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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tle Creatures May 28. 2021

결혼 25주년 반성문

이제서야

못을 인정합니다.

19살 고3 어렸던 아내를 밥 사준다고 꼬드긴 것을 인정합니다.

26세 세상 물정 모르고 순진했던 아내를, 해외에서 살자고 꼬셔서 결혼한 것을 인정합니다.

싱가포르 신혼 생활에서, 대화할 사람이 없어 오후 10시 내 퇴근만 기다렸던 아내가 낮에 못했던 수다를 떨 때  꾸벅꾸벅 졸았던 잘못을 인정합니다.

딸을 임신한 아내를, 싱가포르에 혼자 남겨두고 회사일로 홍콩으로 먼저 가버린 잘못을 인정합니다.

딸을 낳을 때, 출산일에 같이 있어주지 못하고 아내 혼자 딸을 낳게 한 잘못을 인정합니다.

이후 IMF 사태로 홍콩 집값이 너무 비싸져서 같이 있지 못하고, 아내와 딸을 우리나라에 오랫동안 있게 한 잘못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같이 있고자 지원했던 이집트 현장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합니다.

이집트에서 미세 모래먼지로 감기와 콧물을 달고 사는 어린 딸을, 회사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아내 혼자 돌보게 한 잘못을 인정합니다.

아들을 가졌을 때 다리가 비틀어져 있다는 의사 말에 위로가 되어주지 못했고, 또 낳을 때와 낳고 나서 혼자 아프게 한 잘못을 인정합니다.

해외생활에 반대했던 아내를 호주로 데리고 가서, 또 아내에게 아이들을 오롯이 맡겨두고 먼저 사우디로 떠난 잘못을 인정합니다.

이제는 해외생활을 하지 않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었는데, 길어지는 내 사우디 독신생활이 힘들어 사우디로 데리고 온 잘못을 인정합니다.

시집과의 관계에서, '남의 편'으로 느끼게 하고 위로가 되어주지 못해 불편한 관계로 발전시킨 잘못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아내는 "이렇게만 해주면 된다"는 아내 입장에서 많이 양보한 현명한 대화지침을 알려주었는데도 수용하지 못한 잘못을 인정합니다.

사소한 일상을 소재로 감성대화를 하고자 하는 아내에게 공감해주지 못하고, 이성적으로 접근해서 3자입장에서 판단한 내 생각만을 주장한 잘못을 인정합니다.

가끔 싸울 때, 꼭 이겨먹으려고 무방비 상태인 아내에게, 갖가지 근거와 논리로 무장하고 전투에 임했던 잘못을 인정합니다.

싸우고 나서, 냉전중에 먼저 말 걸지 않고 아내가 먼저 말 걸기만을 기다린 잘못을 인정합니다.

잘못을 여기에 다 적지못한 잘못을 인정합니다.


감사합니다.

여전히 예쁘고 귀엽게 나이만 먹어줘서 감사합니다.

예쁜 아이들 낳아주고 잘 키워줘서 감사합니다.

내 능력에 맞추어 잘 살아줘서 감사합니다.

아직까지 우리 가족을 항상 즐겁게 해주는 마스코트가 되어줘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이런 나와 25년이나 함께 해줘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 감사합니다.


아내는 "이거빠께 없나"라고 합니다.
기억력이 나쁜것도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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