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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tle Creatures Apr 27. 2023

아들을 잃어버릴 뻔했다.

짧았지만, 길고 섬뜩했던 시간

시기:2005년경(아들 3살) / 장소:한국

 

어느 주말 따스한 오후였다.

RJ는 정기적으로 다니는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마치고 처방전을 받아 1층의 약국으로 향하였다. 그때의 아이들은 엄마가 잠시라도 없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아는 시기여서, 우리 가족은 사소한 일과에도 늘 한 몸처럼 무겁게 붙어 다녔다.

 

RJ는 약국에서 안고 다니던 아들을 내려놓고 약사와 상담을 위해 줄을 서 있었고, 나와 딸은 등을 보이며 어린이용 젓가락을 구경하고 있었다. 먼저 상담하던 사람이 나가고 RJ가 약사에게 다가서는 모습이 흘깃 옆으로 보였던 것 같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좀 전에 흘깃했을 때의 그 잔상에서 아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을 깨달은 나는 재빨리 약국 안을 스캔하면서 아들의 이름을 짧게 힘주어 불렀으나 아들은 없었다. 나와 RJ의 불안한 눈이 마주쳤고 약사에서 딸을 부탁한다고 하고는 허락의 답변을 들을 틈도없이, 약국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와 좌우를 살펴보았으나 아들은 안보였다.

이 순간의 막막함이란...

 

RJ는 우측으로 나는 좌측으로 뛰기 시작했다.

약국의 좌측으로 그 블록의 끝까지 긴 거리가 아니었으나 아들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가오는 사거리에서 어느 방향으로 뛰어야 할까 넋이 급격이 빠져감을 느끼며 블록의 끝에 거의 도달한 순간, 4차선 도로를 짧은 다리로 종종 뛰어 건너가는 아들이 보였다. (운전석에서 잘 보이지도 않을 것 같은 조그마한 아들의 무단횡단에도 차들은 기꺼이 멈추어 기다려주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4차선 도로를 무단횡단 했다


아들은 울면서 “엄마” “엄마”를 외치며 누군가를 열심히 따라가고 있었다. 재빨리 따라가서 “J야, 아빠야” 라며 들어 올렸더니, 앞서서 걸어가는 “약국에서 먼저 상담했던, 엄마와 비슷한 옷을 입은” 여자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엄마” “엄마”라며 계속 울었다.


그 사이, 한 블록을 우측으로 길게 돌아서 숨 가쁘게 뛰어온 RJ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길도 건너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아 울었다. 길을 건너가서 RJ에게 아들을 넘겨주니 둘이 같이 부둥켜안고 계속 울었다.

약국으로 돌아가니 딸도 울고 있었다.


아빠는 뒤통수로도 본다.


그렇게 엄마와 한치도 떨어져선 살 수 없을 것 같던 그 넘이 언제부턴가부터 엄마가 집에 없는 시간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반대로, 잠깐이라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자 했던 엄마는 이제는 아들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면서, 전혀 빈 틈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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