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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교사 Mar 12. 2020

뉴턴이 다니던 학교도 천재지변으로 인한 휴교를 했다고?

재택근무 중인 교사의 고백 

 



  tvn의 요즘 책방 프로그램에서 페스트를 다뤘다. 페스트로 인한 흑사병은 이미 중세유럽을 강타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를 소재로 작가 알베르 까뮈는 페스트라는 소설을 썼고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소설 페스트
위험이 도사리는 폐쇄된 도시에서 극한의 절망과 마주하는 인간 군상. 죽음이라는 엄혹한 인간 조건 앞에서도 억누를 수 없는 희망의 의지.                   -네이버지식백과-


  설민석씨가 전해주는 소설의 이야기는 정말 흥미롭다. 재능과 노력이 더해진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패널로 나오는 다른 분들과의 합과 한 분야에 대한 의학계, 과학계, 음악계 등 다양한 의견과 역사적 사실을 주고 받는 것이 책의 내용을 다방면에서 볼 수 있게 하여 관점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이번 주제에는 신경인류학자인 박한선 박사가 함께해서 “요즘 감염병이 유행하지 않냐. 지역사회에 감염병이 퍼진 상황에 대해 아주 사실적으로 적고 있다”라고 더해 제작진이 왜 이 주제를 선정했는지 분명히 했다.  

페스트를 주제로 서태지와의 합작 공연이라니! 역시 문화대통령 태지서!

   1947년에 발간된 소설이 지금 다시 회자되는 것은 바로 현재 상황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전례없던 전염병이 돌고, 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서로를 혐오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전염병에 대처하거나 공포감에 잠식되거나 맞서 싸우는 사람들. 까뮈는 2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대에 전쟁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서로에 대한 혐오가 난무하는 시대를 보며 부조리에 대한 저항과 인간의 연대와 정명(그 이름에 걸 맞는 각 주체의 역할과 행위가 실현되어야 함)에 대한 메시지를 전했다. 


 “전쟁이 터졌다. 어디에 전쟁이 있는가? (......) 전쟁이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전쟁의 혐오스러운 모습이 어디에 있느냐고 우리는 자문했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를, 우리가 마음속에 그것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작가수첩』 1권) 작품     [네이버 지식백과] 페스트 (La Peste) (세계문학전집)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처럼 요즘의 어려움은 우리의 본능과 본성을 직면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뮈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묻어 나는 연대와 도움, 자기가 할 일을 해내는 그런 모습들이 지금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미적분의 원조가 누군인가를 두고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구도 

  사실 프로그램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뉴턴과 페스트의 관계였다. 뉴턴이 캠브리지에서 공부하던 시절 페스트로 인해 2년 간 휴교령이 내려져 어쩔 수 없이 고향에 있었다고 한다. 공부하던 사람이 2년 동안 고향에 가면 뭘 하겠는가? 학교에 비하면 제대로 공부환경이 갖춰져 있진 않았을, 어쩌면 지루하기 짝이 없었을 고향집에서 그는 조용히 혼자 몰입해서 공부하다가 바로 그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미분과 적분이다.  그의 미분과 적분 발견은 실로 물리학의 발전에 기여를 하였다. 그런 상황적 배경이 있었구나, 현재 학교 휴업 상태로 인해 더 인상깊게 다가왔다. 


  그랬기 때문에 페스트가 '좋았다'는 말이 아니다. 페스트나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일은 희망을 가지는 것, 그리고 함께 행동하는 것. 이 진부한 말이 여전히 적용되고 있고, 사실 항상 적용되기에 진부한 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소설 '페스트'에서 까뮈는 사람들이 까닭없이 절망하고 까닭없이 희망한다고 표현한 부분이있다. 두 가지 다 할 수 있는 거라면 절망은 충분히 했으니 이제는 희망을 하자. 그리고 굳이 절망은 더 이상 하지 말자. 지금의 우리는 '정상화'를 희망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집순이가 익숙해진 일상인데 생각보다 할 일, 놀 것, 즐길 것이 많아서 기술의 발전이 이렇게 놀랍구나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업무 성격마다 다르겠지만 동료들과 소통하는 것이 메신저나 전화로 이루어져야 해서 직접 한 공간에서 얼굴 보고 대화하는 것보다는 조금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 빼고는 수업 자료 준비나, 학교 계획 관련 서류 정리 등 기타 업무에 더 많은 집중력과 시간을 들일 수 있어서 재택근무 나름의 장점도 느끼고 있다. 이 새로이 직면한 전무한 상황이지만 수업과 학생과의 상호작용이라는 내 업의 본질은 온라인 도구를 활용하여 이어 나가고 있다. 


