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ttle Creatures Apr 26. 2023

딸의 위기

잠시도 한 눈 팔면 안 된다.

시기:2002년(딸 4살)/장소:싱가포르

 

4년 만에 다시 돌아온 싱가포르는 그대로였지만, 우리 가족은 그 사이에 3명이 되었다.

RJ와 나는 경제적으로 무리였지만, 이집트에서 고생한 어린 딸을 위하여 수영장이 잘 내려다 보이는 Private Condominium에 살기로 하였다.

 

딸은 오전에는 엄마와 한 번 내가 퇴근하면 나와 한 번 비싼 임대료가 아깝지 않게 수영장을 뻔질나게 드나들었지만, RJ와 나는 비싸고 힘든 선택을 했다고 조금은 후회를 하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이유로 수영장 주위에 서성이는 지쳐 보이는 부모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또래였던 아이들이 서로 어울려 놀면서 꼭 붙잡았던 부모의 손을 놓아주었다. 

[Parc Vista/Singapore]


부모들은 예상치 않게 주어진 자유시간을 즐기기 시작했다. 눈으로는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누군가 가져온 맥주 한 잔을 나누다가, 급기야는 주말마다 수영장 옆에서 바비큐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먹고 마시며 즐기게 되었다. 사람들은 또 얼마나 순수하고 재미있는지…

 

우리는 아이들에게 항상 부모들 앞에서만 놀게 단단히 일러두었고, 입혀 두었던 구명조끼와 부모 6명, 12개의 눈이 따라다니는 안전장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도가 높아져서 방심의 싹이 트고 있었으나 인지하지 못했다. 


여느 주말저녁과 같이 바비큐로 맛있게 구운 LA갈비와 Food Court에서 사온 BBQ Stingray, 삼발 깐꽁 그리고 아이스박스에 가득 담아 온 시원한 타이거 맥주를 즐기면서, 우리는 서로 오디오가 비는 틈을 노리며 즐겁고 질펀한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수영장을 등지고 앉아있던 RJ가 갑자기 돌아보며 다급한 목소리로 “P는”이라고 외쳤다. 우리는 안전장치에 대한 높은 신뢰도로 근처에 있겠지 하면서 대화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RJ는 떨치고 일어나더니 불과 몇 미터 되지 않은 사각지대의 수영장에서 구명조끼 없이 빠져서 허우적대는 딸을 재빨리 건져 올렸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빠진 지 몇 초 되지 않은 듯 몇 모금의 물을 토해내는 정도로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고 다시 아이들과 놀기 시작했다.

이후로 우리는 한 명씩 순번을 정해 아이들 안전요원으로 파견 보내는 방법으로 즐거운 저녁시간을 포기하지 않았다.

 

 

RJ에게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더니, 그냥 딸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느낌이 왔다고 한다.

엄마는 귀로도 본다.

작가의 이전글 아빠가 미안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