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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amongaroo Aug 12. 2022

시선 밖의 아이들

어린아이는 자신의 몸보다 크고 많은 일을 겪으며 자란다.

내가 7살 때의 기억이다.

여느 때와 같이 유치원이 끝난 뒤 곧장 정문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아빠의 트럭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작은 삼촌이 보였다. 작은 삼촌은 나를 향해 손짓했고 그 앞에 도달했을 때 아빠와 엄마는 다른 지역으로 볼일을 보러 가게 되었고 그래서 본인이 데리러 오게 되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종종 아빠와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 종종 작은 삼촌이 나를 데리러 왔다. 작은 삼촌은 나를 차에 태우고 자신의 가게에 나를 내려놓는다. 작은 삼촌은 삼겹살 구이를 판매하는 식당을 운영했다. 가게를 들어서자 고기를 굽는 연기로 인해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자욱했다. 가게 안은 많은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럼 나는 곧장 가게 출입문 바로 옆에 위치한 카운터에 내 몸을 숨겼다. 낯가림이 많았던 나는 줄곧 구석진 곳을 잘 찾아다녔다. 계산을 하는 카운터는 아담했다. 성인 혼자 앉아있으면 금방 꽉 차는 정도의 크기였다. 하지만 내 몸 하나 숨기기엔 딱 맞는 아주 적절한 장소였다. 오늘도 카운터에는 친할머니가 앉아있었다. 친할머니는 의자에 앉아 가게 장부를 보고 계셨다. 친할머니는 내가 왔는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나에게 잠깐 시선을 주다 다시 장부로 시선을 옮긴 뒤 그대로 멈췄다. 나는 친할머니가 앉아 계신 의자 옆 작은 틈을 비집고 구석진 곳에 앉아 있었다.


'빨리 엄마가 왔으면 좋겠다.'

구석진 곳에서 엄마가 빨리 오길 기다렸다. 엄마가 빨리 못 오면 아빠라도 빨리 와서 나를 데려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무릎을 웅크려 양 팔로 감싸 안았다.



"사장님, 저희 계산해주세요."

식사를 마친 손님 무리가 카운터로 몰려왔다. 할머니는 장부에 적힌 내용을 본 뒤 계산기를 두드렸다. 나는 몸을 숨긴 채 저 많은 사람들이 빨리 식당 밖으로 나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더 몸을 웅크렸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더 꽉 양팔을 껴안았다.  그런데 나의 생각과는 달랐다.


어떤 아저씨가 카운터 아래로 내려와 쭈그려 앉았다. 숨어있는 나에게 손을 뻗었다. 웅크리고 있던 양팔이 풀렸다. 할머니는 계산에 집중하며 식사는 맛있게 했는지, 어떻게 우리 가게에 오게 되었는지 등의 대화를 계속했다. 그러는 사이 일은 벌어졌다. 할머니를 잘 안다는 아저씨는 내 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생식기에 손을 가져다 댔다. 나는 재빠르게 내 몸을 할머니 쪽에 붙였다. 할머니는 여전히 대화를 하기에 바빴기에 찰싹 붙어있는 나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 아저씨는 피하는 나를 향해 이런 말을 했다.


"너희 할머니랑 친척이야. 예뻐서 그런 건데 왜 그래?"

그때 나는 계속 울기만 했다. 엄마와 아빠가 나를 데리러 왔을 땐 울다 지쳐 잠들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때의 일을 이야기할 타이밍을 놓쳤다. 지금 그 이야기를 엄마와 아빠에게 이야기하면 지난 일이라고 넘길 것 같아서 꺼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꺼내놓은 나만 오히려 더 상처받을 것 같아서다.

세월이 지나도 그때의 일은 어린 나에게 너무나 큰 일이었다. 속상하고 기분도 나빴다는 걸 그때는 모르고 지냈다.  그때보다 조금 더 자란 뒤에 알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단어로 표현하기엔 그때의 내 기분을 표현할 수 없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때의 상황이 생생해서 어린 내가 너무 안쓰럽다. 나를 보호해 줄 어른은 없었다는 사실에 너무 안쓰럽고 속상하다.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았던 아빠와 옆에 있던 친할머니를 원망할 때도 많았다. 지금도 그렇다.  


