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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tle Creatures Apr 06. 2023

아빠가 미안했다.

그때는, 해서는 안 되는 장난이었어.

시기:아들 4~5살 / 장소:에버랜드 가는 길


경기도 죽전에 살 때였다.

아들은 발만 땅에 닿으면 뛰쳐나가는 시기여서, 차로 20분 거리의 에버랜드에 가족 연간회원권으로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일주일에도 몇 번씩이나 갔다 오곤 했었다.

에버랜드는 아이들도 너무 좋아했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차 걱정 없이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지만 감내 할 수 있는 즐거움이었다.

 

사건은 에버랜드로 가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중에 발생했다.

딸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아들을 너무 예뻐하며 “우리 J, 너무 귀여워” 하며 볼을 조물조물 만지고 있었다.

그 당시 아들은 최절정의 인형미모를 자랑하고 있어서 내가 한마디 던졌다.

"아빠가 이마트 인형코너에서 울고있는 J를 사 왔잔아..."


아들을 제외한 아빠. 엄마. 딸은 눈짓 교환 한 번 없이 갑자기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이 말에 살을 붙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빠가 비싸서 안 사려고 했는데 엄마가 우겨서 샀다”는 둥

아빠는 “엄마가 다른 인형을 유심히 보고 있어서 아빠가 재빨리 집어 들었다”는 둥

딸은 “이마트에서 산 게 아니고 에버랜드 홀랜드 빌리지에서 주워 왔다”는 둥

우리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면서 즐겁게 아들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아들은 처음에는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러한 증언들이 이어지자 시간이 지날수록 표정이 변하는 게 보였다.

 

이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아들은 눈물이 맺힌 눈으로 엄마를 보며 갑자기

아줌마, 저 진짜 엄마에게 데려다주세요”라고 하며 흐느끼듯 울기 시작했다.

 

너무 웃기고 귀여웠지만, “아줌마”라는 저 단어에서 아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얼마나 귀 기울여 들으며 고민했는지를 짐작하게 해 주어서, 마음이 찡하고 미안했다.

우리는 앞 다투어 사실관계를 방출하며 오해 해소에 나섰다. 너는

분당 어느 산부인과에서 2003년 9월 22일 오전 7시 59분에 태어났고,

4킬로로 태어나서 엄마가 힘들었고,

아빠가 분만실에서 너 탯줄을 잘랐고,

딸도 “너 태어나는 것을 보았다”며 증언을 보태었다.

 

아들은 울음을 멈추었지만, 이 사건이 있고 한 동안 서먹서먹한 모습을 보여주어 관계 회복에 시간이 좀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새도 가족이 모이는 자리에서 가끔 이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웃기는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은 부모가 어린 아들에게 저지른 언어폭력이었다.

나의 부모님들도 내가 어렸을 때 이런 류의 장난을 하셨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지금의 판단으로는 잘못된 사랑의 표현이지만, 그 분들의 세대에서는 그럴수도 있는 장난이여서 그 진심만 내 기억에 남기고 있다.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잘잘못의 판단에 너그러운 아들을 기대하며,

나는, 너무 심한 장난이었음을 인정하며 그때의 그 어린 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아들, 혹시 그 사건 때문에 요즈음 집에 잘 안 오는 거라면, 다시 사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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