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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tle Creatures May 03. 2024

얼굴은 20대, 무릎연골은 70대

RJ의 무릎연골 수술

RJ는 생각은 10대 얼굴은 20대인데, 무릎 관절은 70대라는 진단을 받았다.

 

RJ는 몇 년 전부터 무릎이 아파서 무릎연골 주사를 6개월마다 맞아오고 있었다.

‘23년 11월경에는 통증이 심해져서 동네 정형외과에 갔더니 양 무릎이 모두 심각하고, 특히 오른 무릎은 안쪽 연골이 거의 다 닳아 당장 수술이 필요하다고 한다.

 

화들짝 놀라 서울과 인천의 대형병원에도 가보았지만 동일한 진단을 받았고, 처치방법으로 "인공관절 교체수술"을 하기에는 아직 나이가 어리다며, 오른 무릎은 “오다리교정술”+“카티스템” 수술을, 왼 무릎은 “자가골수 줄기세포 주사” 시술을 받기로 하였다.

"오다리교정술"은 무릎아래 정강이뼈를 잘라 교정이 필요한 만큼 틈을 벌려서 금속판으로 고정시키는 수술

"카티스템(Cartilage+Stem Cell)"은 연골 부위의 뼈에 구멍을 뚫어 그 안으로 태아 탯줄에서 추출한 혈액에서 줄기세포를 배양한 치료액를 넣어 연골을 재생하는 수술 (카티스템은 줄기세포 상표명)

"자가골수 줄기세포 주사"는 자기의 골수를 채취하여 줄기세포를 분리한 연골 결손부위에 주사로 도포하는 시술
[오다리 교정 수술]
[카티스템]
[인공관절 교체수술]


서울 대형병원의 의사는 당장이라도 수술해야 한다며 긴급으로 해줄 것 같이 말했는데, 정작 예약 간호사는 교수님은 지금 예약하면 '25.9월에나 수술이 가능하다고 한다.

가장 빠르게 수술이 가능한 인천의 병원에서 ’24.4.5로 날을 받았다.

 

수술날짜까지 받아놓은 RJ는 인터넷으로 조금만 검색해 보면 “뼈를 잘라 벌려 고정시키고 또 뼈에 구멍을 뚫는, 생각만으로도 소름 돋는 수술”임에도, 길지도 않은 본인의 영어 수술명을 매일 까먹으며, 그저 수술 몇 주후에 군대 가는 아들을 바래다주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 외에는 여전히 해맑게 지내고 있었다.

 

전공의 파업사태가 발생했다.

대형병원의 수술연기 뉴스가 연일 떠들썩하게 보도되자, 본인의 수술도 연기될 수 있는 가능성에 “어떠카지”라면서도 은근히 미뤄두고 싶은 눈치다.

 RJ의 기대와는 달리, 담당 의사님은 사명감이 투철하신 분이셨다. 병원에서도 반대하는 약 4시간이 걸리는 긴 수술이지만, RJ의 무릎상태가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전공의 없이 수술을 강행하겠다고 하셨다.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드디어 수술날은 오고야 말았다.

나도 긴장하고 RJ도 긴장한 듯 보였지만, 굳이 이끌어 내어 표현하지는 않았다.

침대에 실려 수술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RJ는 “갔다 올게”라는 짤막한 말을 하였고 나는 “한숨 푹 자고 와”라고만 했다.

이 날이 결혼 29주년이었다.

RJ의 수술은 길었다.

수술실 앞에는 “수술준비”>”수술 중”>”회복 중”>”병실이동”으로 환자마다 상황을 알려주는 현황판이 있었다. RJ보다 뒤에 수술을 시작한 환자들도 "회복중">"병실이동"되었다가 현황판에서 조차도 사라졌는데, RJ는 여전히 “수술중”이었다.

할 줄 아는 것도 또 할 수 있는 일도 없는 나는 긴 시간동안 안타까움을 끌어안고 무기력하게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수술은 잘 되었다고 한다.

수술을 마치고 RJ는 아직 마취에서 덜 풀린 멍한 표정으로 수술한 오른 무릎은 붕대로 칭칭 둘러감고 링거를 6개나 주렁주렁 꽂고 병실로 돌아왔다.

안쓰럽고 애처로웠지만 나는 잔심부름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또 없었다.

RJ가 입원한 간호.간병 통합병동은 가족들 면회조차도 하루에 1회 오후 6시~8시까지 만으로 철저히 통제하면서 관리한다. 간호사와 간병사가 자주 왔다갔다하면서 RJ를 친절하게 잘 보살펴주는 것을 확인하고는 10시경에 집으로 왔다. 


보호자가 환자 옆 간이침대에서 숙식을 같이하는 간병이 아님에도, 회사 마치고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고 저녁에 세수와 양치만 도와주는 정도에 최소한의 집안일만으로도, 며칠 지나고 나니 피곤하다.

하지만 하루하루 링거의 숫자가 줄어들고 움직임은 조금씩 커져가는, 특히 하루종일 누워서 무료하게 지내며 가족들의 면회를 기다리는 RJ를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임했다. 

[수술을 막 마치고]
[머리에 롤은 왜]

9일을 꼬박 입원하고 10일째 퇴원을 했다.

RJ가 퇴원해서 집으로 오면, 이렇게 저렇게 요렇게 조렇게 보살펴 주어야지 시뮬레이션을 해가면서 준비를 했다.

 

간병인과 주부로서의 삶은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목발을 짚은 상태에서는 물건 하나 들고오기 어렵다. 특히 처음 약 일주일간은 목발을 짚고 화장실 가는 것도 힘들어했고 위태로워 보였다. 이렇게 RJ의 손.발이 되어주는 것은 그래도 쉬웠다.

제일 힘든 일은 삼시 세끼를 챙겨주는 일이었다.

뭘 먹일까 내내 고민하지만, 주로 편의점  샌드위치와 밀키트로 연명을 시키고 있다.

가끔 딸이 퇴근하면서 음식을 포장해 오면 RJ가 코를 박고 먹는 것 보면 내가 해주는 것이 영 시원치 않은 게 확실하다.


지난 30년간 우리 가족의 삼시 세끼를 거르지 않고 묵묵히 챙겨 와 준 일이 얼마나 크고 힘든 일이었는지 깨달았다.

RJ에게 이 글을 통해 감사함을 전한다.


수술은 실제로 잘 되었나 보다. 이제 겨우 한 달정도의 눕방 생활에도 무료함에 몸서리를 치는 RJ는 "쳇, 내가 몰라서 했지, 알고는 몬한다."라며 이미 뾰족한 투덜이 본능이 한층 더 전투적이 된 것 같다.

부작용인가?


열심히 재활운동을 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목발에서 벗어나려면 6개월은 걸릴 것 같다.

RJ가 두 발로 자유롭게 걷는 날을 기다리며, 나는 결혼 30주년 기념으로 "조호바루 2주 살기"를 기획하여, RJ의 무료한 침상생활에 활력과 힘든 재활훈련의 동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우리의 "조호바루 2주살기 계획"에 아들이 딱 한마디 했다.

가서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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