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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Dec 26. 2022

효율? 효용? 귀차니즘!

정성에 효용을 적용할 때

원래 급한 성격에다 나이가 드니 조급증까지 생겼다. 그 조급증은 이제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기에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자각하면서 시작됐다. 욕망대로 다 하겠다는 게 욕심이라면, 최소한 꼭 하고 싶은 것만큼은 하고야 마는 근성은 나이를 자각함과 동시에 조급증을 불러왔다. 조급증이 나쁜 것만은 아닌 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궁리를 하다 보면 자투리 시간까지 생산적으로 쓰는 습관이 생긴다. 그러나 또 좋은 것만은 아닌 게, 사람이 여유가 없어 보인다. 늘 재게 움직이게 되고 뭔가에 쫓기는 심정이 돼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지적을 받고 내 모습을 그려보니 그랬다.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동동 구르는 모습이 상상 됐다. 하지만 그러면 뭐 하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기 전 어느 것이 먼저 올까 계산하느라 뇌를 분주히 돌리고 가장 빨리 온 것을 잡아탔지만, 하필 그 엘리베이터가 층층이 다 서버리면 앞서 바빴던 뇌가 무색해지고, 크지도 않은 집에서 무엇을 가지러 방과 방 사이를 오갈 때 기왕 가는 김에 다른 필요한 건 없을까 한 번 더 생각하고 움직였건만 건망증 때문에 애초 가져오려던 걸 가는 중에 까먹는 걸.    

  

한 번에 시간을 잘게 쪼개 효율적으로 쓰려는 조급증은 효용을 따지는 피곤한 습관까지 만들었다. 어떤 시간을 어떤 일에 쓸 때,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가치란 게 어차피 내 멋대로 주관적 가치인 데다 파생적 가치까지 가늠할 수 있는 머리통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따지는 효용이 과연 효용적인지 알 길이 없다.   

        

몇 달 전, 헌 책, 그러니까 중고 책을 샀다. 오랜 전에 출판된 책이라 중고 밖에 없었다. 인터넷 주문을 하고 이틀 정도 지나 문자가 왔다. 중고 책방이었다.   

   

‘표지가 없는 데 괜찮을까요?’     


인터넷 주문 때, 사진에는 분명 표지가 있었는데, 이제 와 없다니 슬금 의심이 들었다. 광고 따로 실물 따로 인 것이 인터넷 주문의 허점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도 책을 취급하는 곳인데, 그 정도 양심이 없을까, 워낙 오래된 책이라 아마 옛날에 사진을 올려놓고 현 재고 상태를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괜찮으니 그냥 보내달라고 답장을 했다. 그런데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또 문자가 왔다. 표지를 임의로 만들어 붙여 발송했다는 내용이었다. 육천 원짜리 책 하나 팔면서 이런 수고까지 하는 정성에 감동을 받았다. 고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책방을 운영하겠거니 내 멋대로 상상을 했다. 그런데 책을 받은 날에는 더 큰 감동을 받았다. 표지는 단순 디자인이지만 임의라기엔 너무 멀쩡했고, 색상도 원래 표지가 아닐까 싶을 만큼 제목과 잘 어울렸다. 게다가 작은 엽서까지 동봉돼 있었다. 엽서엔 짧은 시와 헌책 매입에 관한 안내가 적혀 있었다. 더구나 시는 손 글씨였다.      


누굴까? 이런 세심하고 고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온통 잡스런 상술이 판치는 시대에 헌 책 하나 판매하면서 받는 이가 이토록 감동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자못 궁금했다. 이대로 넘어가기엔 그 정성이 너무 고마웠다. 그래서 무척 감사하고 건승하시라는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이내 감사하다는 답장이 귀여운 이모티콘과 함께 왔다. 아마 아름답고 고매한 여성의 이미지를 그린 건 이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난 이 소박한 감동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그 엽서를 책상 앞 한 귀퉁이에 붙여 놨다. 누가 보면 연애편지로 오해할까 봐 뗐다 붙였다 반복하다 다시 생각해보니 집에 올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닫고 가장 잘 보이는 책상 정면으로 옮겨 붙였다.      


