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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 "아니, 아직도 결혼이라는 걸 하려고 해?"

우린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야.

- 어떠한 결혼의 방식에도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지극히 저의 바람일 뿐입니다.




"사장님, 이거..."

본사 영업팀 담당 대리가 평소 그 당당하던 모습과는 달리 쭈뼛거리면서 봉투 하나를 내민다. 한참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소문이 있더니 결혼을 하게 됐나 보다.

"뭘 번거롭게 이런 걸 다 주고 그래.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어요?"

 

캐나다로 이주하기 전 이야기로 내가 근근이 꾸려갔던 프랜차이즈의 본사 직원이 결혼을 한다고 찾아온 것이다. 아직도 촌스럽게 결혼이라는 걸 한다고 인사를 다니는구나. 마침 한가하던 참이라 꼰대스러운 아저씨 모드로 돌아가 젊은 친구를 붙잡아 앉히곤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잘 생각해 봐요. 아직 늦지 않았어. 뭘 꼭 결혼이란 걸 번거롭게 하려고 그런대.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결혼이라는 시대착오적인 구습에 사로잡혀서 또 다른 불행한 인생을 창조하려고 그래. 젊은 사람들이 사랑을 해야지요. 결혼을 하지 말고."

"이상해요. 사장님.  결혼한 분들은 똑같은 얘기를 하세요. 결혼을 왜 하냐고. 사랑하니까 결혼하는 거잖아요. 결혼하지 말라면서 자기들은 왜 했나?"


이제 갓 서른 넘은 사람이 참 답답하게 꽉 막혔네. 주위에 결혼해서 사는 사람들이 마냥 행복해 보이진 않을 텐데, 그보단 저렇게 사느니 이혼하는 게 낫지 않겠나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텐데 여전히 때가 되고 여건만 갖춰지면 결혼이란 걸 못 해서 안달이 나니 사람은 장성하면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명제는 AI가 언제 이 지구를 파괴할지도 모를 이 시대에도 여전히 금과옥조로 젊은이들 가슴에 아로새겨져 있나 보다.




나는 사실 오래전부터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왜 사람들은 아직도 결혼이라는 틀에 서로를 묶고 묶이려 하는가? 물론 결혼의 유래를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자면 그 전통이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부족국가의 형태가 나타나는 청동기 시대(한반도라면 고조선 정도가 되겠다.)부터였다면 혼인관계를 통한 부족 간의 연대, 생산을 통한 노동력 또는 전투력의 확보처럼 결혼의 용도가 효용성에 맞추어져 있었다. 인간의 자유의식이 전면에 드러나는 현대에 이르기 전까지는 노동계급에는 노동력 확보, 귀족계급에는 서로 간의 연대의 필요로서 결혼이라는 제도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우리 민족에게도 있었다는 고려시대의 자유연애의 분위기, 서구사회에서 중세의 퇴폐적, 향락적인 연애풍속 또한 결혼이라는 엄격한 제도와는 동시에 존재는 했지만 분명 다른 것이었다. 실로 인간이 가진 본능적인 감성 즉, 사랑하고는 하등의 관계가 없이 오로지 재생산과 연대만이 그 목적인 결혼이라는 불편한 행위를 이 자유롭고 풍요로운 21세기에도 여전히 '성실한 무기수처럼 꾸역꾸역' 해내고 있는가 말이다.


일단 '사고실험'을 한국사회로 좁혀 보자면 아마도 이런 이유도 은연중에 작동할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남녀 공히 결혼이란 걸 해야만, 하지 않으면 누가 잡아가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이 되어야만 비로소 어른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사실은 아이까지 낳아야만 비로소 어른으로 대접해 주지만. 실례로 결혼도 안 하고 그래서 당연히 아이도 낳은 경험이 없던 여자 대통령을 비난하며 단골로 써먹던 꺼리가 '결혼도 안 해본 사람이 아이도 안 낳아본 사람이 어떻게...'였다. 현 대통령 부부도 아이가 없으니 이 문제에 대해서는 종종 대책 없이 당하곤 한다.) 사실이니 결혼은 나고 자라고 죽는 인간사에서 그 중간에 들어가 있는 마치 옛날의 성인식 같은 개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이끌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결혼하는 것이 순서이다라고 이렇게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요즘 와서 결혼이라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예 연애마저 사랑마저 포기한 경우가 무지 많아졌지만 말이다.


또 하나는 결혼의 의미를 왜곡시킨 채로 그것의 불가피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심지어 동물계의 짝짓기 습성까지 가지고 와서 잘못된 결혼관을 합리화하려 든다. 그것이 마치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인 양. 동물세계에서는 대부분 암컷에게 구애를 하는 수컷을 받아들이는 조건이 수컷들 중 가장 힘이 세고 가장 화려한 녀석을 고르는 것인데 그래야 강한 수컷의 유전자를 받아 번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세상에서도 역시 다르지 않아서 '힘이 세고 가장 화려한'이 '돈과 좋은 직장'으로 치환되어 타인보다 좀 더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 이런 주장도 보았는데 결혼하여(짝짓기) 아이를 낳게 되면 (번식) 일단 출산 전후로 또는 어쩌면 영구적으로 여자는 돈을 벌지(먹이활동)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그것에 대비해 좀 더 돈이 많거나(힘세고) 돈을 많이 벌 가능성이 높은(화려한) 남자를 고르는 것이다라고 한다.

