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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a Jan 28. 2024

10년 지기 친구와의 손절과정 1

요즘 용어로 ‘손절’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마지막이라는 뜻은 아니다!)

나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편이라 늘 주변에 친구가 많고 이야기 들어주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니, 그때의 나에게는 꽤나 큰 결심이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대학교 때였다.

큰 키에 긴 머리를 휘날리며 발랄했고, 재기 넘치는 유머 그리고 다정함이 배어있는 아이였다. 뭐 인사정도만 하는 사이였던 우리는 우연히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그 이후 급속도로 친해졌다. 함께 입사한 사람들과 같이 여행도 다니며  맥주도 한잔하고 적어도 20대의 어느 시점은 그녀를 포함한 일정한 그룹이 내 인생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무언가 우리 사이에 균열이 생긴 것은 그녀가 ‘결혼’을 하고부터였다.

그녀가 우리 모임에 자꾸 남편을 데리고 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사전에 아무런 언지도 없이. 말 그대로 느닷없이 이벤트 마냥 남편을 데리고 왔다. 너무 사랑해서 도저히 떨어질 수 없다는 말이라면 오히려 나았을까? 그녀의 핑계는 남편이 ‘먹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이 식당에서 먹어보고 싶다기에 데리고 왔다는 것이었다. 한두 번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는 단 한 번도 우리에게 밥을 사지 않았다. 정말 그냥 먹고 갔다. 게다가 술도 전혀 마사지 않아서 술자리까지 이어가기도 불편했다.) 하지만 보통 불편한 게 아니었다. 여자들끼리만 모여서 할 수 있는 이야기 소재에 제약이 생겼다.


이를 테면,

그 누구도 우리들의 전남자친구 이야기를 할 수 없었고(우리는 그녀와 전 남자 친구의 만남과 이별까지의 서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시댁에서 벌어진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에 대한 인물탐구나 심층토론도 할 수 없었다.(그녀의 남편은 지극한 효심을 지닌 남자였다)

그렇다고 부부를 떡하니 앞에 두고 19금 얘기를 대놓고 할 수도 없었으니  시답잖게 살아가는 일상적인 얘기들만 피상적으로 하게 된 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는 그때 그녀에게 정중히 부탁했어야 옳았다.

“남편을 데려오는 거 조금 불쾌해. 무례하다는 생각도 들어. 사전에 우리에게 말해주거나 안 데려왔으면 좋겠다.”라고 말이다.

그러면 지금의 손절의 상황까지는 안 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균열들을 눈감고 넘기면 결국 관계를 망칠만큼에 금이 가게 되기 마련이다.


아마 우리는 그때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이 불편한 감정이 그녀의 ‘남편’에 대한 것인지 남편을 데려오는 ‘그녀’에 대한 것인가 하고 말이다.

그렇게 조금씩 그녀가 끼는 모임이 불편해지기 시작할 즈음, 우리는 하나둘씩 아이를 가졌고 모임은 자연스럽게 뜸해졌다.

문제는 아기들이 조금씩 크고 다시 모임을 시작했을 때 벌어졌다.


일 년에 두세 번 만나는 모임이라 그날만큼은 아이를 데려오지 않고 육아에서 벗어나 퇴근 후 바로 밥을 먹고 맥주나 한잔하고 헤어지는 자리였는데,

그녀는 이번에는 남편 대신 아이를 ;항상; 데려왔다. 시댁과 같이 사는 사이라 맡길 수 있어도 꼭 데려왔다. 심지어 집에 남편이 있어도 집에 들려서 꼭 아이를 데려왔다.

차라리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는 거짓말이라도 했으면 좋았을 테지만,

그녀의 말은 ‘아이가 엄마와 있기를 너무 원해서 자기는 도저히 아이를 뗴어내고 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안 그러면 자기가 나쁜 엄마가 되는 것 같다는 죄책감을 느낀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이를 집에 두고 모처럼 외출을 한 우리는 모두 나쁜 엄마가 된 셈이었다.


또다시 우리가 모일 수 있는 자리는 제약이 생겼다.

차를 타고 아이를 데려오니 주차장이 있어야 하고 주차비도 저렴해야 했다.( 그녀가 그걸 강력히 원했다) 그녀의 집에서 너무 먼 곳도 후보지에서 탈락했다.

 결혼전에 몰려다니던 근사한 뷰가 있는 곳이나 맛집은 엄두도 못 냈다. 대중교통으로 가기가 힘들더라도 주차비가 무료 거나 주차장이 큰 곳만을 고집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약속장소의 우선순위에 그녀를 가장 맨 앞에 두게 되었고 상당한 피로감을 느꼈다.

그리고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2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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