  임시휴업이라는 이름 하에 우리학교는 많은 것을 준비해왔다. 학교 구성원의 세대가 무척 다양해서 요즘 기기나 온라인의 어떤 것들이 너무 익숙한 세대도 있고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세대가 있다. 외부에서나 내부적으로나 변화가 빠르지 않은 집단이라고 버릇처럼 말하는 나의 소속, 교직이지만, 이런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목적이 분명해지니 배포된 가이드라인을 따라 정말 빠르고 성실하고 정확하게 이 변화의 흐름에 합류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우리를 본다. 브라보. '어려움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전화위복', '난세에 영웅(들)이 난다.' 라는 여러 가지 말들이 어울리는 상황이다. 우리 모두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조직의 목표와 목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애쓰고 있다. 새롭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피로감은 상당하고,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우리'가 나는 참 멋지다. 


  재택근무의 장점은 상당하다. 우선 학교에 있었다면 쉽게 출력했을 문서들도 컴퓨터로 보거나 태블릿 pc로 열어 확인해 본다. 솔직히 나는 이게 익숙하고 종이를 낭비한다는 죄책감이 들지 않아 좋지만, 인쇄물에 익숙한 선배들은 고충을 토로한다. 또 출퇴근 시간이 없는데 끝내야 하고 집중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는 몰입해서 할 수 있어서 좋지만 또 이 장점 자체가 단점이다. 퇴근한 적 없는 느낌의 연속. 프리랜서가 얼마나 자기에 대해 맺고 끊음이 명확해야 하는지 느끼는 대목이다. 재택근무의 장점이 있지만 어느 때보다 더욱 출근이 하고 싶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어쩌면 재택근무가 주는 선물이 물리적인 직장에 대한 감사함을 느껴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동료들과 모여 커피 한 잔 나누며 일을 시작하고, 아이들과 시덥지 않은 농담을 주고 받으며 그래도 한 번 더 웃어보고, 방금 체육하고 들어와서 땀냄새로 가득한 교실에 입장하는 그 고통도 느껴보고, 수업 중에 벌어지는 몇 천번의 눈빛교환과 세세한 상호작용이 그립다. (아, 그런데 계속 재택은 아니다. 돌아가면서 출근한다.)


  현재 휴교 상태로 학교는 물론 학원도 가지 못하는 아이들 중에 더러는 쾌재를 부르고 더러는 성적이 떨어질까 걱정을 하고 또 더러는 온라인으로 인강을 듣거나 화상수업을 통해 학습 리듬을 유지한다. (학습 리듬 유지 학생 중 90%는 부모님에 의한 것이겠지) 좋아하는 분야의 영상을 아주 실컷 보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고, 그 때의 뉴턴처럼 공부에 몰입하는 아이들은 흠...... 많지 않겠지만... 거의 없겠지만 그래도 한 명은 있겠지? 공부가 재밌는 아이들도 있을테니까.  아무튼 진정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기 참 적절한 시기다. 야외활동 빼고. 학교가 아닌 자신의 시간표로 운영하고 있을 우리의 3월이다. 새벽 늦게 자고 오후 늦게 일어나는 자녀를 그저 바라봐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든 부모님들도 계실 것이고 또 무엇보다 삼시 세끼를 차려내야 하는 부모님, 또는 출근해야 하는데 아이를 혼자 집에 둬야 하는 부모님, 정말 다양한 상황 속 다양한 어려움이 있으실 것 같다. 학교의 빈 자리가 크다. 그렇나 가장 중요한 우리 모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실시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모두 해내고 있다. 까뮈의 페스트 속 그들처럼 말이다.  


  설민석 씨는 이렇게 소설 페스트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정리했다.  "페스트를 보면 가짜뉴스나 유언비어를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이는 공포로 인해 그런 것"이라면서 "하지만 책에서처럼 사람들이 성실하게 자신의 일상을 유지하고 연대하고 의지하면 전쟁, 재앙이든 전염병이든 재난상황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이 책은 우리한테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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