하지만 이건 좀 너무 나갔다고 느껴진다. 인간의 결혼까지도 이젠 동물세계와 그리 다를 것 없다는 것이니 말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했듯이 노동력이나 전투력 재생산 그리고 계급적 연대가 결혼의 큰 목적이라면 이는 어느 정도 정말 인간적이다(목적 지향). 하지만 결혼이 동물들의 생존을 위한 더 나은 먹이활동에 다름 아니라면 인간으로서 이것처럼 비참할 데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현대의 보통의 결혼하려는 남녀는 이런 이유가 은연중에 깔려있고 이제는 이런 견해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밝혀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아니 실제로 이런 생각을 가지고 결혼하는 사람들이 겉으로 보기에도 훨씬 풍요로운 결혼생활을 하는 것 같고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평화로운 가정이 유지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우리가 다른 여러 가지 관념적 정의를 내려 결혼이라는 관계 맺음에 대해 환상에 빠져들게 하는 것을 완전하게 배제한다고 전제한다면, 결국 결혼이라는 행위는 순조로운 먹이활동,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자손의 재생산, 서로 간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연대의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이건 뭐 완전히 동물의 왕국과 다를 게 하나도 없어 보인다. 다른 게 있다면 인간은 동물과 달리 이성이란 게 존재하므로 딴맘 먹고 배신을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계약 즉, 결혼이라는 제도로써 저 동물적 특성을 강제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을 하기 위해 수천 년을 동물이 아닌 인간의 역사의 한 부분으로 결혼이라는 제도를 유지해 왔다고? 동물과 그리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물론 이러한 야만적 특징을 좀 순화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환상을 덧입혔다. 서양에서는 백설공주, 신데렐라 등이 동원되고 우리나라에서는 심청이나 춘향이도 등장해서 결혼하면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어 사실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결혼제도와 인간의 사랑이라는 감정을 묶어 놓았다.


좋다. 지금까지는 이래왔다고 치자. 무지몽매한 백성들이 권력자 또는 지배자들의 사탕발림과 교활한 속임수로 우리가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사는 문화라는 수단에 교묘히 스며들게 하는 바람에 아무 의식 없이 또는 아무 의심 없이 태어나서 어른이 되면 사랑하는(아니면 뭔가 잘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과는 좀 달리 이상하게 당기는 게 있는 것 같은) 사람과 결혼하고 아이 낳는 것이 순리인가 보다 하고 따라가게 되었다 치자(아주 잠깐 제대로 정신을 차리는 순간이 있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그것도 막바지에 다다르는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 이렇게 결혼이란 걸 하는 게 맞는 것인가, 평생을 살게 되는 것인데 이러다 후회하는 건 아닌가, 그러나 아주아주 복잡 다난하고 아주 정신없게 만들어 놓은 우리의 결혼 과정은 그걸 제대로 숙고하게끔 놔두지 않는다. 이렇게 하는 게 맞겠지. 다들 이렇게 했겠지 하면서 절차를 따라가게 만든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질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저따위 교활한 제도는 이제 과감하게 쓰레기통에 던져버려도 되지 않을까 싶다. 동물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저런 풍습은 역사교과서에나 보내버릴 때가 된 것 같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갇혀 특히나 우리나라는 정말 어이없는 것은 21세기 현재에도 결혼이 사랑하는 남녀의 만남이기도 하지만 집안과 집안과의 만남이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그걸 듣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어리석은 예비부부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글쎄, 우리나라에서 결혼을 집안과 집안이 만나는 계급적 연대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집이  얼마나 될까? 일반인들의 결혼을 고위 정치인 집안이나 재벌 집안의 혼사 정도로 오해하거나 우리 집안이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아주 큰 착각을 하는 게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결혼은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다.




사랑하는 남녀의 만남에 결혼이라는 누추하고 거추장스러운 옷은 벗겨주어야 한다. 그 옷에 딸려올 집안이라는 객식구들도 아예 차단해야 한다. 둘의 만남이 영속적일 수도 아니면 또 다른 사랑을 찾아서 떠나는 정거장일 수도 있다. 이것은 당연하고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이 전제된 만남이 속 이어진다면 이는 부부와 다를 게 없을 것이고 '그들의 생각에' 결혼이라는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그들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것이 가장 인간적인 결혼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런 모습은 다 아시다시피 서구사회에서는 이미 너무나 상식적인 모습이라 새로울 것도 없는 것이다.


우리도 시작해 봐야 하지 않을까? 마침 사회적인 분위기도 무르익어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 결혼 자체를 포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연애 역시 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있고 그래서 이제 기성세대도 젊은이들에게 결혼을 강요하거나 권유하지조차 않는지 이미 오래다. 국가적으로는 결혼의 비율이 줄어들어 당연히 출산율도 바닥을 치고 있으니 무슨 수를 내서라도 끌어올리려고 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문화적 변혁기에 마침 국가도 재정적 지원을 이미 진행하고 있고 사회적 분위기도 낡아버린 결혼제도를 더 이상 숭상하지 않고 있으니 이제 젊은이들의 행동만 남았다. 일생에 한 번 밖에 없을 화려한 결혼식,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번듯한 신혼집, 어디서 이식받았을 것 같은 괜찮은 집안 같은 지극히 동물적인 개념 다 버리고 당당하게 둘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개념 있는 행동력을 보여줄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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