보호해줄 수 있는 존재가 옆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작고 어린 나에겐 크고 많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기억한다. 나만 기억하는 일들.  낮은 시선에서 겪어야 했던 크고 많은 일들이 작은 나를 덮쳤다.  


내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나는 작고 어렸던 거라고 생각하다가도 나에게 화가 난다. 그 상황에서 나는 아저씨를 향해 소리를 쳐야 했다. 그런데 소리를 지를 만큼 정신이 없었다. 그 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어린아이들은 어른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많은 일을 겪는 것 같다.  


지난달,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와 서울에서 짧은 여행을 하기로 했다.

나는 강원도에서 서울로 가야 했고, 친구는 전라남도 광주에서 서울로 와야 했다. 서울과 조금 더 가까이 살고 있던 내가 버스터미널에 먼저 도착했다. 친구가 도착하기까지 아직 30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었다. 나는 대합실에 준비된 소파에 앉았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러다 내 시야에 들어온 엄마와 아이 세명을 보게 되었다.

엄마는 정신이 없어 보였다. 아이들도 챙겨야 하고 짐이 든 여러 개의 캐리어도 챙기기 바빠 보였다. 아이들도 엄마를 따라다니기 바빠 보였다. 그러다 엄마는 세 아이 중 제일 몸집이 큰 여자아이에게 캐리어를 맡겼다. 엄마는 대합실 주변을 살폈다. 아무래도 무언가를 급하게 찾는 것 같았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 아이는 엄마의 캐리어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캐리어를 들고 있던 여자아이는 캐리어 상단부에 올라탔다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나머지 두 아이는 캐리어를 중심으로 서로 빙빙 돌며 잡기 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엄마는 무언가를 찾은 듯 허공에 대고 빨리 가자는 손짓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잡기 놀이를 하던 두 아이는 엄마의 손짓을 따라 뛰어갔다. 캐리어를 가지고 놀던 여자아이는 계속 캐리어를 올라탔다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엄마가 앞서서 여자아이에게 빨리 오라며 소리를 쳤다. 여자아이는 그제야 캐리어를 끌고 엄마에게 갔다. 그런데 여자아이 머리 위로 아저씨 손이 스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저씨는 여자아이가 장난치는 모습을 보곤 귀여워서인지 꿀밤을 때리는 것 같았다. 여자아이는 멍하니 가던 길을 멈췄다. 아무래도 누가 때렸는지 알 수 없어서 멍하니 서 있는 것 같았다. 여자아이는 멍하니 서서 자신의 머리 위로 손을 올린 뒤 긁적였다. 그 아이의 표정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왜 이렇게 안 와? 급한데, 얼른 뛰어 와."


여자아이의 엄마는 뒤돌아 아이에게 소리쳐 아이를 불렀다. 아무래도 엄마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 것 같았다. 엄마의 말에 아이는 그제야 캐리어를 끌고 몸을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의 몸보다 크고 많은 일을 겪고 성장하겠구나 싶었다.


'어른들이 알아채리기도 전에 아이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기억하겠구나.'


요즘 나의 어린 시절을 다시 돌아보며 그때의 나를 위로하고 돌보는 작업을 한다. 그 일환으로 글을 많이 쓰려고 한다. 글을 쓰다 보면 내가 기억하지 못했던 또 다른 이야기가 떠올라 나를 힘들게 할 때가 있다.

어느 누가 예고도 없이 닥친 사고를 그 누가 막을 수 있을까. 그 사건을 겪고 난 뒤 그저 위로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컸고 또 어른이 되었으니까.

 

작고 나약했던 자신을 돌보는 일을 자주 종종 해주어야 한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는지 다그치고 자책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그런 일이 있어서 내가 힘들었고 슬펐네를 이해하며 작디작은 나의 어린 시절을 껴안아주면 어떨까 싶다.


그리고 오늘 아이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는 부모님이 많아지길 바란다.


"오늘 너의 하루는 어땠어?"


하루동안 경험했을 많은 일을 어른과 함께 공유하면 그 아이는 어른보다 더 큰 아이로 성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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