 카페를 가고, 교외 키즈카페로 놀러가고, 학원 투어를 다니고, 맥주를 마시다 보니...어느새
다른 아이들을 입방아에 올리기 시작했다. 더욱이 다른 엄마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것은 재앙이었다.
이제 남들에 대한 소문과 입방아는 그들을 묶어주는 결속체인 동시에, 그들의 자유로움을 방해하는 족쇄가 되었다. 이제 남의 시선 따위 상관없이 '내 주관대로' 아이를 키우겠다는 엄마의 욕심은 흔들린다. 내가 했던 발언들의 잣대로 내 아이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어쩌다 아이들 욕을 하게 되면, 다 같이 사실은 얘도 집에서 이렇고 무언가가 부족해서 속상하고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집에 오면, 왜 우리 아이를 흉봤지 후회가 되면서도 다같이 그랬으니 이렇게 힘든 육아를 서로 얘기하며 위로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시원치 않았다.
누군가도 내 아이 욕을 하겠지? 내가 없으면?
생각해보니, 모임을 주도했던 그녀는 조심스레 "이 아이는 좀 이상하지 않아요? 내가 다른 곳에서 들었는데.." 라고 말을 꺼내면서 남의 나쁜 소문을 퍼뜨리면서도, 자신의 아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은근히 모임의 성격이나 팀 체험을 자신의 아이 위주로 배치하려고 했다. 팀 수업 선생님에게도 자신이 이 모임의 리더라며, 아이에 대한 특별 케어를 부탁하는 것 같았다.
슬슬 나는 거리를 두었다. 이제라도 좀 떨어지는 게 낫겠어. 아들은 유치원에 가보니, 지난 주말 자신만 빼고 다 놀이동산에 가서 놀았다며 속상해했다. 생일 파티에도 초대를 못 받았다며 울먹거렸다.
처음부터 놀지 말 것을. 괜히 이상한 사람에게 꼬였어. 내 속상함은 괜찮지만, 아이가 받았을 상처에 마음이 아프고 후회가 되었다. 이제 동네에서 모임 엄마들을 만나면 서먹서먹해졌다.
그 엄마만 싫었는데, 다른 엄마들은 다 괜찮았는데...
코로나로 1년 이상 자연스레 모임이 줄면서, 편해졌다. 어차피 불편한 관계인데 잘 됐어. 그렇게 있다가 하나 둘씩 엄마들이 따로 지내는 것을 보았다. 이제 모임이 끝났나? 그 엄마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연히 초등학교 같은 반이 되어, 다른 엄마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래도 안면이 있는 엄마라서 이야기가 잘 통하는데...거의 헤어질 때쯤 말을 껀내다.
사실은요, 저희 정말 힘들었어요.
알고 보니 그 엄마는 내가 모임을 나오지 않는 것도 자신의 아들을 시기해서라고 이야기를 했단다. 내 아들이 자신의 아들을 너무 좋아하고, 내가 모임에 꼭 껴달라고 안달해서 겨우 껴줬는데 아이도 시원치않고 엄마도 열심히 하지 않아 괘씸했는데, 어느날 자기 아들이 너무 잘난 것을 못 참아서, 모임에서 나간 것이라는 말이다. 그 이후, 내 아들과 나에 대한 험담을 나누고, 자신들도 나가면 그렇게 될까봐 차마 그러지 못했는데 코로나로 자연스레 만남이 뜸해지면서 멀어졌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헤어질 즈음엔 그 모임에 남아있던 엄마들에게도 말을 다르게 옮겨 서로 오해하게 만들면서, 남은 엄마들끼리도 오해를 하며 만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나 처럼 혼자 헤어진 것이 나았던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아들이 최고로 만들려고 남의 아이들을 깍아내리고 엄마들끼리 이간질을 하며, 자신의 열등감을 이상한 방식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는 깨닫게 되었다. 그 엄마는 어떻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아직도 잘 살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아이 친구 관계까지 미세 조종하며 최고의 아들을 만들려는 욕심으로 점철된 삶. 앞으로도 그녀는 그 삶을 지속할 것이다. 이제 특유의 친화력으로 만든 그녀의 곁을 지켰던 엄마는 없지만, 그녀는 자신의 먹잇감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안녕하세요, 전학오셨다면서요? 제가 다 알려드릴게요"
학교 앞에서 픽업을 준비하며, 그녀는 옆에 엄마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지친 학군지의 경쟁을 떠나 아이를 맘편히 좋은 환경에서 키우려는 느곳하고 교양 있는 엄마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