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에 숨겨진 사연
책에서 표지는 너무 중요하죠. 처음에 책 낼 때는 좋은 내용을 채우는 데만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켰어요. 그러나 출판 생태계에서 독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앞표지, 뒤 표지가 너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아도 포장지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독자에게 이야기가 가 닿을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이번 책은 원고기획과 작성에도 몇 개월이 걸렸지만, 책 제목과 표지를 정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옆집 그 엄마는 어떻게 일을 구했을까>의 첫 번째 표지는 사실 제가 시험 삼아 만들어 봤습니다. 미리캔버스에서요.
아무 지식도, 기술도 없는 제가 만든 건데 그 나름 느낌을 잘 살리지 않았나요?^^; 원래는 이렇게 창 밖을 내다보는 이미지를 일러스트 디자이너 분께 주문했었어요. 그러나 창작자의 자유로운 상상력에서 전혀 다른 수작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저의 디렉팅대로도 만들고, 일러스트 디자이너 분 마음대로도 한 컷 만드시면 좋겠다고 했죠. 몇몇 시안을 보내오셨는데 일단 저의 디렉팅대로 창 밖을 내다보는 이미지도 너무 훌륭했어요.
어쩌면 이렇게 예쁘게, 제가 머릿속에서 막연하게 생각한 이미지를 실제로 구현해 주시는지. 이것도 마음에 들었는데 의외로 또 다른 일러스트가 제 눈길을 사로잡았어요. 저처럼 알록달록 같은 취향을 가졌었다고 생각한 다른 저자들도, 아래의 이미지가 끌린다고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다른 시안도 좋지만 이 시안이 너무 강렬했어요.
느낌이 좋았어요. 뭔가 꼿꼿하게 앞으로 전진하는 세 여성. 만약 네 사람이 모두 같은 포즈였다면 단조로웠을 텐데 한 사람만 포즈가 달라서 역동적인 느낌을 주더군요. 처음에 제가 디렉팅 했던 시안과는 내용이 달라졌지만 이 시안으로 하기로 만장일치로 정했어요. 일러스트 디자이너 분께 어떻게 이런 그림을 생각하셨냐고 물었더니 말씀하시더군요.
"작가님이 보내주신 원고를 보고 떠오른 이미지가 있었어요. 이 그림은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서 만든 시안입니다."
"어떤 이미지요?"
"비틀스가 생각났어요. 세 분이 일과 가정이 양립하기 어려운 가운데에도 계속 뭔가에 도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거든요."
"어... 근데 비틀스가 우리 사연하고 겹치는 게 없어 보이는데요? 우린 음악가들도 아니고요."
그랬더니 아무 말씀 없이 사진을 한 장 폰으로 전송하시더군요.
바로 비틀스 앨범 재킷 사진이었어요. 그 유명한 애비로드 사진. 이제 이곳은 런던의 명소가 되었지요. 이 사진을 본 순간, 정말 놀랐습니다. 저도 이 사진을 언제 어디에선가 보긴 했었는데, 그 이미지를 표지 일러스트를 제작할 때 떠올릴 생각은 절대 못했을 것 같아요. 전문가가 괜히 전문가가 아닌가 봅니다.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을 두고 감히 비틀스의 사진을 떠올리는 게 왠지 송구하지만, 그럼에도 뭔가 신기하고 가슴 벅찬 느낌이 들었어요.
"작가님들의 모습을 꿋꿋하게 걸어가는 세 사람으로 표현했어요. 바쁘게 움직이는 또 한 사람은 제 자신이에요."
작가들뿐 아니라 일러스트 디자이너 분까지, 우리는 표지 안에서 이렇게 연결되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일러스트를 해주신 디자이너 분은, 오래전 저의 글쓰기 수업으로 만난 인연입니다. 그 뒤로 계속 공동문집 표지 일러스트나 PPT 일러스트를 그려주시는 등, 간간히 끈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중간에 출판사를 걸치긴 했지만 정말 뜻깊은 작업을 서로 같이 하게 된 거예요.)
이렇게 해서 탄생한 표지입니다. 출판사의 손길을 거쳐 뒤 표지도 너무 마음에 들게 잘 나왔는데요, 독자 여러분도 받아보고 좋아해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 표지를 볼 때마다 여러 생각이 들어서 뭉클할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개인 저서를 쓸 때는 좋기도 했지만 철저히 외로워야 했습니다. 집중력이 요해지는 순간이 많아서 두 달간 사람도 한 명도 안 만났던 기억이 나네요. 공저는 그렇게 할 수가 없고, 수시로 만나고 체크하고 의논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약간 걱정도 되었습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혼자 쓸 때만큼, 높은 수준의 집중력을 꾸준히 유지하기는 힘들었어요. 하지만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고,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이지요.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는 약간 힘들기도 했지만 책을 쓰는 시간은 당연히 외로워야 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외롭지 않고 마음이 꽉 찬 느낌으로 쓸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아래 스티커는 굿즈 포장 스티커를 제작하느라 별도로 만든 이미지인데요, 사람을 이렇게 배치하니까 또 느낌이 다르죠?
크고 작은 시련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세 사람이 당당하게 걸어가는 것 같아요. 그 뒤로 쫓아가는 사람을 일러스트 분은 자기 자신이라고 했지만 보기에 따라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요. 저자들처럼 힘든 가운데 자신의 가능성을 사회에서도 펼쳐보고 싶은 또 다른 엄마, 또 다른 독자 분일 수도 있고요, 아니면 성큼성큼 앞으로 나가고 싶은데 마음만큼 보폭이 따르지 않아 애가 타는 저자들의 또 다른 자아일 수도 있겠습니다. 훗날 마음이 지쳤을 때 이 그림을 꺼내보면 다시 힘이 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