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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원 Jul 29. 2024

무균술에 익숙한 간호사, 내 눈을 찔러 시각을 포기하다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위생이란 엿 바꿔 먹는 것

세네갈 시장의 정육점. 자세히 보면 파리가 득실득실 붙어 있었다. 저 고기는 나의 저녁식사가 되었다....


한 두 달간은 설사와의 전쟁이었다.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맛있게 먹었는데 시장을 가보고 그 이유를 알았다. 냉장고가 없어 보이는 시장의 정육점 고기에는 파리가 득실득실 붙어있었다. 저거 먹고 죽을 수도 있으려나? 하고 생각했다. 일단은 뱃속에 기생충이 자랄 수도 있을 거 같다. 난 간호사지만 비유가 상당히 좋지 않다. 몇 달 지내고 나서는 냉장고에 보관된 나름 위생적인(?) 고기도 발견했는데 병원 현지 직원들과 같이 시장을 가고 나서 그들이 보통은 시장에 매달려 있는 고기를 산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무례하고 싶지 않아서 충격받은 모습을 최대한 감추려고 노력했다. 성공했는지는 모르겠다. 시장에서 파리와 한 몸이 된 고기 덩어리는 나의 저녁식사가 되었다.


초반 몇 주간 병원장의 집에서 지냈는데 까올락의 40도를 넘나드는 더위와 설사는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며 지쳐서 기진맥진해서 누가 보든 말든 땅바닥에 드러눕게 만들었다.


"ça va? 괜찮아?"

"....."..... 말 시키지 마쇼... 뱅뱅 천장이 돌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는가. 몇 달 뒤에 나는 정수되지 않은 수돗물로 만든 비샵주스(히비커버스 음료)를 시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사 먹는 인간이 되었다.


병원 코디네이터 꼬도가 나를 초대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야사뿔레를 대접했다.

병원의 조산사 코디네이터인 꼬두가 명절에 나를 초대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세네갈 음식인 야사뿔레는 닭으로 만든 음식이다. 야사뿔레는 가장 현대적인 느낌(?)의 전통 음식이다. 꼬두의 마당에는 비둘기도 키우고 있었는데, 닭장 옆에는 비둘기장이 있었다. 비둘기를 먹는건 아주 옛날에 본 프란체스카 시트콤에서나 보는 거가 생각했는데 이곳에서는 그냥 일상이었다. 꼬두가 비둘기를 잡았는지 닭을 잡았는지는 직접 보지 않아서 알 수 없었다. 세네갈의 닭은 못 먹어서인지 비쩍 말라서 비둘기 크기랑 분간이 되지 않을만큼 작았다.


음식을 만드는 것은 나도 도왔는데 저녁이 되자 꼬두의 집은 정전이 되었다. 어둠 속에서 다 같이 먹었던 야사뿔레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핸드폰으로 불빛을 비추고 야사뿔레 한 접시에 빙 둘러 않았다. 꼬두의 가족은 외국인인 나를 배려해서 수저를 사용했다. 닭인지 비둘기인지를 잡는 것부터 해서 음식이 만들어지는 데는 3시간 정도가 걸렸다. 일을 마치고 굶주렸던 나는 이날 먹은 야사뿔레의 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세네갈은 이슬람 국가이다. 그들은 보통은 수저를 사용하지 않고 인도처럼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 보건학적인 관점에서는 당연히 위생과 감염관리에 있어 용납될 수 없다. 그들도 외국인이 손으로 음식을 다 같이 나누어 먹는 문화에 거부감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까띠에게 물었다. 정말 궁금해서.


"음식을 손으로 먹는 이유는 뭐야?"


"음식을 먹는 행위는 신성한 행위야. 신이 주신 음식을 내 손으로 만지고 느껴. 그리고 입으로 가져가. 입으로 가져간 음식은 내 몸의 양분이 되지."


알라신을 믿지는 않지만, 그리고 어쩌면 까띠가 그럴듯한 이유로 나를 설득시키려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의 철학적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음식을 먹는 행위에 맛있다 이외에 깊은 의미를 부여한적이 없었다. 그녀가 나에게 권한 수저를 내려놓고, 손으로 음식을 만지고 느꼈다. 입으로 가져가 음식을 씹으며 내 몸의 양분이 되는 과정이 뭔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쇠붙이로 된 수저가 뭔가 그들의 철학적 이유를 가로막는 세속적인 방해물처럼 느껴졌다.


"손으로 먹는 게 뭔가 특별하게 느껴져서 마음에 들어."


까띠가 씩 웃었다.

좀 전에 입으로 음식을 가져가며 분명히 침범벅이 되었을 손가락으로 그녀는 아주 다정하게 생선을 발라 나에게 주었다. 멈칫. 내 자리에 놓인 번들거리는 생선을 바라보았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간호사임에도 비유가 좋지 않다. 대학병원에서 일하던 시절 구토하는 환자의 등을 두드려주다 나도 모르게 우웨엑 환자랑 구토 콜라보 현악주를 연주한 나다. 까띠의 미소와 행동이 얼마나 다정한지 배탈 날 나의 미래는 선했지만, 실망한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는 게 더 어려웠다.

나는 시각을 포기하기로 했다.


나는 내가 전혀 모르는 문화가 낯설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사랑했다. 그들만의 역사와 사람의 부딪낌으로 만들어진 낯선 문화는 그들 자체였다. 각각의 나라가 저만의 이유로 아름다운 것은 하나의 인간이 저만의 역사와 고유함으로 만들어져 아름다운 것과도 같았다.


그들의 고유성에 경의를 표할 수 있다면, 잠깐 장님이 되는 것쯤이야.




2탄 바선생과의 전쟁

3탄 병원마저 포기한 위생.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이어집니다.

























































'아프리카의 부엌'이라고 불릴 정도로 세네갈은 음식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생선 요리인 쩨부쩬과 닭으로 만든 야사뿔레는 지금 생각해도 군침 도는 음식이다. 기름기가 많지만 그들만의 특색 있는 음식들이었고 그들은 항상 같이 먹자고 권하는 정 많은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한국의 "정"과 같은 단어가 세네갈에도 있는데 "테랑가"라고 한다. 처음에는 이 테랑가가 쉽지 않았다. 세네갈은 수저를 사용할 때도 있지만 보통은 인도처럼 손을 사용해서 먹는다. 까띠는 손을 사용하는 이유는 신이 주신 신성한 음식을 내 몸, 손으로 느끼고, 만져, 입으로 가져간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고 했다. 어찌 보면 비위생적이겠으나 나는 그들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외국인이라 수저를 권했지만 손으로 만지고, 음식을 느끼고, 입으로 가져갔다. 그렇지만 모두의 침이 한 번씩은 들어간 거 같은 생선을 발라서 다정하게 웃음 나의 앞에 놔줄 때는 어찌나 난감했는지... 병원 직원들 모두가 반짝반짝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감염이고, 위생이고 여러 가지 이유가 머릿속에 떠올랐고 무엇보다 비유가 좋지 않은 나였지만 그냥 먹었다.(대학병원에서 일할 때, 구토를 하는 환자를 보고 괜찮냐고 등을 두드려주다 나도 우웩 하고 구토를 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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