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야 되는데... 쓸 수 있는데... 지금 쓰지 않으면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데...
편안하게 똥을 눌 최적의 지점을 찾아 킁킁거리며 땅바닥을 맴도는 강아지처럼 나 역시 머릿속에서는 또 내 손가락에서는 글이 마려워 죽을 지경이다. 그렇지만 글이라는 게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쓴다고 내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니 대략의 글감이라도 만들어 놔야 무난하게라도 써 내려갈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당연히 든다. 한편으로는 이건 뭐 누가 써달라고 간곡히 요청을 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나 혼자서 노심초사하고 있으니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난 분명히 내 마음에 쏙 드는 글을 한 뭉텅이 만들어 낼 것이다. 왜냐하면 이건 내가 그 어느 것 보다도 좋아하는 것이니까.
나의 글에서 형용할 수 없는 힘 같은 것이...
이런 내가 만들어진 데는 나의 인생에 나타난 몇가지 사건 때문인 것 같다.
첫 계기는 아마 초등학교 4학년 겨울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뭔가를 주제로 원고지 대여섯 장 분량으로 논설문을 만들어 오라는 숙제를 하고 있었다. 감기 기운 때문에 약을 먹은 상태여서 약간 몽롱한 기분으로 글을 쓰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나의 글에서 형용할 수 없는 힘 같은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때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무언가였다. 그 당시 나이 어린 내가 이 느낌을 머릿속으로 정리해 내진 못했지만 그건 아마도 어떻게 하면 한정된 분량 안에서 내가 생각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주장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나의 글에 눈이 끌리도록 하는 비법 같은 거였다고 추측된다. 당연하게도 나의 글은 선생님의 눈에 띄어 그분의 책상 위에 따로 놓이게 되었고 그때부터 나의 글쓰기는 아직까지도 내가 가진 몇 없는 장기 중의 하나가 되었다.
두 번째는 여성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는 후배에게서 원고청탁을 받은 때였다. 결혼을 앞둔 후배에게 기혼인 선배가 들려주는 조언을 주제로 하는 세 페이지 정도 분량의 글이었다. 부탁을 하던 후배가 한 마디를 잊지 않았다.
"원고료 드려요. 근데 그게 장당 얼마로 드리는 거라..."
뭐?원고료를 준다고? 그때까지 몇몇 지인의 부탁으로 간행물이나 옴니버스형 책자에 글을 기고한 적은 있었지만 원고료를 받아본 적은 없었다. 그들에게 원고료를 요구할 만한 수익구조를 갖는 곳도 아니었기에 그저 내 글이 활자화 되어 누군가에게 읽힌다는 것, 그리고 청탁을 했던 그로부터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내 글이 들어간 책자를 받는 것으로 만족하면 그뿐이었는데 원고료를 받다니... 기한에 늦지 않게 정성껏 써 보냈다.
"선배, 우리 데스크가 보더니 몇 군데 빼고는 거의 고치지 않고 실어도 되겠다는데요. 괜찮죠?"
황송하지. 게다가 거의 고치지 않고 내 글 그대로 나간다니 프로 작가가 된 기분이었다. 후배로부터 서점에 깔리는 날짜를 받아 십오 분을 넘게 걸어서 동네 서점에 갔다. 그전까지 존재 자체를 몰랐던 그 잡지가 이젠 내 방 책장에 늘 꽂혀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친근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어! 잡지 표지 한 구석에 내 글의 제목이 떡 박혀 있었다.어디 쯤에 내 글이 있을까 컬러풀한 잡지에서 풍기는 특유의 잉크냄새를 맡으며 휘리릭 책장을 넘겼다.
'아, 여기 있다! 이 부분을 바꾼다는 거였구나. 좋아, 마음에 들어.'
'허연 워드프로세서 화면 위에서 보던 내 글이 두꺼운 잡지 속 한 코너에서는 이렇게 예쁜 그림이 입혀지고 이렇게 재배치되는구나.'
그때 느꼈다. 내 자식 같다는 걸. 좋은 것 먹이고 예쁜 것 입혀 기른 내 아이처럼 전문가의 손에서 편집되어 예쁘게 포장된 나의 글이 마치 내 머릿속에서 내 손가락에서 만들어낸 생명 같다는 걸. 그 잡지는 꽤 오랫동안 내 방 책장에 대견한 모습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린 그냥 들러리가 되겠구나...
