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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tle Creatures Jul 20. 2020

사우디에서 코로나 겪기 2

This too shall pass away

“사우디에서 코로나 겪기” 2를 적게 될 줄은 몰랐다.
이때쯤이면 코로나가 사라지고 일상생활이 가능하기를 기대했었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5월 말부터 시작된 성급해 보이는 코로나 예방조치의 해제로 조마조마 했었는데, 여지없이 그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사우디 코로나 상황]

사우디의 코로나 감염 확진자는 6월 17일 일일 5천 명을 찍고 나서, 지금은 그래도 나아져서 하루 2.5천~3천명 수준이고 누계는 24만 명으로 세계 13위를 기록하고 있다.


좀 더 피부에 와 닿는 인구 백만명당 감염자 통계에 따르면, 사우디는 인구 백만명당 7,202명으로, 대략 인구 백명당 0.7명이 감염된 상태이다. 인구 백명당 감염자 1위는 카타르로 3.8명, 바레인은, 2.1명, 쿠웨이트 1.4명, 오만 1.3명으로 중동국가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0.027명이다.


이는 아무래도 중동국가의 대가족 중심, 종교. 사회. 문화적인 특성과 깊은 연관이 있는 듯하다.

[출처불명]

다행스럽게도 유럽과 미국에서 발생하는 코로나로 인한 아시아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사우디에서는 이런 꺼림칙한  눈빛조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오히려 사우디 사람들은 무뚝뚝하지만 그들의 방식으로 한국사람을 좋아한다고 느끼게 해주어서, 이런 심난한 상황에서도 그나마 버틸 수 있도록  해준다.


[사우디에서 코로나 겪기 2]

막연했던 불안감이 현실이 되어 아주 가까이에 다가와 있다.

코로나 발생 초기에는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인하여 갖가지 예방조치들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저소득국가 노동자들이 확산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는데, 이제는 국가, 인종, 나이, 성별과 부유함의 정도를 따지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장 꺼려지는 접촉은, 감염되었는지 조차 모르거나 증상이 있어도 숨기면서 돈을 벌기 위하여 일해야만 하는 저소득국가 노동자들이다.

하지만 사우디 일상생활에서 언제 어디서든 만나게 되는, 온갖 궂은 일과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을 피해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출처불명]

같은 빌딩 같은 층의 회사에 감염자 5명이 발생하였는데, 별다른 방역조치 없이 계속 출근하면서 근무하고 있다.

잘 아는 사우디 건설회사의 회장이 코로나로 사망하였고, 본사 사무실 근무인원 300명 중에 130명이 감염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나라 건설회사에서도 감염자가 다수 발생하였고 한국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도 우리나라 회사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필요한 방역조치 등을 적극적으로 취하고는 있지만, 발주자의 중단 명령이 없어 현장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외국인 주거시설인 컴파운드에도 감염자가 발생했지만, 누구인지, 언제인지, 몇 호인지는 소문만 무성할 뿐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이렇게 코로나의 위험이 코앞에 다가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5개월째 계속된 억제된 일상생활로 인하여 경계심이 무디어졌고 또 어떤 경우에는 애써 무시하기도 한다.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고 되뇌어보아도 어느새 마음가짐이 느슨해져 있음을 언듯언듯 느끼고 있다.


이발

억압된 일상생활 중 가장 불편한 것 중의 하나가 의외로 이발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짧은 머리를 선호하는 나는 길어진 머리로 인해서 앞머리는 눈을 찌르고 옆머리는 귀를 간지럽히고 뒷머리는 목을 자극하며 안으로 말려 올라가는 게 느껴지는 불편함이 생각보다 컷다.


RJ가 주방가위를 들이대면서 자꾸 어떻게 한번 해보겠다고 한다.

아무리 사우디에서는 스타일리시한 헤어스타일이 필요없더라도, RJ의 떨리는 주방가위를 받아들여 호섭이 머리로 2주 이상을 살아갈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이발소는 밀접 접촉이 불가피하여 봉쇄 업종 중에 가장 후순위로 해제가 되었다.

고민을 많이 했지만, 언제까지 이런 불편한 상태로 지낼 수는 없어 마스크 2개를 겹쳐끼고 일회용 장갑까지 장착하고는 단골로 가는 필리핀 이발소에서 Korean Style로 이발을 하고야 말았다.

이후 일주일정도는 가족들과 최대한 접촉하지 않으며 상황을 지켜보았는데 다행하게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출처불명]

골프장

골프장이 드디어 개장했다.

나는 골프를 즐겨하지는 않는 편이다. 물론 15년째 백돌이여서 이기도 하지만, 동반자가 공 찾기, 빈 스윙, 그린라이 읽기 등으로 시간을 끌어 뒷 팀이 기다리는 게 느껴지면 그때부터는 골프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주말에 예약을 했다.

마음은 몇 달간의 계속된 이미지 스윙으로 백개를 깰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하고, 동반자들도 유쾌한 사람들이어서 오랜만에 아주 즐거운 라운딩이 될 것 같다.

요새 한낮의 온도가 45도를 훌쩍 넘어가는데도 말이다.


생활루틴

가족들은 코로나 사태 이후 정해진 생활 루틴을 유지하고 있는데, 특히, 컴파운드 산책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깊다.

운동의 측면에서는 컴파운드를 1바퀴 도는데 2,150걸음 시간은 18분 정도인데, 저녁에 4바퀴를 돌면 낮에 걸은 걸음 수를 합해 하루 12,000보 정도를 걷게 되어 충분한 운동이 된다.

가족생활의 측면에서는 J와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보물 같은 시간이다. 4개월째 계속되는 산책으로 대화 주제가 빈곤해지는 했지만 그래도 서로 새로운 이야기 꺼리를 찾는 노력을 기울이며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예전에 나는 이런 소중한 시간이 언제까지라도 계속될거라고 흔하게 생각해서 소홀하게 흘려보냈었다.

하지만 이제는 J와 온전히 대화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지나가면 순간이고 그 귀중함을 알기에 애지중지하게 그리고 최대한 느끼면서 가슴 한편에 저장해 두고 있다.


여전히 루미큐브와 고도리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다.

루미큐브는 J의 압도적인 승률로 인해서 J가 살짝 관심을 잃어버렸지만, RJ의 귀여운 반칙과 의 날카로운 구찌를 무기로 최근 나와 RJ의 승률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J의 방학이 이제는 40일 남짓 남았다.

RJ와 J는 7월 초까지도 우리나라 휴가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여전히 하늘길은 열리지 않았고 또 우리나라 도착 후 14일간의 격리기간을 생각하면 이제는 늦어버렸다.


우리는 12월 말 겨울방학에 우리나라에서 스키 타고, 친구 만나고, 맛있는 것을 먹는, 동일한 이야기 꺼리지만 시기만 달리하는 대화 주제로 갈아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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