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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amongaroo Aug 09. 2022

가방에 핀 곰팡이

곰팡이 포자를 제거하지 않으면,

또다시 곰팡이가 피었다.


옷 방으로 사용하는 작은 방에는 가방을 걸어두는 행거가 있다. 행거에는 크기별로 가방이 걸려있다. 익숙한 가방들 사이로  낯선 가방 하나가 걸려있었다. 낯선 가방을 발견한 건 2020년 7월의 한창 더위가 무르익던 날이었다. 낯선 가방의 정체는 검은색 가죽 숄더백이었다. 평소에 자주 사용하던 가방이었기에 곰팡이 얼룩이 낯설게 느껴졌다.


2년 전부터 검은색 숄더백에 흰색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매년 여름이 되면 검은색 숄더백에 자리를 잡고 꽃을 피운다. 세상에서 예쁘지 않은 꽃, 곰팡이 꽃. 처음 곰팡이를 발견한 날은 2020년도 7월, 습한 기운이 좀처럼 가라 앉지 않던 오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대강 물티슈로 가방 표면에 피어오른 곰팡이를 닦아냈다. 닦는 내내 지하실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냄새가 계속 코끝에 닿았다. 꿉꿉한 냄새가 코에 익숙해질 즘 새 물티슈를 뽑아서 다시 가방을 닦았다. 물티슈 뭉치가 쌓여갔다. 닦아낼수록 흰색 곰팡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흰색 곰팡이는 본래 초록빛을 띠고 있었다. 점차 검은색 숄더백은 자신의 색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닦아내고 보니 맨 처음 닦았던 부분은 금세 물 자국이 말라있었다. 듬성듬성 물티슈로 닦아낸 물 자국이 남아있었다. 가방을 들고 해가 잘 드는 베란다로 갔다. 어디서 들었는지 모를  내용이 생각 나서다.


‘햇빛은 곰팡이 살균 효과에 좋다.’


인터넷에 검색해서 사실 확인을 할 법도 한데, 나는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베란다에서 해가 제일 늦게 지는 위치에 가방을 놓아두었다. 이틀 정도 베란다에 가방을 두었더니 금세 검은빛이 짙어져 있었다. 티끌 하나 없이 짙은 검은색 가방을 다시 행거에 걸어두었다. 난 믿었다. 이 정도까지 해줬으니 곰팡이는 박멸되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다시 2021년 여름이 되었다. 내가 굳게 믿고 있던 믿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시 곰팡이가 피었다. 검은색 숄더백 옆에 이웃해 있던 가방에도 곰팡이가 피어있었다. 나는 1년 전에 했던 것처럼 똑같이 닦아주고 또 햇빛에 소독을 해주었다.  1년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닦아주고 햇볕에 소독해줘야 하는 가방이 두 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다시 1년이 지나 2022년이 되었다. 2년간의 경험치가 쌓여서인지 올해도 혹시 곰팡이가 필까 싶어 7월 내내 행거에 걸린 가방을 확인했다. 웬일인지 곰팡이가 피지 않았다. 올해는 다행히 곰팡이를 닦아낼 일은 없겠다 싶어 안도했다. 그리고 안심했다. 그 뒤로 가방을 관찰하지 않았다. 그런데 방심한 순간 곰팡이가 또 피어있었다. 8월이 시작되는 첫날이었다. 분명 7월이었던 어제는 없었는데 왜 8월의 첫째 날 피는 걸까. 한숨을 쉬니 어깨가 털썩 내려앉았다.


다행히 옆 가방으로 번지기 전이라 검은색 숄더백을 베란다로 옮겨왔다. 그 가방을 이제는 버려야 하나 싶기도 했다. 회사로 출근하던 때에는 자주 메고 다니던 가방을 근 3년째 메지 않고 있으니 이제는 그냥 버려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언젠가 다시 회사로 출근하게 되면 메고 다닐지 모른다는 생각에 미련을 가지게 된다. 결국 몇 년째 마음으로만 몇 번을 버렸다. 어쩔 땐 나만 가방에 미련을 못 버리고 질척거리는 게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한참 동안 곰팡이 얼룩으로 뒤덮인 검은색 숄더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올해도 그냥 닦아서 행거에 걸어두기로 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집어 들어 인터넷 검색창을 열었다.

 

‘곰팡이를 없애는 법’을 검색했다. 검색 결과는 몇 초도 안돼 핸드폰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러다 ‘곰팡이를 완전히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묻는 게시글을 보게 되었다. 그 대답엔 이렇게 되어 있었다.


‘그냥 버리세요.’ 그리고 이어서 적어둔 내용이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버리실 게 아니라면 곰팡이 포자를 제거하는 방법을 찾아보세요. 안 그러면 또 생길 겁니다.’


결국 버리거나 곰팡이의 근원이 되는 포자를 확실하게 제거하는 세탁법을 찾아봐야 했다. 나는 왜 여태껏 포자를 제거할 방법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저 겉에 핀 곰팡이만 닦아낼 뿐 곰팡이가 자라는 포자를  없앨 생각은 내 선택지에는 없었다. 올해는 여러 방법을 동원해 곰팡이 포자를 제거해서 검은색 숄더백을 지켜내기로 했다.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곰팡이는 결국 다시 찾아온다. 가방 겉에 피어있는 것을 닦아낼수록 다음 해에는 더 짙은 곰팡이 얼룩이 피어오른다.

마음의 상처도 곰팡이와 성질이 같다. 조금 괜찮아질 것 같은 마음의 상처가 주기적으로 아픔이 되어 찾아온다. 미처 돌보지 못한 상처에 또 다른 상처가 덧입혀지면 마음속 상처는 거대하게 몸집을 키운다. 몸집을 키운 상처는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는다. 마음속 어딘가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상처는 결코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깊은 뿌리를 마음에서 뽑아내지 않으면 상처는 계속 스스로를 아프게 하고 그 아픔이 반복된다.


계속 무너짐을 경험하고 보니 결국 같은 문제에서 무너져 내린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 파여있던 마음을 메우지 못해 그 상처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었다.


'왜 계속 같은 구간에서 무너질까?'


곰팡이로 얼룩진 가방을 슥슥 물티슈로만 닦아낸다 해도 다음 해에 또다시 곰팡이 얼룩이 보인다.

마음에 남겨진 상처도 그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싶어 방치해두는 경우가 많았다.  또다시 찾아올 걸 알면서도 그저 마음의 상처를 내버려 둔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통할리 없다.


상처의 뿌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흰색이 아니라 초록색일지도 모른다. 내가 철석같이 흰색이라고 믿었던 곰팡이를 닦아내고 보니 초록색이라는 걸 발견했던 것처럼 마음의 상처는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색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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