얼마 전, 곧 이사를 해야 해서 슬슬 집안 정리를 시작하기로 했다. 짐 정리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흔적을 지워야 하는 것이었다. 정리하는 마음으로 집안을 둘러보니 그간 몰랐던 내 흔적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나 몰라라 외면한 내 상처와 닮은 3년의 흉한 흔적들이었다. 누가 방을 보러 온다면 방 크기보다 이 흔적부터 눈에 들어올 것만 같았다. 더러워진 벽지는 물론이고 니코틴으로 누렇게 변한 화장실 천장과 타일, 문이 자주 잠겨 아예 부숴버렸던 자물쇠, 고정 시멘트가 부서져 흔들거리는 변기까지, 손대자니 하루 안에 끝날 일이 아니었다. 무엇부터 시작할지 계획을 세울 겸 책상에 앉았다가 그 엽서가 눈에 들어왔다. 어수선한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고 훈훈해졌다. 진정과 정성의 힘이라는 건 유효기간이 없는 가보다 싶었다. 생각난 김에 책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다 읽고 더 이상 읽을 마음이 없는 책만 골라보니 10권 가까이 됐다. 다시 그 편지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책 사진과 주소를 보내면 구매 가능한 목록 발송 후 수거’라고 적혀있었다. 사진은 전체를 찍어 보내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각 권을 각각 찍어 주소와 함께 보냈다. 나도 최소한의 정성은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바로 문자가 왔다. 수거는 곤란하니 택배로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난감했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이라 직접 수거해 간다는 내용에 혹했던 것이다. 더구나 돈을 받자고 팔려는 건 아니었으므로 집 앞에 내놓으면 폐지 줍는 할머니께 용돈이라도 될 터라 갈등이 일었다. 그러나 새 책이 없어 못 읽는 누군가에겐 더 큰 가치가 있겠다 싶어 택배를 보내기로 했다. 우체국까지 운전해서 가기도 귀찮고 집 앞 편의점은 택배 취급을 안 했으므로 직접 박싱을 하고 인터넷 택배를 예약해야 하는데, 그것이 귀찮았다. 내 효용 계산법이 발동한 것이다. 그저 누군가 필요한 이에게 옮겨지길 바라면서도 그 정도의 노동과 정성을 들이긴 싫었다. 그래서 중고 서점의 그 여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냥 묶어서 보내면 안 되겠냐고. ‘네’라는 답변을 받고 공구함에 있던 노끈을 꺼내 ‘단단히’ 칭칭 묶었다. 귀찮아하면서도 헐거운 건 또 싫었나 보다. 고운 책들이 빨간 노끈에 쌓이니 보기에 참 그랬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택배기사가 책 표지에 송장을 그대로 붙이면 어쩌나 노파심이 일었다. 노끈을 풀었다. 책들을 A4 용지로 감싸 송장 붙일 공간을 마련한 후 다시 칭칭 묶었다. 어차피 이럴 거면 그냥 보기 좋게 박싱을 할 걸 후회했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됐다. 이틀 후 그 고운 마음씨의 여자로부터 문자와 한 장의 사진이 도착했다. ‘책을 포장 없이 보내서 다 젖었다. 그래서 구매할 수가 없다’는 문자였다. 그리고 그 밑에 내 책들이 얼룩덜룩한 모습으로 처량하게 묶여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난 분명 비가 들이치지 않는 복도, 그것도 신발장 위에 올려놨건만, 어째서 저리 물에 젖었는지, 택배기사와 물류 센터부터 의심했다. 그래서인지 그 고운 마음씨의 여자에게 서운함이 반사적으로 들었다. 택배 기사나 택배 회사의 잘못부터 생각해야 하는 게 맞지 않는 가 싶었던 것이다. 순서 없이 포장 안 한 나부터 탓을 하는 건 억울하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돌아온 답장은 결국 나를 발끈하게 했다. 최소한 박스나 쇼핑백에 넣어서 보내야지 묶어서 보내면 어떡하느냐라는 것이다. 아니, 쇼핑백이 얼만데, 권당 5백 원짜리 헌책 보내는 데 쇼핑백을 쓰라고? 효용성에 있어서 대단한 판단 오류라 생각했다. 화가 나서 답장을 보냈다. 묶어서 보내겠다고 미리 얘기하지 않았느냐고, 그래도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그러자 이번엔 그에 대한 답변은 없이 ‘어쨌든 매입이 힘들다.’는 간단한 통지만 돌아왔다. 돈 받자고 보낸 걸로 취급당하는 기분에다 마치 이건 변명할 수 없을 때 그냥 자기 결론만 주장하는 구태 공무원이나 콜 센터 직원을 상대하는 기분이 됐다. 이쯤 되자 그간 문자를 주고받던 그 여자가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난 직접 전화를 걸었다. 발끈한 이상 직진하는 못된 성질에 불이 붙은 것이다. 전화를 받은 상대는 남자였다. 속으로 그럼, 그렇지 했다. 난 다짜고짜 처음 문자부터 발송까지의 과정을 아느냐고 따졌다. 그는 주저했다. 엉뚱한 남자가 나타나 그간의 과정도 모르고 일방적으로 노끈에 묶인 책을 보고 반려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난 그간 문자를 주고받은 여자를 바꿔달라고 했다. 그리고 곧바로 지금 내가 한 말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난 분명 한 번호로 문자를 주고받은 데다 지금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럼 이 남자가 그 여자다? 아씨. 뭐가 잘못 됐음을 깨닫는 순간, 그가 말했다. 여긴 여자 없다고. 