또 한 번은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던 때였다. 글 쓰는 재주가 좀 있다는 걸 간파한 나의 아내가 동네 엄마들을 꼬셔서 아이들을 모아 왔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중학생까지 그 시기에 학교공부 말고 그 비슷한 다른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엄마들의 조바심이 그 당시 이슈였던 대입에서의 논술시험 시행과 맞물려서 만화책도 안 읽는 아이들을 아빠같은 아저씨 앞에 앉도록 만들었다. 한데 초등학생이든 중학생이든 글로 하는 자기표현은 대체적으로 무척 서툴렀다. 심지어 한 줄을 써 내려가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런 아이들에게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국어학적 지식과 글쓰기의 잔재주를 혼신의 힘을 다해 쏟아부어 주었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조금씩 자신의 생각을 종이에 채워나가는 힘이 생겨났다. 한 줄도 못 채우던 아이가 나의 도움 없이도 한 장을 채웠을 때는 이게 되는구나.. 나 자신이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아내가 갑자기 엄청난 제안을 했다.
"대회에 나가자! 이제 아이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때가 됐어!"
결과는 오롯이 나의 몫이 되겠지만 이 정도라면 입선 정도는 우리 중에 한 둘은 되지 않을까? 꽤 지명도 있는 논술학원 체인에서 주최하는 초중학생 논술대회에 나가기로 했다. 그 업체에서 지정하는 책 다섯 권을 읽고 제시하는 문항에 대해 자기주장을 펴는 형식이었다. 기출문제를 찾아다가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실전에서 요구하는 글쓰기란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닦달하기도 하고 섣부른 용기도 북돋아 주었다.
대회 날 아이들을 데리고 각자의 교실에서 자리에 앉히는데 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대회에 참가한 다른 아이들이 하나같이 조그마한 공책을 들고 뭔가를 외우고 있었다. 그게 뭔지 그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선생님이 알려준 예상문제 답안이라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 아이들 대부분이 이 대회를 주최한 논술학원 체인의 학생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아이들이 가지고 있던 작은 공책은 한마디로 "족보"였던 것이었다.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우린 그냥 들러리가 되겠구나. 정말로 참가하는 것에 의의를 두어야 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얼굴이 빨개지도록 시험에 응한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이게 불법도 아니고 문제 사전 유출도 더더욱 아니라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 후 한 달 정도 지났나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들 중 하나가 학교에서 상장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외부에서 주는 상장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그 논술대회에서 수상한 것이라 했다. 그것도 우수상으로. 우수상? 우수상은 학년 별로 두 명만 주는 거였는데... 줄줄이 사탕이었다. 우수상을 필두로 장려상 몇 명, 입선 몇 명.. 거기에 부상으로 꽤 금액이 나가는 도서상품권까지... 조회 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교장선생님한테 우리 아이들이 나가서 상을 받았다고 했다. 와우... 그 논술학원 괜찮네.
내가 봐도 밋밋한 삶을 살았다. 열정을 가지고 부딪쳐 본 적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거의 없었고, 또 누군가에 죽도록 미치기에는 나 자신 조금 영악했다. 그렇게 많이 먹으면서도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게 말이 되냐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지만 실제로 딱히 좋아하는 음식도 없다. 그럼 너는 뭘 제일 하고 싶냐고 물으면 그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대한의 독립이오가 아니라 정말 글쓰기다. 밤새도록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다가 노트북을 덮고 일어났을 때 엉덩이부터 허리, 어깻죽지까지 이어지는 뻐근한 저릿함... 이 마저도 그냥 행복이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울 나만의 문체를 발견했을 때부터 몇 번에 걸친 곁다리 출판의 기억, 창작의 대가는 나 자신부터 기대하지 않았던 여러 번의 기고, 아이들과의 글쓰기 수업과 그로 인한 생각지도 않았던 입시논술까지의 경험, 심지어 듣보잡 무소속 후보자의 연설문 작성까지 내가 기억하는 기쁨의 순간은 글쓰기와 맞닿아 있었다.
고양이를 키워 본 사람이라면 다들 공감하는 바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든 고양이의 사랑 좀 받아보려고 갖은 애를 다 쓰지만 자기의 마음이 내키지 않는 한 절대로 먼저 다가오지 않는 고양이의 모습에서 나는 암수 불문하고 무척 도도하고 시크한 여자의 모습을 느끼곤 한다. 내가 이렇게 글쓰기를 놓지 못하는 이유도 아마 내가 어떻게든 잘 만들어 내려고 무진 애를 쓰는 글이라는 대상이 도도한 고양이를 닮아서이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인가 그 시크함에 홀려서 지금도 여전히 검은 키보드 위에서 그가 좋아할 만한 단어를 고르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