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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a Feb 06. 2024

네네노마치

오사카에서 특급 열차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교토 가와라마치역은 여행책자의 사진 속 이미지 보다 훨씬 번잡했다. 역에서 숙소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었다. 여행책에서 작가가 표현한 대로 교토 여자들은 특유의 ‘모던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들어간 블루보틀의 여성 바리스타는 하얀 피부에 은테 안경을 쓴 모습이 멋들어졌으며, 캐리어를 끌고 걷는 니키지 시장 주변 거리는 대낮부터 재즈가 흘러나왔다.

가온강의 양 제방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사이로 한참을 걸어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짐을 풀 새도 없이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일본역사 1100년 동안 수도였던 도시 교토에는 헤이안 시대에 남겨진 수많은 신사와 유적지가 있었지만, 나는 우선 그녀가 남긴 발자취를 찾기 위해 나섰다. 여행을 오기 전에 읽었던 한 일본 역사책에 등장하는 한 여인이 흥미로웠다. 지독히 수동적인 여성성의 강요, 그리고 무사 중심의 폭력적 남성 사회가 주 지배층이었던 일본 중세 시대에 자신의 이름을 알린 한 여성의 삶이 몹시 궁금해졌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녀의 이름을 따라 만들어진 길을 찾아 걸어가고 있다.

 인기 있는 관광지인 청수사로 가는 길에는 일본의 옛 전통 가옥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운치 있는 찻집과 음식점들이 즐비했다. 관광객들은 열심히 해가 지기 전에 청수사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지만, 나는 천천히 지도를 보며 작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사무라이들이 건물 사이 숨어있다가 갑자기 등장할 것 만 같은 오랜 목조 거리사이를 헤매다가 드디어 ‘네네노마치’라고 적힌 작은 일본어 간판을 발견했다.

여기다! 드디어 그녀의 이름이 남겨진 작은 골목에 도착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실부인이었던 ‘네네’ 의 이름을 딴 ‘네네의 길’은 ‘산넨자카’와 ‘니넨자카’ 중간에 작은 계단으로 이어져있었다. 생각보다 좁은 길이었다. 한두 명의 일본인들이 거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고, 그 뒤로는 네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기리기 위해지었다는 사당이 보였다. 마치 네네가 아직도 그곳에서 죽은 남편에게 절을 올리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한국에서 오사카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교토까지 쉴 새 없이 움직여서인지 현기증이 났다. 나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조용히 누군가 다가와 일본어로 말을 걸으며 작은 물 한 잔을 권했다.


-괜찮나요?

-네. 감사합니다. 조금 어지러워서요.

-요즘은 이곳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어디서 오신 분인가요?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보라색 기모노를 곱게 입고 머리를 말아 올린 고운 외모의 중년 여성의 모습이 영락없는 일본 중세시대의 풍속화에 등장하던 여인의 행색이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거리의 중간쯤에 놓여있는 작은 벤치에 앉아 대화를 이어갔다.

-네네를 찾아왔어요. 실은 한국에서 왔습니다. 그녀는 잠시 빙긋 웃었다. -당신이 믿든 믿지 않든 저를 ‘네네’라고 생각해 보세요. 이렇게 먼 곳까지 왔으니까요. 그녀에게 무엇을 묻고 싶으신가요? -일본에서는 희대의 영웅으로 그리고 조선에서는 가장 큰 숙적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인으로 살아가던 삶이 어땠는지 묻고 싶었어요. -도요토미는 작은 농부의 아들이었어요. 네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야망을 사랑했지요. 네네는 그에게 어떠한 후손도 남겨줄 수 없었지만, 그가 자신의 자손이 아니라 그의 이름을 후대에까지 남길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답니다. -이름을 남기는 방식이 전쟁이라는 폭력으로 일관됐는데도 말이죠? 그럼에도 그녀는 그를 지지했던 거군요? -그야말로 폭력과 야만의 시대였으니까요. 교토 안에서도 끝없는 권력자들의 암투와 배신이 계속되었고, 피로해진 그는 그 모든 폭력의 대상을 아마도 외부로 돌려 힘을 응집하려고 했던 거죠. 유감스럽지만 가장 가까운 조선이 그 희생양이 되었을 겁니다. -당신이 지금까지도 일본의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대상이 되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나는 어느덧 그녀가 네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가요? 그렇지만 그건 조금 부끄러운 일입니다. 저는 그저 이곳 사당에 숨어 죽음을 피할 뿐이었지요. 그것도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지원을 받아서 말이죠.

 그녀의 얼굴에 처음으로 그늘이 비쳤다. -하지만 저는 남편을 따라 장수의 부인이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 시대에는 당연한 일이었겠지만요. -고마워요. 저는 제 방식대로 가장 밑바닥에 있던 그를 사랑했고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와 결혼했습니다. 날이 갈 수 록 그의 위상이 올라갔지만 단언 컨데, 그 어떤 순간에도 나를 잃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 기록과 이야기를 들여다보니, 당신은 어떤 환경에서든 당신의 방식대로 주변인들에게 다정했던 모양이에요. 당신에 대한 평가가 훗날 꽤나 긍정적으로 남아있답니다. -감사한 일이군요. 결국 삶을 살게 하는 힘은 인간에 대한 다정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어떤 시대건 말이죠.

 기록에 따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인이었던 네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대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숙적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들을 인질로 삼아 키웠다. 그녀는 그 소년에게 애정을 담아 키웠다. 수없이 많은 여성편력을 가진 도요토미 히데요시였지만, 말년까지 네네를 떠나지 않고 아꼈다고 한다. 칠십이 넘어 후처에게 얻은 겨우 아들 하나를 남긴 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음을 맞이하자, 그의 부하이자 숙적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기다렸다는 듯 어린 후계자를 포함한 모든 숙적을 제거했다. 그럼에도 네네는 살아남았다. 열도 최고의 권력자였던 남편의 죽음, 그리고 후처와 후처의 어린 아들이 모두 자결한 후에도 그녀는 살아남았다.

네네와의 짧은 대화는 내 삶에 어떻게 기억될까. 역사를 통해 그리고 타인의 삶을 통해, 지금의 나를 잠시 돌아본다. 보다 야만적이었고 폭력적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죽음을 피해 생존하는 것이었을까? 단지 극한 상황에서도 죽음을 택하거나 맞이하지 않고,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지혜롭다 존경받은 걸까? 아니면 숙적의 아이를 자신의 아이처럼 돌본 그녀의 인간애를 연민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폭력과 야만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다만 폭력과 야만의 주체가 보다 거대하고 은밀하게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의 시대에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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