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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인지 된장인지

으... 내가 또 시작하고 말았다.

"과목 당 백 문제래요."

"뭐? 백 문제? 미쳤구나!!"


여기에서 태어난 아이라 유창하지 않은 어눌한 한국말로, 때로는 내가 한국말로 물으면 영어로 대답하는 식으로 소통하고 있는 Joey와 중간고사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어마어마한 문제의 양을 듣고 깊은 빡침이 올라왔다. 아무리 사지선다의 한국식의 문제유형이라지만 얘네들의 문제출제 방식을 지난 몇 년간의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는 터라 결코 만만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조짐은 어쩔 수가 없다.


이름만 들어도 약간의 메슥거림이 올라오려고 하는 해부학, 병리학, 생리학, 실습연구, 실습이론...

내가 미쳤지. 왜 이런 생고생을 이 나이에 사서 하고 있냐. 이제서 내가 뭔 영화를 보겠다고 남들은 공부는커녕 실실 놀면서 대충 살아가던데, 그렇다고 나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정말 나도 모르겠는데 이런 어떻게 보면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이런 도박(물론 매우 건전하다 할 수는 있지만  돈을 따기는커녕 장시간 꼬라 밖기만 해야 하는)을 왜 또 시작했는지 시험을 앞두자 회의감만 들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은 이미 벌여놨고 1학기 과정의 거의 50%가 지나가고 있어서 이제


'아이고 내가 괜히 이게 된장인 줄 알고  모르고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나한테는 똥이 될 것 같아서 이제라도 발을 빼려고 하는데 괜찮겠지?'

'응 물론 괜찮지. 발을 빼는 것도 너의 선택이니 우린 그것을 존중한단다. 그럼 안녕. Good Luck!'

'어.. 저.. 잠깐. 그럼 수업료 환불은 어떻게...'

'응 그건 안 지. 이미 수업의 50%가 지나가고 있어서 말이야. 좀 일찍 결정하지 그랬니.'


이렇게 될 것이 분명하기에 나는 옳은 결정을 한 거야. 더 이상 뒤돌아보지 말자 하고 정신승리 하면서  억지로라도 마음을 다잡는다.


한국 같았으면 아예 이런 생각도 들지도 않았을텐데 이래도 된다고?

이런 모습이 요즘 나의 일상이다. 잘 다니던 그러나 앞으로의 미래가 절대로 밝아 보이지는 않았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나의 새로운 작을 해 일을 저질렀다. 앞으로 남은 인생 얼마나 값지게 살겠다고 그냥 남들처럼 대충 살다가 때 되면 집 팔아서 요양원에 들어가면 될 것을 뭘 또?

글쎄 말이다.  또 이럴까... '제대로 된 노동가치 확보'이렇게 포장해 볼까? 아니다. 생각해 보면 진짜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사실이다. 지금껏 나의 노동가치를 제대로 인받지 못 해온 게 사실인데(물론 전적으로 내 관점에서) 이제라도 나의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즐겁게 인생을 살가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했다고 말하고 싶다.

더구나 여기 캐나다의 모는 환경이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한국 같았으면 아예 이런 생각도 들지 않았을 텐데 여기에 있어보니 뭐야? 이래도 된다고? 이럴 수도 있다고? 그래서 저럴 환경이나 나이가 닌 것 같은 사람들도 저렇게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인가? 이렇게 말이다. 그렇다면 나도 이렇게 허허로이 늙어가지 말고 이제라도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제대로 시작해 봐야 되지 않을까?

 

역시 익히 소문난 여기의 교육시스템은 결심은 쉽지만 그 과정은 절대 녹녹지 않다. 더구나 원어민이기는커녕 휴... 그냥 뭐 이렇게 대충 알아듣고 대충 말하고 살지 하는 애매한 이민자에게는 더욱더 혹독한 것 같다.




이쯤 해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밝혀야겠다. 내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브런치 글쓰기조차 전폐하고 거의 칩거하다시피 하면서 시작한 것은 '다시 학교 다니기'다. 2년제 마사지 테라피스트 컬리지 과정이다.