     

“어느 분이랑 문자를 주고받으셨다는 거죠?”     


잔인한 놈. 내가 착각했다는 걸 알 텐데 확인 사살을 하다니.     


“어라? 그게 누구였지? 분명 아가씨였는데.. 아이쿠, 내가 지금 낮술을 먹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네요. 죄송하구요, 그 책은 버리시든가 알아서 처리하세요.” 

    

쪽팔려서 일부러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횡설수설, 되도 않는 변명을 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난 왜 상대가 여자라고 확신했을까. 독거 중년으로 살다 드디어 미쳐가는구나 싶어 진짜 낮술 먹은 거 마냥 얼굴이 화끈거렸다.   

  

능청을 떨어놓고도 불편한 마음은 남았다. 어쨌거나, 묶어서 보내도 된다고 해 놓고서 이제와 그 탓을 하니, 팔 때 마음과 살 때 마음은 다를 수밖에 없는 건가 싶었던 것이다. 그럼, 어차피 시간과 에너지는 비슷하게 들였으면서 집 밖에 널린 박스 하나 주워 가지고 와 테이핑만 하면 됐을 걸 효용과 효율을 따진답시고 노끈을 묶고 있었던 나는? 

     

덕분에 좋은 기억과 푸근한 마음까지 잃고 말았다. 누군가 읽을 책, 기왕 보내는 거 책이 상하지 않도록 조금만 더 정성을 들였으면 이런저런 복잡한 기분 안 들고 끝까지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 텐데, 상대가 어쩔 수 없는 장사꾼이건 아니건 간에 만날 일 없는 한 내가 기억하는 상태가 중요한 거였는데 후회가 막심했다. 

         

이삿짐 정리고 뭐고 할 기분이 아니었다. 기분 전환 할 겸, 마음을 누그러뜨릴 겸 그 책을 폈다. 과자 선물 세트 중 제일 맛있는 과자를 제일 나중에 먹는 기분으로 안 읽고 있던 중이었다. 몇 페이지 넘기는 동안 불쾌한 일을 금세 잊을 만큼 책은 흡입력이 있었다.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흐뭇한 기분으로 몇 장을 넘기자 책갈피가 툭 떨어졌다. 주워보니 책갈피엔 아까 그 헌책방 로고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책갈피를 접어 쓰레기통에 콱 쑤셔 넣었다. 어차피 난 페이지를 접는 놓는 습관이 있다. 책갈피란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일일이 꽂아놓는 것보다 간단히 페이지를 접는 게 더 효율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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