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진을 위해 산부인과에 갔습니다. 예약했다고 하니 데스크에 있는 용지에 이름과 생년월일을 쓰라고 하더군요. 앞에 20여 명 정도 환자들이 쭉 인적사항을 썼는데, 언뜻 보니 제가 나이가 제일 많았습니다. 대기실을 둘러보니 임산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남편과 같이 온 분들도 꽤 됐고요.
기다리며 책을 보는데 옆자리 두 분의 대화가 들렸습니다. 일부러 들은 건 아니지만 자리가 가깝다 보니 자연스레 들리더군요.
"그러니까, 언니가 그러는데 아무래도 눈치가 보인대. 애가 아파서 빨리 퇴근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아직 어리다 보니 자주 아프고, 그러다 보니 주변 동료들이 눈총 주고 그러나 봐."
조만간 분만을 앞둔 것으로 보이는 산모가 회사 선배의 이야기를 전하며 한숨 쉬자 남편이 말하더군요.
"그래, 그게 현실이지."
"나도 걱정돼. 남일 같지가 않아서."
"어, 그런데 적어도 3년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좋대."
"...."
분위기로 보아 아마 남편은 출산 이후에는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산모는 별로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고요.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사이 간호사가 제 이름을 호명해서 진찰실로 들어가느라 그 뒤의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검사를 마치고 나오니 젊은 부부는 보이지 않았어요.
산부인과 대기실에서 제일 나이 많은 연장자로서 왠지 그 자리에 있는 산모들에게 말해주고 싶었어요. 본인의 선택이 아니라면 출산했다고 해서 절대 사표 내지 말라고, 일단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라고. 제가 책임져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마음속에서 자꾸 그 말을 간절히 되뇌고 있었습니다. 지금 "엄마가 3년은 키우는 게 좋다"고 말한 그 남편 말만 듣고 사표를 내고 육아에 전념한다면? 그다음 닥쳐올 20년이 너무 예상이 되는 거예요.
저도 남편 고집을 꺾지 못하고 결혼과 출산, 육아의 터널을 거치며 사표를 내고 경력이 단절되었죠. 솔직히 그때는 남편의 그런 제안이 달갑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책임감 강한 가장처럼 보였던 것도 사실이에요. 남편이 책임감 강한 사람이었던 것은 맞아요. 그러나 오랜 기간 직장을 다니지 않으면서 저를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도 서서히 바뀔 것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직장 다니고 대학원 다니며 공부만 했을 뿐, 당최 살림이나 육아를 해본 적 없던 저로서는 출산 이후 무능감만 줄곧 느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살림을 못하지.
나는 왜 이렇게 아기를 못 재우지.
나는 왜 이렇게 반찬을 못 만들지.
나는 왜 이렇게 설거지가 느리지.
나는 왜 이렇게 빨래를 못 개지.
돌이켜보면 모두 처음 해보는 일이니 서툴고, 실수하고, 느린 것이 당연했지만 누구도 저에게 애쓰고 있다, 충분히 잘하고 있다, 격려해 주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집에서 애나 보는 아줌마"라며 무시하기 바빴습니다.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운 다음 다시 일을 하려고 해도 나이와 경력 공백을 이유로 받아주지 않았고요. 출생률이 세계 꼴찌가 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출산과 육아를 홀대하고 주양육자를 푸대접하는 세상에서 누가 애를 낳고 키우고 싶겠어요.
얼마 전 EBS에서 노동과 젠더를 연구해 온 미국의 조앤 윌리엄스 교수를 초청해 <조앤 윌리엄스와의 대화>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지요. 이 프로그램에서 윌리엄스 교수는 한국의 살인적인 고강도 노동 문화에 놀라며 한국은 그간 "경쟁"이 발전의 동력이 되어 왔지만, 이제는 그 사회 통념이 사회 발전을 가로막고 초저출생의 문제를 가져왔다고 지적합니다.
아울러 한국 기업은 아직도 "성인 초기에 일을 시작해서 40년 동안 전일제로 초과 근무도 해야 하고 출산과 육아, 노인 돌봄 등으로 쉬지 않는 사람"을 이상적인 근로자로 설정하고 있는데 이 근로자 모델은 1950년대 설계된 것으로 지금의 사회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육아휴직은 아주 기본적인 시작일 뿐이며 육아휴직으로 인해 생긴 빈자리를 정부가 지원해 대체 인력으로 채워줘야 휴직으로 인한 공백이 메워지고, 다른 근로자들이 과로하거나 불만을 갖지 않을 수 있다고 해법을 밝힙니다. 이런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초저출생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며 "한국은 이상적인 근로자에 대한 정의를 바꾸지 않음으로써 여성에게 매우 나쁜 시스템"을 만들었으며 이는 "남성에게도 나쁘고 아이들에게 최악인 시스템"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옆자리 산모의 남편처럼 "그게 현실"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1950년대 사회에 우리가 머무는 게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단순히 그 남편이 나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아이를 주양육자가 3년 정도는 집중해서 키우는 게 좋은 건 맞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고강도 노동 문화가 개선되어야 해요. 부부가 매일같이 야근해야 하는 직작생활을 한다면 아이는 누가 돌보겠어요. 아울러 여성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도 변해야 합니다.
여성이 출산하면 가정 안팎에서 직장을 포기하도록 종용받고, 아이들을 키우고 나면 이번엔 경제적으로 무능하다고 무시당하고, 그러다 나이 들면 양가 노인들을 봉양하라며 다시 돌봄을 떠안죠. 우리 어머니들이 그렇게 살아왔듯이 새로운 미래세대의 여성들도 그렇게 살라고 한다면 한국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병원을 나서는데 만삭인 듯한 산모가 남편 손을 잡고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오고 있더군요. 조만간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는 두 사람의 설레는 마음이 저에게도 전해져 덩달아 새 생명을 기대하는 들뜬 마음이 되었습니다.
프로그램에서 언급한 영상의 여러 댓글들 중 "사람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 사회에서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내용이 아프게 떠올랐어요.
부디 살인적인 경쟁을 미덕으로 여기는 이상한 사회가 아니라 사람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사회가 되길, 국가 소멸 위기로 이어질 초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가 의지를 갖고 지원 정책을 실현하기를, 오늘도 보채는 아기를 안고 밥 한 술 제대로 뜨지 못하고 애쓰는 이 땅의 엄마들(혹은 주양육자들)이 얼마나 귀한 사람들인지 이 사회가 제대로 알기를 혼자 빌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