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틱 리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작품 세계-

by 미스틱

2003년 개봉작이지만 당시엔 아쉽게 놓치고 어렵게 파일 입수 후 지금까지 열 번 이상 본 듯하다. 보고 또 뜯어보고 반복해 감상해도, 그저 배우들의 연기만 뜯어봐도 물리지 않는 내 인생 영화다.


처음 포스터를 접했을 때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출연진이었는데, ‘아이엠 샘’의 숀 펜, ‘쇼생크 탈출’의 팀 로빈스, ‘일급살인’의 케빈 베이컨, 쁘라스...‘매트릭스’의 로렌스 피시번까지.. 이 정도 초호화 캐스팅이면 평점 따윈 사뿐히 밟고 일단 지르기 십상인데, 영화 자체가 생소해서 찾아보니 감독이 어마 어마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만큼 널리 알려진 영화는 아니었다. 하긴, 당시까지만 해도 클린트 옹이 만든 작품들은 '용서받지 못한 자'(서부극-아카데미 수상)를 비롯해 '퍼펙트 월드'(탈옥수를 쫓는 형사물-사실 이 영화는 가정폭력에 관한 영화인데.) 등, 작품성과 함께 총으로 상징되는 남성성을 강조한 영화라는 평단의 비판을 받았었다. 클린트 이스트 우드의 출세작이 '황야의 무법자'(서부극), '더티해리'(매그넘 권총으로 범인을 때려잡는 형사)였고 총기규제를 반대하는 보수주의자임을 자처한 걸 보면 근거 없는 비판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아동 성폭력이 낳은 비극을 다룬 이 영화로 세간의 비판을 한 방에 잠재우고는 곧바로 '밀리언 달러 베이비'(빈곤가정 여성), '체인질링'(유괴), '그랜토리노'(이민자), '아메리칸 스나이퍼'(이라크 파병군인)등 사회성 짙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마침내 세계적 거장으로 우뚝 서게 된다. 이후 '설리', '15시 17분'을 만든 걸 보면 관심이 사회적 영웅으로 옮겨진 듯한데, 본디 보수주의자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개인을 충분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신념이 있는 걸 보면 당연한 행보로 보였다. 아무쪼록 클린트 옹, 한 이 백 년 사시길..


<운명의 잉태>


영화는 세 남자아이가 허름한 동네 골목에서 뛰노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범생이 숀(케빈 베이컨)과 소심쟁이 데이브(팀 로빈스)는 당찬 말썽쟁이 지미(숀 펜)의 제안에 따라 덜 마른 시멘트 바닥에 이름을 새기다 경찰에 적발당하고 그중 데이브가 끌려가 경찰에게 성폭행을 당함으로써 세 남자의 비극이 잉태된다. (왜 꼭 소심쟁이가 희생이 되는지 원..)


남겨진 친구들에 대한 원망, 친구를 홀로 보낸 죄책감, 희생자가 자신일 수도 있었다는 공포감을 각자 가슴에 묻은 채 세월은 흘러 아이들은 이젠 서로를 친구라 부르지 않는, 어릴 때와 닮은 어른이 된다. 지미는 잡화점을 운영하는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지만 과거 건달 두목이었고, 이젠 손을 씻었지만 과거는 그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고 동네의 숨은 권력자가 되었다. 숀은 적당한 권력을 누릴 수 있으며 안정된 직업인 경찰이지만 이혼을 앞두고 고뇌하고 있고, 데이브는 한때 잘 나가던 야구 선수였지만 이젠 직업도 없이 어린 아들과 캐치볼이나 하며 소일하는 무기력한 약자로 산다.


어느 날, 지미의 딸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사건을 맡은 숀, 용의자로 지목된 데이브와 복수를 노리는 지미는 다시 한번 운명의 굴레로 빨려 들어간다.


<과거의 굴레>


이때부터 일반 수사물과 다른 이 영화만의 독특한 면모가 드러나는데, 범인을 찾는 형태에 주인공들의 과거 행적을 입힘으로써 그들의 현재 행동을 설명함으로써 단순한 스릴러 영화 범주를 벗어난다. 여느 형사처럼 평범한 방식(과거)으로 수사하는 숀과 힘의 논리를 몸으로 체득(과거)한 지미는 경찰을 무시함으로써 부딪치게 되고 허술한 법 테두리 내 방식과 법 테두리 외 방식이 부딪치는 양상을 숀의 동료 형사가 편법으로 데이브의 차를 수색하는 것으로 보여준다.