처음엔 물리치료사 과정을 하고 싶었으나 중소도시인 여기 위니펙에는 그런 과정이 없어서 그와 유사한(물론 여러 부분에서 다르긴 하겠지만) 테라피스트 과정을 등록했다. 왜 여기에 관심을 가졌는지 잠깐 기술해 보자면 몇 년 전 여기에서 꽤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차가 전복되어 뒤집어진 채로 매달려 있다가 진 창문으로 겨우 빠져나왔는데 천만다행으로 충격이 그리 크지 않은 채로 차만 뒤집어지고 에어백이 터져서 그런지 거의 타박상도 없이 멀쩡했다. 하지만 교통사고는 언제 유증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의사의 권유로 물리치료를 받게 됐다.


치료과정에서 경험했던 통증을 다스리는 물리치료의 신비함 주사나 약이 아닌 적절한 자극을 통한 인체 스스로의 회복과정 이런 것에 매료되어 수동적인 치료만 받는 것이 아닌 나 자신 이것을 스스로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어 결국에는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순수한 학구열 하나로 지금에서 엄청나게 어려울 것이라고 안 봐도 뻔히 보이는 과정을 시작할 수는 없어서 직업적 가치는 얼마나 될까 취업사이트를 찾아보았다. 아니 이런! 약사의 시급하고 거의 같았다. 거기에다 구인을 하는 뉘앙스 자체가 우리 너무 급하니까 신경 안 쓰게 다 해줄 테니까 오기만 해요. 물론 자격증은 가지고. 이런 톤이었다.  

이렇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네.  여기저기 뒤져본 결과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유럽 등에서 말하는 마사지 테라피의료행위여서 의료보험(사보험)이 적용되고 그래서 꽤 많은 환자가 보험을 적용받아 테라피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공부를 해보니 이건 단순 마사지가 아니라 오히려 물리치료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래서 그런가 나를 포함해서 52명이 정원인 1학년은 현재 거의 아무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한국인은 어떤 중년의 여자분 하나와 나, 그리고 아까 언급한 캐나다 태생 교포 아가씨 한 명 이렇게다. 2학년 선배 한국인을 만났는데 그분이 하는 말이 '중간고사 한 번 기말고사 한 번 볼 때마나 중도포기자가 막 생겨서 우리는 지금 들어왔을 때의 반도 없어요.' 이랬다. 왜 그렇냐고 묻자, '한국사람들은 워낙 살인적인 입시제도에 익숙해서 잘 포기하지 않는데 여기 아이들은 그런 걸 견뎌내지 못하는 것 아요. 하려고 한다면 졸업할 수 있으니까 너무 겁먹지 마세요.' 약간의 위안은 되었지만 그 정도로 쉽지 않다는 뜻 아닌가. '나도 처음에는 거의 울면서 다녔어요. 그래도 다 지나가더라구요.' 이런 제길... 우려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어제로 일주일간의 중간고사가 끝났다. 과목 당 백 문제, 총 오백 문제를 풀고 나가 떨어졌다. 여기 시험의 특징을 하나 말한다면 시험을 앞두고 풀어주는 모의고사 비슷한 문제의 수준을 믿고 공부했다가는 반드시 망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본시험은 모의고사 보다 언제나 쉬워서 모의고사 수에 이삼십 %는 더 가산해서 계산했었는데 여기는 그 반대다. 그러니 그 난이도가 한국시험 못지않다. 

그리고 신기한 건 한국에서 학창시절 제나 과제를 할 때 숙제는 숙제고 시험 다른 것, 공부는 또 다른 것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이곳 교육은 숙제 스케일이 엄청 커서 숙제를 하다 보면 결국 배웠던 모든 것을 리뷰를 하게 되는 결과를 가지고 와서 숙제만 열심히 해도 공부를 잘할 수 있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시험만 끝나면 그 시간 부로 공부했던 게 머릿속에서 싹 지워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곤 했는데 여기서는 꽤 오랫동안 그 잔상이 남아있다. 그래서 처음엔 모르고 무시했던 기의 교육제도를 이제는 절대로 무시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매우 존중할 정도다.


그래서 중간고사의 결과는?? 막 97%(이 과목은 쉬웠던 거 인정), 93%,91%. 나머지 두 과목은 겨우 패스 수준(솔직히 너무 어려웠슴. 심지어 배우지도 않은 내용이 범위 안에 있다고 거의 열 문제나 나왔다. 이런 게 얘네들의 어이없는 행태.)