용의자 데이브는 소심한 그의 성격과 더불어 유년에 겪었던 트라우마(과거)로 인해 사건 당일에 겪은 별개의 사고를 자신의 과실과 스스로 엮으며 피해의식에 젖어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하지 못한다. 게다가 데이브의 아내는 유약한 남편보다 동네 유력자인 지미와 자신의 사촌인 지미의 아내에게 더 의지하고 산다. 본인 역시 우유부단하며 유약하기에 약한 남편보다 강한 자에게 의지하는 하는 거다. 급기야 남편을 범인으로 확신하며 아들과 함께 떠날 준비를 함으로써 데이브를 지미의 복수 앞에 앉힌다.


사건이 헤쳐질수록 실마리는 과거를 향하고, 지미와 데이브는 어릴 적 그들이 살던 동네에 흐르던 강 앞에 서게 되는데, 지미가 친구인 데이브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순간 과거는 괴물이 되어 진실을 삼킨다. 그렇게 강자가 힘을 재생산하고 희생자는 끝까지 희생자가 되는 힘의 논리가 작동되는 동안 숀으로 대변되는 공권력은 그저 침묵하는 방관자일 뿐 끝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잔인한 기억의 재생>


데이브가 저지른 사고는 지미의 딸과 무관하며 자신을 과거에서 탈출시키려는 행위였으나 진실은 그렇게 모든 걸 감추는 그 강 ‘미스틱 리버’에 묻히고 만다. 그 강에서 데이브는 과거를 벗지 못한 채 또다시 희생자가 되고, 지미는 그가 저지른 악행들처럼 또 다른 악행을 강바닥에 묻어버리지만, 새로운 죄책감을 얹고 살아야 하는 아이러니에 놓이는 되는, 또 하나의 잔인한 기억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시멘트 바닥에 새기다 만 세 소년의 이름과 함께 사건의 또 다른 희생자, 그리고 새로 탄생한 살인범을 삼킨 미스틱 리버가 그렇게 유유히 흐르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심장하게 느꼈던 장면은 모든 사건이 흐르는 강물처럼 지나고 난 다음날 일상의 아침, 지미의 아내가 지미의 범행을 알고도 태연히 ‘왕은 그럴 수 있다’며 가장으로서 강한 모습을 강조하는 장면이었다. 그저 강한 남성에 의존한 이기적인 아내의 모습을 보인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사회 비판적 성향으로 볼 때 이익 앞에선 정의도, 진실도 무시하고 약소국들을 대하는 미국의 모습을 비판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지미 부부와 재회한 숀 부부가 함께 퍼레이드를 감상할 때, 데이브의 아내만 혼자 아버지를 찾는 아들을 부르는 걸 보면 그저 배신과 믿음을 얘기하는 거라기보다 강자들의 논리에 의해 버려지고 사라져 간 약자들의 억울함을 바라보는 영화라 생각된 것이다. 더불어 우리는 과거에서 얼마나 멀어질 수 있나 하는 고민까지..


이 영화의 외적인 힘은 주, 조연의 구분이 힘들 정도로 출연진 모두의 비중이 커서 영화의 무게가 더 크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명배우들의 명연기가 잠시도 한눈을 팔 여지를 주지 않는다. 특히, 딸의 죽음 앞에서 오열하는 숀 펜의 연기는 소름 돋는다. 그 외에도 그토록 강한 지미가 딸의 죽음에 무너지며 데이브에게 고통을 호소하던 씬, 동트는 새벽, 길거리에 쓸쓸히 앉아 술을 들이 붇는 씬 등에서 보여준 심리 연기는 역시 명배우라 할 만하다. 그리고 내적인 힘은 역시 감독의 역량이다. 끝까지 관객의 집중도를 유지하게 만들며 사건을 풀어내는 숙련된 솜씨, 과거에서부터 얽힌 복잡한 사건을 개연성 있게 엮은 스릴러다운 긴장감 등 굉장한 완성도를 보인다.

과장된 연출과 감정 유도 장치 없이도 관객이 분노, 슬픔, 허무. 무력감까지 온전히 느끼게 하는 클린트 이스트 우드 특유의 연출기법이 가장 빛이 나는 영화이니 한번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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