"야, 이 녀석들아, 아빠 어때? 응? 대단하지 않냐? 이 나이에 정말 응? 강의가 정말 너무 빨라서 정말 들리지도 않는데 말이야. 거기다 뼈, 근육, 혈관 뭐 이런 게 죄다 라틴어라 영어로 되어 있어도 모를 판에 라틴어로 명칭 외우느라고 아유~~~. 거기다 과목 당 백 문제 풀었다니까, 총 오백 문제를 말이야. 거의 막 백 점도 있어. 와 내가 생각해도 참. 근데 웃기는 건 시험 볼 때 나 보다도 늦게 나가는 애들은 뭘까?ㅋㅋㅋ 네 명이나 있었다니까. 나보다 영어 못 하는 애들은 한 명도 없거든? 정말 다 원어민이야."

 

방금 학교 갔다 온 큰애 방에 가서 막 주워섬겼다. 지금 한국에 있는 작은애한테도 카톡으로 알렸다. 아빠가 인문학 쪽에서는 강하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이과적인 공부는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라며 대단하다고 해줬다.(뭐 계산하는 공부는 아니니까 할 만은 하다.)


잘 숙성된 된장 맛이길 제발...
 

1학년 중에 어찌어찌 반은 지나갔다. 초반 두 달 정도까지는 언제쯤 관둬야 할까 이 생각으로 가득했다. 내가 선택한 길에 확신을 가지기 어려웠기에 이래도 되나 싶고 말이다. 내 입장을 봐서는 똥인데 된장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다니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말이다.

지인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와, 대단하세요. 공부를 또 한다구요? 우리 여기서 같이 해봤잖아요. 나라면 다시는 못 하겠는데. 거기다 해부학이라니요, 병리학이요? 그거 영어도 아닐 건데."


다행이다. 과락도 생각했었는데 다행이 패스를 했고 의외로 높은 성적이 나온 과목들도 있고 해서 일단은 한 고비를 넘겼다. 일단 시작한거니 마치기는 해야겠다는 명분이 나에게도 또 가족들에게도 대외적으로도 생긴 것이다.


해부학은 이번 주부터는 골반과 허리, 등 부위를 배우게 된다. 또 얼마나 듣도 보도 못한 라틴어 명칭을 희한하게 영어식으로 발음해서 나는 아예 그 단어를 얘기했는지조차 모르게 만들어 당황시킬 것인가. 이번부터 새로 시작하는 신경생리학 과목의 강사와는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만의 특유한 발음과 몸짓에 적응하게 될 것인가.

똥인지 된장인지 나도 모를 이 과정을 순탄히 마쳐서 마지막에 검지 손가락으로 양껏 찍어서 맛을 봤을 때 잘 숙성된 된장 맛이길 제발 바라는 바이다.




너무나 오랜 기간 브런치를 쉬었다. 다시 시작한 공부를 핑계로(정말 핑계다. 늘 말하지만 시간이 없지는 않다. 단지 핑계고 게으름일 뿐) 글을 쓰지는 않고 작가님들의 좋은 글을 읽기만 했다. 어느 순간 이제는 맛있는 음식을 몰래 훔쳐먹는 느낌이었다. 그래 이것만 끝내면, 그래 이번 주말에는 쓸 수 있겠지 하며 결국 오늘까지 왔다.


"아유~~ 이제 좀 한 숨 돌려요. 별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만 부산스럽고... 옥수수 댓 개 쪄갈테니 내일 봬요."


지금 딱 이런 마음이다.


금연을 결심한 사람들이 어느 순간 다시 피우면서 금연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필요 없다고 한다. 그때부터 다시 금연을 하면 되니까. 마치 다이어트의 길이 그만큼 험난하지만 또다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듯 말이다. 글쓰기 역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 다시 시작하자. 게으름과 핑계 때문이었지 난 언제나 글을 쓰고 싶어 하니까. 게다가 글감이 또 하나 생기지 않았나. 마사지 테라피스트 과정. 앞으로 일 년 반이나 더 남았다.




이미지: https://www.istockphoto.com/photo/choice-concept-with-doors-gm2155283101-576107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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